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닮은 결단력․추진력‥이어 소통까지 ‘삼박자’

▲ 현대자동차 정의선 부회장(사진제공 뉴시스)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한국 경제를 이끌어 가는 대표적인 기업을 꼽으라면 단연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를 꼽을 수 있다. 두 기업은 한국 경제를 이끌어 가는 것뿐만 아니라 창업주들 또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회자될 만큼 한국 경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또한 지금은 창업주의 2세들이 기업을 이어받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대업을 이루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어 장차 글로벌 기업을 이끌어가기 위한 경영권 승계 문제 역시 닮아있다. 최근에 삼성그룹의 사업구조 재편이 속도를 내면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리더십이 부각되면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 정의선 부회장에 대한 리더십 역시 자연스럽게 집중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현대자동차 정의선 부회장의 리더십에 대해 짚어봤다.


후계 질문 불쾌해 하기도‥“아버지 아직 건재해”
정 부회장 역시 현장경영 중요시…쏙 빼닮아


재계와 증권가, 언론 등 여론에서는 현대·기아차그룹의 후계는 정의선 부회장이 될 것 이라는 시각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정 부회장이 현재 그룹을 이끌어 가고 있는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최근 정 부회장은 현대·기아차그룹의 광고대행 계열사 이노션의 지분을 매각했다.


이노션 지분매각 <왜>


정 부회장의 이노션 지분 매각을 두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성장 전략이라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 부회장이 이노션 지분 매각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경영권 승계를 위한 실탄으로 쓰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14일 이노션은 정 부회장이 이노션 지분 30%(54만주 가량)를 매각했다고 공시했다. 매각 대상은 모건스탠리PE와 스탠다드챠티드, 아이솔라캐피탈 등으로 알려졌다. 매각 대금은 주당 55만 5천 556원이며 총 3000억 원의 규모이다.


이로써 정 부회장의 이노션 지분은 10%로 하락했다. 아울러 이노션의 최대주주는 40%를 보유하고 있는 정 부회장의 누나이자 정몽구 회장의 장녀인 정성이 이노션 고문이 단독으로 올라서게 됐다. 그전까지 정 부회장과 정 고문이 똑같이 4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정 부회장의 이노션 지분 매각은 정부가 지난해 공정거래법시행령을 개정한데 따른 계열사 간의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에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공정거래법시행 개정안은 그룹 총수와 특수관계인이 계열사 지분 30%, 비상장 계열사 20% 이상을 보유한 경우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적용되기 때문에 이를 피하려면 다른 계열사의 지분을 함께 보유하고 있는 정 부회장의 이노션 지분을 줄여야 했다.


앞서 정 회장 또한 지난해 사회 환원을 위해 이노션 지분 20%를 ‘정몽구 재단’에 기부한 바 있다. 특수관계인인 정 고문 역시 이노션 지분 40%를 보유하고 있지만 정 고문은 다른 계열사의 지분을 가지고 있지 않아 개정된 공정거래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로 인해 정 부회장의 이노션 지분 매각은 정부의 정책을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이를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포석이라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현대·기아차그룹의 지배구조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지배구조의 핵심 ‘현대모비스’


현대·기아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제철→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 출자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나머지 그룹의 계열사들은 대부분 손자회사 형태로 그룹에 소속되어 있거나 현대건설,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등은 현대자동차의 자회사로 두고 있는 형태이다.


형식상으로는 순환 출자 구조를 띄고 있지만 지배구조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장악하게 되면 실질적으로 그룹의 경영권을 지배할 수 있다. 하지만 정 부회장은 지배구조의 핵심인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경영권을 물려받기 위해서는 모비스 지분 확보가 필요한 실정이다.


이로 인해 정 부회장은 모비스의 지분을 매입하거나 아버지 정 회장의 모비스 지분을 증여받거나 해야 한다. 이러한 방법들은 막대한 자금(1조~1조 5000억 이상)이 동원되어야 가능하다. 이에 엄청난 현금이 동원되어야 하는 경영권 승계 작업의 해법을 찾기 위해 그룹 내에서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증권가와 업계에서는 이와 관련해 정 부회장이 개인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엔지니어링(11.7%)을 상장사 현대건설과 합병하는 방식으로 우회 상장을 통해 현대모비스 지분 확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또한 그룹이 지주회사겪인 모비스를 사업 부문과 투자 부문으로 인적 분할해 투자 부문을 정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해 새로운 지주회사로 만드는 방안도 예측되고 있다.


