세계 최고의 선박 건조기술 보유했지만‥실적 ‘쇼크’ 후폭풍

[스페셜경제=조경희 기자]올해 초 국내 조선업계는 기존 ‘상선’ 위주에서 ‘해양플랜트’ 수주 강화를 목표를 잡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해양플랜트 수주에 시대를 걸고 목표치를 높게 설정했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빅3의 올해 수주 목표액은 550억 달러로 국내 돈으로 환산하면 약 58조30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하지만 실적은 참혹했다. 삼성중공업은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1조원대의 부실이 드러났다. 올해 상반기 주요 해양플랜트 공사에서 삼성중공업이 약 6000억원, 현대중공업이 3740억원의 손실을 각각 기록했다.

선박 건조, 제작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수성하던 국내 조선사들이 해양플랜트 시장에서 맥을 못추고 있는 것이다.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6000억, 3740억원 손실 기록
상선 수주에서 해양플랜트 전환했지만‥엄청난 ‘수업료’


현대중공업도 실적 ‘쇼크’


해양플랜트로 인한 실적 쇼크는 삼성중공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2분기 현대중공업 매출이 12조8120억원으로 전년 대비 2% 감소했으며 영업이익은 1조1037억원의 적자를 기록해 전년 대비 5% 가까이 하락한 바 있다.

현대미포조선도 2분기 매출이 8994억원으로 전년 대비 5% 이상 감소하고 영업이익도 2000억 가까이 감소해 25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세계 조선 산업의 장기 불황으로 인한 건조량 감소 및 저가 수주 확대, 경험 부족으로 인한 해양플랜트 분야에서의 손실 확대가 실적 악화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수년 간 지속되고 있는 조선업의 침체로 발주가 급감하면서 신규 수주 및 건조가 감소했으며 조선업체 간 경쟁 심화로 저가 수주 물량이 증가한 바 있다.

또 주요 조선업체들이 조선 부문의 침체를 만회하기 위해 해양플랜트 수주를 강화했지만 인력 및 경험 부족으로 공기 지연 등의 문제도 발생했다.

국내 조선업계의 해양플랜트 상세설계 및 건조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삼성 및 현대중공업의 실적에 빨간불이 들어오면서 해외플랜트 기자재 및 원천 설계기술 분야가 아직 해외선진 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피해가 더 컸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중형 조선사, 해양플랜트 ‘보류’


STX조선해양은 해양플랜트 부문 수주를 당분간 중지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건조중인 부유식 원유저장설비(FSO) 1척의 건조가 끝나면 해양플랜트 건조는 잠정적으로 중단키로 한 것이다. 관련 인력도 상선 쪽으로 재배치할 예정이다.

STX조선해양 관계자는 <스페셜경제>와의 통화에서 “자율협약에 들어간 상태로 원가를 잘 맞추고 자율협약을 벗어나기 위해 잘 만들었던 상선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는 차원이다. 해양플랜트는 인력, 기술 등 투입되는 비용이 많다. R&D에 대한 투자도 지속해야 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이익을 낼 수 있는 부분에 대한 투자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동조선해양도 마찬가지다. 한때 FSO 등 해양플랜트 업계에 뛰어들었던 성동조선해양도 당분간 해양플랜트 보다는 상선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성동조선은 수에즈막스급 탱커, 케이프사이즈 벌크선 등 ‘전략 수주’ 선종에 집중해 최대한 생산원가를 낮추고 수익을 극대화할 계획이다.

단, 현 조선시장이 급변하는 시기인 만큼 전략적인 수주에 치중할 뿐 완전히 해양플랜트를 보류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성동조선해양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당장은 이익을 낼 수 있는 상선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라며 “조선업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분야에 대한 집중 투자를 통해 이익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낮은 부품 국산화율‥원가 상승요인


삼성중공업에 이어 현대중공업의 실적이 고꾸라지면서 국내 조선사들이 해양플랜트 수주는 많았지만 실속이 없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삼성중공업의 부실 수주는 해양플랜트 쪽에서 대거 발견됐다. 삼성중공업의 매출 비중은 해양 부문 매출 비중이 60% 가까이 되지만, 해양플랜트 투입에 따른 공정 차질 우려가 있고 저가 수주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강록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중공업은 올해도 마진이 낮은 해양생산설비 건조 비중이 늘면서 영업이익률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는 해양플랜트 부품의 국산화율이 낮은 것도 하나의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은행 경남본부는 최근 국내 조선해양산업 현황을 점검한 결과 지난 2011년부터 올해 5월까지 세계 해양플랜트 수주액은 우리나라가 87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로 세계 수주액의 60%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술 수준은 미국을 100이라고 했을 때 유럽연합은 99.5, 일본 83.5, 우리나라는 79.8 수준이라는 것이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의 분석이다.

해양플랜트 내 배관재, 전기장치, 계장설비, 안전장치 등 주요 기자재의 국산화율도 20~30% 수준에 불과하다. 일반 조선 부문 기자재 국산화율이 80~90% 보다 크게 낮아 실제로 해양플랜트 부문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소 조선사 사업 ‘보류’‥대규모 R&D 투자여력 없어
부품 국산화율 낮고 원가산정 어려워‥부가산업 육성↑


자체기술력 40% 불과?


국내 조선업계는 해양플랜트 시장에서 잇따른 시행착오 등으로 천문학적인 추가비용이 계속 투입되고 있다. 이는 해양플랜트는 맞춤형이기 때문에 설계, 생산 방식이 정형화된 상선 보다 원가 상승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제품 생산 전 시제품을 만들면 이 과정을 통해서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이 가능하다. 또 자연스럽게 원가 산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해양플랜트의 경우 수주를 통해서만 제품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원가 산정 자체가 불가능하다.

