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한화, CJ 그룹 등 잇따른 M&A-해외사업 결정‥기업 시계 ‘스톱’

[스페셜경제=조경희 기자]환율, 내수침체, 기업규제…. 국내 경제는 지금 유례없는 경기 침체를 겪고 있다. 일본이 아베노믹스를 통해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하반기 환율리스크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 섞인 분석도 나온다.

이 같은 환율 하락에 따른 가격 경쟁력 저하는 전자, 자동차, 조선, 정유 등 수출 중심 기업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또 업황 불황으로 인해 대형 M&A 매물이 나오는 가운데 투자자를 찾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 가운데 총수 공백이 장기화되는 기업들은 해외 사업도 대형 M&A에도 나서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상 기업의 시계가 멈춰있다는 것. <스페셜경제>에서는 총수 공백이 장기화되고 있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현재의 상황에 대해 살펴봤다.


환율, 내수침체, 기업규제 등 재계 3중고 ‘리스크’
시진핑 주석 방문 ‘희비교차’‥눈도장 못 찍은 기업↓

지난 7월 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기간 중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은 이틀 동안 ‘호텔리어’를 자처하며 일정 전반을 세밀하게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이 호텔에 도착할 때와 떠날 때 직접 현관 앞에서 대기하면서 마중과 배웅을 했다. 시 주석은 떠나면서 이 사장과 악수를 했고, 30~40초 정도 담소를 나눴다. 이번 시 주석의 방한으로 최대 수혜기업이 신라호텔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호텔 신라 주가는 사상 최고가 행진을 벌이고 있다. 1주 당 10만원을 넘어섰는데 이는 상장 이래 최초다. 4~5월 중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는 데에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투숙하면서 인지도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한중 경제통상협력 포럼’에는 국내 굴지의 재벌 기업들과 중국기업 등 총 450여명이 참석했다.

반면 SK그룹은 안타까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최태원 회장은 시진핑 주석이 당 서기관 시절부터 친분을 유지해 왔다. 최 회장은 시 주석이 2005년 저장성 당 서기장 시절부터 알아왔고 지난 2005년 7월 직접 시 주석을 초청하기도 했다. 시 주석은 중국으로 돌아간 직후 최 회장을 저장성으로 초청하는 등 우호관계를 이어왔다.

SK그룹은 지난해 6월 중국 최대 국영석유기업 ‘시노펙’과 3조3000억 원 규모의 석유화학공장인 ‘우한에텔렌 합작법인’을 설립했는데 이는 최 회장의 10년간 노력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평가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양국 기업이 참여한 석유화학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최 회장은 2006년 시노텍과 합작 추진에 합의한 이후 10여 차례 정국 정부 및 시노펙 관계자와 면담하는 등 사업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 제2의 SK를 건설한다는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 중 하나다.

최태원 회장은 시 주석의 국빈 방문 소식을 접하고 중국 시장에서 도약할 기회가 생겼는데도 이를 살리지 못해 아쉽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는 전언이다.


직접 만나 담판


최 회장은 글로벌 사업을 현장부터 직접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 회장은 매년 70% 정도를 해외에서 보내며 글로벌 기업 CEO들을 접촉해 왔다.

2004년 모하메드 알 마디 사빅 부회장이 내한했을 때 처음 만난 두 CEO는 최 회장이 중동을 방문할 때 마다 만나 형제 같은 관계를 다졌다고 알려져 있다. 알 마디 부회장은 최 회장의 추천으로 2008년 하이난성에서 열린 ‘보아오 포럼’에서 이사로 뽑혔다.

스페인 윤활유 원료 공장 건립은 2010년 페루 LNG생산 프로젝트 준공식에서 최 회장이 안토노니오 브루파우 니우보 랩솔 회장과 만나면서 시작됐다. 두 사람은 ‘G20 비즈니스 서밋’에서 다시 만나 세부 합작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다보스포럼, 보아오포럼 같은 무대를 친교 기회로 적극 활용했다는 분석이다. 다보스포럼이 열리면 SK그룹 내에는 TF팀이 꾸려져 새로운 파트너십 기획안을 만들고, 최 회장은 포럼 이후에도 해외 기업 대표들에게 직접 연락하는 등 정성을 쏟은 것으로 전해진다.