지분을 확보하든 정 회장으로부터 증여받든 새로운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든지간에 경영권을 승계 받기 위해서는 실탄확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노션의 지분 매각 또한 이러한 실탄확보의 일환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몽구 회장의 활발한 경영활동


증권가와 언론, 재계 안팎에서는 현대·기아차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놓고 지배구조 재편에 관해 시나리오와 분석 등을 앞 다퉈 내놓고 있지만 실질적인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는 정 부회장은 후계와 관련된 질문에는 어김없이 “아직 아버지가 정정하신데 후계에 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말을 아끼거나 때로는 “아버지가 건재하신데 왜 그런 소리가 나오느냐”며 불쾌해 하기도 한다. 이는 자신이 정 회장을 제치고 경영 전면에 나서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을 극도로 경계하는 것이다.


정 부회장의 말대로 정 회장은 만 76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현장경영을 펼치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 5일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나흘간의 짧은 일정에도 불구하고 미국 동서를 횡단하며 현지 사업장을 둘러보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첫날부터 캘리포니아주 파운티밸리에 위치한 현대차 미국 판매 법인을 방문해 업무보고를 받고 신차 판매현황과 마케팅 전략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튿날에는 앨라배마와 조지아주에 위치한 현대·기아차 현지공장을 차례로 방문해 생산차량들의 품질을 점검했으며 이외에도 로버트 벤틀리 앨라바마 주지사, 네이선 딜 조지아 주지사 등 지방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상호협력 방안을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미국 방문은 유럽, 중국에 이은 세 번째 현장경영이었다.


이처럼 정 회장은 현장경영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현장에서 보고 배우고, 현장에서 느끼고, 현장에서 해결한 뒤 확인까지 한다’는 ‘삼현주의(三現主義)’는 정 회장이 현장경영을 얼마나 중요시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재벌총수 중에서는 회사 공장을 한두 번 순시하는 것으로 현장경영을 한다고 홍보하는 오너들도 있다. 그러나 정 회장은 겉치레로 현장경영을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실제로 정 회장 자신이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치고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정 부회장 역시 현장경영을 중시하고 있다. 지난해 말 미국 LA 판매법인과 앨라배마 공장을 차례로 방문한데 이어 올해에는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현장 점검에 나서고 있다. 과거에는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시장에 활발한 행보를 보였다면 올해부터는 인도와 터기, 오만 등 신흥시장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5월 10일 정 부회장은 인도로 출국해 현지에 있는 현대차 첸나이공장을 방문했고 이어 터키로 이동해 현지 판매현황을 보고받고 마케팅 전략을 지시했으며 터기 이즈미트 공장 생산설비 등을 점검하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터키 일정을 마치고 오만으로 날아가 유럽과 인접해 있는 오만을 비롯한 중동지역 판매현황 등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의바르고 겸손”,현대家 밥상머리 교육 때문
‘디자인 경영’으로 기아차 정상 궤도 올려놓아


고(故)정주영 명예회장의 가정교육


정 부회장의 행보는 정 회장의 현장경영 철학을 그대로 이어 받은 것이다. 정 회장 역시 아버지(故 정주영 명예회장)로부터 경영수업을 받을 때 철저하게 현장 위주로 배운 것으로 유명하다. 정 회장으로부터 현장경영의 중요성을 이어받은 받은 정 부회장을 지켜본 그룹의 임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예의바르고 겸손하다”고 정 부회장을 평하고 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나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절대로 하대하는 법이 없다”며 “비서나 부하직원들에게 항상 높임말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정 부회장이 예의바르고 겸손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현대家의 가정교육의 일환인 밥상머리 교육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현대가의 밥상머리 교육은 ‘현대(現代)’라는 대기업을 맨손으로 일군 창업주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자식들과 동생들까지 아침밥을 함께 먹는 것을 일컫는다.


▲ 고(故)정주영 명예회장(사진제공 뉴시스)


정 명예회장은 생전에 새벽 5시에 자신의 청운동 자택으로 동생들과 자식들을 불러 아침식사를 했다. 혹시라도 아침 식사 시간에 늦으면 여지없이 불호령이 떨어졌으며 그 자리에서 정 명예회장은 때론 헛기침으로 자식들을 꾸짖었고 때론 호탕한 웃음으로 격려하거나 칭찬했다. 아침식사 자리는 단순히 아침밥만을 먹으며 허기를 때우는 자리가 아니라 어른에 대한 예의와 형제 간 우애, 근면과 성실함을 배우는 자리였다.