일례로 현대중공업이 만드는 세계 최대 원통형 부유식 원유생산저장설비(FPSO) ‘골리앗’은 세계 일류상품 지정까지 받았지만 주문 변경과 경기 변화 등으로 인도 시점이 두 차례나 연기되면서 생산비가 처음 계산보다 크게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중공업 역시 발주처의 요청에 따른 잦은 설계 변경으로 비용이 상승, 결국 적자폭이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부품의 경우에도 국내 부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발주처가 원하는 부품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비용이 들어간다. 해양플랜트 사업 전체를 발주하는 것이 아닌 시공 등만을 담당하기 때문에 너무 비싼 수업료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매출이 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국내 조선업체들의 EPC(Engineering, Procurement and Construction; 설계, 구매, 제작) 공정 가운데, ‘시공’만 자체적으로 소화하기 때문에 고가의 해양플랜트를 수주해도 남는 것이 얼마 없다는 분석이다. 전체 해양플랜트 제조원가 중 설계, 엔지니어링이 차지하는 비중은 10~20%, 기자재 비중은 플랜트의 종류에 따라 35~60% 수준이다.


건조, 제작 제외 시 경쟁력↓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은 ‘해양플랜트 산업의 시장과 경쟁 구도’ 보고서에서 국내 조선사들이 해양플랜트 생산 부문에서 상위를 달리고 있지만 상세 설계, 선체, 시공 등 수익은 낮고 리스크는 큰 문제를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해양플랜트 설계의 핵심이 되는 엔지니어링, FEED의 원천 기술 부족, 핵심 기자재 기술과 국산화율 저조로 인한 기술 역량 부족도 고수익 분야로 진입하기 위해 넘어야 할 장벽이 되고 있다.

각국별 기술 가치사슬별 기술 경쟁력을 살펴보더라도 건조, 제작과 상세 설계를 제외하고 향후 보완해야 할 부분과 신규 융합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 분야를 선택해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우리나라는 건조, 제작 분야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면서 “반면 일본은 설계, 설치, 시운전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고 미국이나 프랑스, 영국은 예비 탐사, 타당성 조사, 시추 및 평가, 설계, 건조 및 제작, 운반, 설치 및 시운전, 운영 및 유지관리 중 건조‧제작을 제외하고는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다. 장단기 발전전략을 세워 해양플랜트 시장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발주처가 절대 ‘갑’


아울러 폐쇄적인 해양플랜트 시장도 국내 조선업체들의 실적을 부진하게 한 요인으로 꼽힌다.

해양플랜트는 안정적인 해양자원을 생산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기 때문에 각 개발 광구의 지형, 기후, 생산자원 특성 등에 맞춰 최적화돼야 하며 가격보다는 검증된 기술과 품질을 최우선으로 한다.

그리고 각각 갖고 있는 개발 광구 상황과 연계되어 진행돼 북해, 멕시코만을 중심으로 미국, 영국, 노르웨이 등의 국가에서 발전해 왔으며, 자연스럽게 오일 메이저가 발주처가 돼 FEED(Front End Engineering Design) 단계에서 각종 사양, 기자재 등을 결정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오일 메이저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중공업‧삼성ENG ‘합병’ 카드 꺼내


결국 삼성그룹은 지난 2월부터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의 몇 달 간에 걸친 감사 후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을 추진하고 나섰다.

당초 삼성엔지니어링은 삼성물산과의 합병이 유력했다. 하지만 삼성중공업에 대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의 감사 후 이 같은 결정이 내려진 것으로 보여진다.

삼성의 이 같은 합병은 해양플랜트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삼성중공업과 육상 플랜트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삼성엔지니어링이 합병해 각자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엔지니어링의 석유화학플랜트 부문 사업 노하우 등을 전수받아 해양플랜트 부문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해양플랜트 부문을 따로 떼는 것 보다는 역량 강화에 집중하는 한편 육상 LNG 등으로 사업 분야를 다각화한다는 것이다. 해양플랜트를 따로 떼놓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 종합 EPC 역량 강화 목표


삼성중공업은 이번 합병으로 최근 대규모 손실을 기록한 해양플랜트 분야에서 설계‧구매‧프로젝트 관리 능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해양플랜트 업계의 아울러 삼성엔지니어링은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삼성중공업의 ‘해양플랜트 제작역량’을 확보함으로써, 육상 화공플랜트 중심에서 고부가 영역인 육상 LNG와 해양 플랜트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할 수 있게 됐다.

삼성측은 “삼성중공업이 최근 해양플랜트에서 대규모 손실을 낸 이유는 제작‧건조는 세계 최고지만, 상계설계와 프로젝트 관리 등 엔지니어링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며 “삼성엔지니어링도 육상 플랜트에서 해상으로 사업을 확장하려 했지만, 건조경험이 없어 한계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 온 벌크선이 아닌 부가가치가 높은 해양플랜트, 특수선을 수주하면서 이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부가가치 육성해야


국내 조선업계의 빅3중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의 실적 쇼크는 국내 조선업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국내 조선업체는 세계 최고수준의 상세설계와 건조기술을 기반으로 해양플랜트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대규모 부실이 드러나면서 해양플랜트 시장의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다만 1위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부가가치 산업을 더욱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국내 조선업계가 여전히 글로벌 1위인 것은 맞다. 세계 최초, 최고, 최대 등의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것을 봐도 그렇다. 다만 해양플랜트가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만큼 어마어마한 ‘수업료’를 내는 것은 사실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해양플랜트는 단독으로 이뤄지는 산업이 아닌 전후방 산업이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국내 조선사가 선박 건조 분야가 1위인만큼 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사업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