해외사업 차질 불가피


최태원 회장은 그간 글로벌 시장 개척에 앞서왔다. 정상‧정재계 지도자를 직접 만나 신사업에 대한 협약을 이끌어냈다. 다보스포럼 같은 굵직한 행사에도 지속적으로 참여하면서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해왔다.

SK그룹이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올해도 대형 해외 합작 사업을 성사시키고 있다. 시노펙과의 합작 석유화학공장이 가동을 시작했고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기업 ‘사빅’과는 사우디에 고성능 합성섬유 소재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스페인 남동부 카르타헤나에서는 올해 하반기부터 윤활유 공장 가동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는 모두 최 회장이 직접 주도했다는 점이다. 최 회장이 1년 반 이상 수감생활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후 해외사업을 일굴 수 있는 ‘동력’이 없다는 점이 큰 문제다.

SK그룹 관계자는 <스페셜경제>와의 통화에서 “해외 자원개발 현장부터 글로벌 파트너사와의 합작들을 모두 직접 챙겼다. 특히 사빅의 경우 수년간 노력했는데 최종합작 체결식에도 참석할 수 없어 안타깝다. 중국 비즈니스의 경우에도 10년 간 공들인 사업이었고 시진핑 주석과의 인연도 특별한데 이런 일들이 이뤄지지 않다보니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국내외 경제여건이 어려운 가운데 SK그룹 또한 내수활성화 차원에서 힘을 보태고 싶은데 M&A 등 실질적인 결정에 나서는 일은 하기가 어려워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SKT 등 주력계열사 하락


지난 6월 27일~28일 SK그룹 CEO 30여명은 경기도 용인 SK아카데미에서 비공개 워크숍을 가졌다. SK그룹 최고경영진이 합숙토론 행사를 갖기는 처음이다. 최태원 회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각 계열사 실적 부진이 겹치면서 위기감이 높았기 때문이다.

SK그룹에서 SK하이닉스를 제외한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등 주력 계열사들의 영업이익은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보다 더 나쁘다. 계열사별 대형 프로젝트는 최 회장이 미리 작업해둔 것을 빼면 사실상 전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SK, 한화, CJ 비상경영‥신사업 대신 기존사업 챙기기
전문경영인 ‘한계’ 노출‥경영공백 최소화 방안 필요해


한화 김승연 회장, '공백 커'


한화그룹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한화그룹은 한화와 한화케미칼 등 주력사들의 매출이 증가하면서 경영 공백이 그룹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화그룹은 3년여간 그룹 매출 등 경영전략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사장단 및 임직원 인사도 5월이 돼서야 발표했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있지만 신규 사업 보다는 기존 사업 챙기기에 나서고 있다.

그 사이 그룹 매출액은 하락하고 있다. 그룹 전체 매출액 증가율은 2011년 8.2%에서 2012년 1.8%로 하락하고 있다. 김승연 회장은 지난 2012년부터 사실상 그룹에서 손을 뗐다. 매출 증가율에서부터 공백으로 인한 후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당장 가장 큰 우려는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 후속 수주다. 이라크 폐허 속에서 신도시를 건설하는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은 김승연 회장의 역점 사업이다. 하지만 현재는 중국, 터키 등 경쟁국가에 밀리고 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난 2012년 80억불 규모의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본계약 현장에서 이라크 총리는 ‘한화는 이제 이라크 회사’라고 말할 정도로 강한 유대감을 표해왔다”며 “향후 실시할 100만호 신도시 건설 계약도 한화그룹이 유리한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승연 회장 부재로 인해 이라크 재건 시장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상실하고 중국이나 터키 등의 후발주자들에게 밀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신도시 건설 외에도 태양광 발전 등 김승연 회장과 이라크 총리 간 구도로 합의된 대형 프로젝트들이 모두 물거품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화케미칼은 지난해 12월 국내 석유화학업계 최초로 이라크에 진출했다. 한화케미칼은 대림산업과의 합작투자를 통해 연산 190만t의 에틸렌 분해 시설인 여천 NCC를 보유하고 있다. 폴리에틸렌 생산능력은 연산 80만t이다.