정 명예회장의 여러 손자들 가운데 정 부회장은 이러한 현대가의 전통중 하나인 밥상머리 교육을 가장 먼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정 회장이 정 명예회장의 장자 역할을 해왔고 정 회장의 외아들인데다가 앞으로 그룹을 이끌 재목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정 명예회장은 이 자리에서 정 부회장에게 “같이 아침을 먹으면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 자신을 낮추면서 남을 높이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기본예절을 배워야한다”고 가르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현대가의 밥상머리 교육으로 인해 정 부회장은 스스로 말을 오랫동안 길게 하지 않고 상대방의 얘기를 주로 듣는 편이며 내성적이지만 우직하고 한번 맺은 인연은 쉽게 저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일례로 경복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 친구였던 한국타이어 조현식 사장과 LIG 넥스원 구본상 부회장과는 지금까지도 남다른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이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과는 사석에서 ‘형, 동생’이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정 부회장은 이 부회장보다 두 살 아래로 두 사람은 호형호제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좌측부터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과 현대자동차 정의선 부회장(사진제공 뉴시스)


그러나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재벌 2~3세들과 별도의 모임을 갖거나 참석하는 일은 거의 없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재벌 2~3세들 중에는 GS 허창수 회장과 코오롱 이웅렬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정몽진 KCC그룹 회장 등이 있다. 다른 재벌가 2~3세들과 어울리는 것을 정 회장이 좋지 않게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성공적인 경영성과


정 부회장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밟은 뒤 일본 이토추상사 뉴욕지사에서 근무했다. 이후 1999년 현대자동차 구매본부 구매담당 이사로 입사해 2000년 국내 영업본부에서 국내 영업담당 및 기획담당을 맡아왔다. 2001년 현대자동차 상무를 거쳐 2002년 전무로 승진하고 2003년에는 현대모비스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5년에는 기아자동차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정 부회장은 기아차 사장으로 승진하기에 앞서 2004년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의 착공이 토지매입 문제로 차일피일 미루어졌던 문제를 직접 현장을 찾아 현지 정부 관계자들과 협상을 벌여 이 문제를 해결했다.


또한 다른 자동차업체에 비해 경쟁력을 잃어가던 기아차의 라인업을 강화하고 경영 정상화를 위해 자동차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06년 정 부회장은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로 평가받던 독일 아우디·폴크스바겐 출신의 피터 슈라이어(Peter Schreyer)를 유럽까지 찾아가 끈질기게 설득해 기아차의 디자인총괄 부사장(CDO)으로 영입했다.


▲ 피터 슈라이어 기아자동차 최고 디자인 책임자(CDO,사장) (사진제공 뉴시스)


이어 기아차의 키워드는 ‘디자인과 브랜드 가치 강화’라는 경영철학을 전면에 내세웠다. 2006년 9월 정 부회장은 파리 모터쇼에서 “기아차 브랜드를 표현할 수 있는 독자적인 디자인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며 “차량 라인업의 디자인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감각적인 디자인 요소를 가미함으로써 세계무대에서 기아차의 경쟁력을 향상시킬 것”이라면서 포부를 밝혔다.


이후 기아차는 승승장구하며 현대차를 위협할 만큼의 수준까지 이르렀다. 정 회장이 영입한 피터 슈라이어는 ‘K시리즈’를 내놓으며 기아차만의 패밀리 룩(Family Look)을 완성했다. 이는 정 부회장 경영성과 중 최고의 성과로 손꼽힐 만한 것이었다. 2008년 기아차는 3085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고 2009년에는 영업이익 1조 1445억 원을 달성했다.


이어 같은 해 세계 3대 디자인 상 중 하나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는 기아차 쏘울이 국내 최초로 ‘Honorable Mention’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정 부회장이 기아차의 사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기아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2007년 21.4%에서 2009년 29.4%로 끌어올렸으며 같은 기간 세계시장 기아차 점유율도 1.8%에서 2.6%로 상승했다. 이 때문에 재계 안팎에서는 비슷한 또래의 재벌 3세들보다 우수한 경영성과를 남겼다고 평가하고 있다.


닮은 듯 다른 정 부회장의 리더십


아울러 정 부회장은 기아차를 3년 넘게 경영하면서 직원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기아차 사장 재임시절 정 부회장은 양재동 본사나 국내영업본부가 있는 압구정 사옥을 종종 들러 야근하는 직원들에게 피자와 맥주 등을 돌리면서 직원들과 수시로 대화를 하며 소통을 중요시해 직원들에게도 신망을 얻었다는 평이다.


기아차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은 후 정 부회장은 2009년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현대차로 돌아왔다. 현대차 복귀 후 현대차만의 감성을 느끼게 하는 브랜드 이미지에 강화에 집중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작업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정 부회장의 역할에 힘입어 현대·기아차그룹은 글로벌 생산·판매량 세계 5위권에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 좌측부터 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사진제공 뉴시스)


정 부회장의 행보를 지켜보면 아버지 정 회장의 스타일과 흡사한 면이 많다. 과감한 결단력과 신중하고 꾸준한 추진력 등은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는 것이다. 또한 임원 및 직원들과도 소주잔을 기울이며 임직원들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소통을 통해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이는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과 자신의 장점을 살려 자신만의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정 부회장은 재계에서 우등생으로 불릴 만큼 아버지 밑에서 착실히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그런 그가 경영수업을 마치고 경영권을 이어 받아 현대·기아차그룹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킬 수 있을지 정 부회장의 행보에 여론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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