한화케미칼은 지난해 12월 이라크 현지에 에틸렌 생산설비와 석유화학제품 생산공장 건설을 위한 합작투자 사업 의향서(LOI)를 체결했다. 이 사업은 김승연 회장이 추진한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을 통해 이라크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은 사업인데 다만 이라크 정부와 LOI를 체결하는 데만 1년이 넘게 걸렸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는 것.

상업생산까지 7년 이상 걸릴 정도로 대규모 프로젝트인데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결정과 대정부 협상력이 필요한데 김 회장의 공백 이후로 자칫 차질이 생길까 우려하고 있다.


대정부 협상력 약화


김 회장은 이라크 사업 수주 당시에도 이라크 현지 관계자들을 헬기에 태워 현장을 돌며 한화그룹이 충분히 사업을 수행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라크 정부 고위관료 역시 1차에 이어 2차에 김 회장이 직접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경영인 체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오너 일가의 결단이 필요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필요하다면 직접 찾아가 담판을 짓는 데, 특히 이라크처럼 테러위협이 곳곳에 도사리는 가운데에도 직접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발품을 팔면서 대정부 협상력을 높였다는 평가다.

한화그룹이 또 하나 중점적으로 벌이는 사업은 바로 태양광사업인데, 이 태양광 사업 역시 정부의 보조금 정책이 크기 때문에 대정부 협상력이 필요하다.

김 회장의 공백이 없었다면 한화그룹은 이라크 수주전처럼 해당 국가의 고위 관료들과의 담판을 통해 여러 가지 추가 협상이 가능했다고 분석되는 이유다.


30조 매출목표 달성에 실패한 CJ


CJ는 지난해 그룹 매출 목표 30조원 달성에 실패했다. CJ그룹은 올해에는 안정에 역점을 두며 보수적인 경영에만 매달리고 있다. 하지만 내수 경기 침체와 해외사업 추진 부진이 겹치면서 올해도 실적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신사업은 물론 현 진행사업의 원활한 진행도 힘겨운 모습이다.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의 외삼촌인 손경식 회장을 중심으로 하는 그룹경영위원회를 발족해 비상경영 체제로 전환했다. 하지만 매출액은 하락하고 있다.

CJ그룹은 지난해 목표치 30조원에 못 미치는 28조5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영업이익은 1조1000억 원으로 목표치(1조6000억 원)의 약 70%에 불과했다. 이 회장의 공백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총수의 결단이 있어야 가능한 대규모 투자와 M&A가 보류됐다.

이재현 회장이 검찰 수사를 받은 이후 지금까지 중단되거나 지연된 계열사의 투자 규모가 6400억 원에 달한다.

한편 이재현 회장은 지난 10일 항소심 4차 공판 참석을 위해 서울고등법원에 환자복과 마스크를 쓰고 휠체어에 탄 채 법정에 들어섰다. 특히 환자복 사이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다리가 그간 이재현 회장의 병세가 더욱 심각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이 회장은 신장 기능의 저하와 설사로 인한 탈수, 체중감소 등 때문에 구치소 수감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돼 지난 6월 24일부터 구속집행정지 상태에 있다.

현재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구치소를 오가며 재판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치료가 필요할 경우 제때 구속집행정지를 시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박 의원은 “그 분과 면식도 없고 아무런 관계도 없다”며 먼저 선을 그은 후 “대기업 회장, 고위 공직자 등 모두 법앞에 평등하다. 다만 구속집행정지를 그렇게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은 ‘법에도 눈물이 있지 않느냐’며 유연성 있게 적용해 줬으면 좋겠다”고 권고했다.

CJ그룹 이재현 회장(53)이 앓고 있는 '샤르코-마리-투스(CMT)' 병이 유전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재현 회장은 몸의 말초신경을 관장하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말초신경에 신호 전달이 잘 안 되는 등 장애가 오는 질환인 샤르코-마리-투스 병을 앓고 있다.

특히 신장이식 수술 후 죽음에 대한 공포로 몸무게가 49.5kg까지 감소하고 물 한잔을 마시는 데에도 1분 이상 걸리는 등 극도의 건강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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