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고’ 길어지는 만큼‥업계 신뢰성만 떨어뜨려

[스페셜경제=조경희 기자]포스코가 지난 16일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본부장 회의를 열고 동부패키지 인수가 사실상 어렵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18일에는 인수에 대해 전면 재검토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동부제철 패키지 인수에 대해 포스코가 고심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리고 포스코의 장고가 길어지는 데에는 가격을 두고 벌이는 신경전이라는 의견과 포스코의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있는 매물이 2가지가 있는 만큼 신중론을 보이고 있다는 의견. 또 산업은행으로부터 인수를 제안 받으면서 포스코가 포스코를 둘러싼 환경 속에서 인수 ‘명분’을 찾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유가 어떻든 동부패키지를 둘러싼 인수전에 시장 반응은 포스코가 신뢰성 저하를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격 신경전 vs 인수 포기 vs 명분 찾기에서 ‘줄다리기’
동부, 동부특수강까지 매물로 내놨는데‥채권단 ‘압박’ 커



권오준 회장은 동부패키지 인수건을 산업은행으로부터 제안 받으면서 철강 본연의 경쟁력과 재무구조 개선 두 가지 관점에서 검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는 신용등급 하락 여파도 있다. 권오준 회장은 계열사수를 방만하게 늘렸다고 평가를 받는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과 다른 모습을 강조하면서 회장에 취임했다. 철강 본연의 경쟁력을 회복하겠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하지만 취임 후 동부제철 패키지 인수를 제안 받으면서 인수여부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재무구조 개선과 철강 경쟁력을 원칙으로 삼은 포스코가 산업은행의 제안에 대해 고심하는 이유다.


인수 놓고 고심 <왜>


지난 16일 포스코는 인수가 사실상 어렵다는 뉘앙스를 내비쳤다. 재무구조 개선에 방점을 찍은 만큼 동부제철 패키지를 인수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포스코에 기대를 걸어왔다. 산업은행은 지난 3월 포스코에게 동부제철 패키지 인수를 제안했고 포스코 역시 실사에 나선 바 있다.

동부인천스틸을 중국 등 외국업체에 매각할 경우 국부유출이라는 과제가 남는다. 업계에서는 국내 철강업계 맏형격인 포스코가 인수하기를 내심 기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포스코는 동부인천스틸에 대해서는 시설 노후 등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컬러강판 시장이 공급과잉이고 동부인천스틸의 시설이 노후화된 탓이다.

반면 동부인천당진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진발전소는 타 발전소 보다 송전선로 등이 기확보 돼 있고 수요산업단지가 많아 안전하다는 이유에서다.


채권단, 동부그룹 압박


16일 포스코가 동부제철 인수에 대해 포기했다는 설이 퍼지면서 17일 동부그룹은 산업은행으로부터 1000억 원의 사재출연을 두고 갈등을 빚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부그룹은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지 못한 기업이다. 동부그룹과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과의 갈등은 김준기 회장의 사재출연과 유상증자 이행 때문이다.

동부그룹은 지난해 재무구조개선을 위해 1000억 원의 사재출연을 약속한 바 있다. 이는 유상증자를 통해 800억 원의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뜻이었는데 동부제철 인천공장 패키지가 ‘산’으로 가고 있다는 것도 포함된다.

또 당초 동부특수강에 대해 IPO 절차를 진행하려던 것과 달리 매물로 내놓는 등 재무구조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오히려 산업은행이 김준기 회장의 장남인 김남호 동부제철 부장이 보유한 동부화재 지분 13% 가량을 담보대출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것.

동부그룹 관계자는 <스페셜경제>와의 통화에서 “동부특수강 등을 IPO 대신 시장에 매물로 내놓는 등의 행동을 보이고 있지만 동부그룹에서 주장하고 있는 동부제철 인천공장 패키지에 대해 경쟁 입찰, 개별매각 등의 요구는 수용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인수 ‘전면 재검토’


이런 가운데 포스코가 동부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 인수 건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18일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포스코 권오준 회장은 지난 16일 열린 본부장 회의에서 동부 패키지 인수를 전면 재검토하기로 결정하고, 실사 결과 보고서를 인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가치경영실 M&A팀에 다시 내려 보냈다.

포스코 M&A팀은 빠른 시일 내에 실사 결과 보고서를 재작성해 권 회장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포스코가 실사 결과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보기로 한 것은 보고서대로 인수 가격을 써낼 경우 협상이 불발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 M&A팀이 작성한 실사 결과 보고서에는 동부 패키지의 가격이 시장가보다 낮게 책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동부 패키지의 가격을 7000억~1조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동부그룹의 재무구조 개선이 시급하긴 하지만 헐값에 팔수는 없는 상황이다. 동부 패키지가 동부그룹의 자구계획안에서 가장 핵심이기 때문이다.

동부그룹은 동부인천스틸만 놓고 봐도 장부가액 6700억 원에 연간 매출액 1조원, 영업이익 700억 원의 실적을 올리고 있다는 점을 동부 패키지에 프리미엄을 얹어 1조5000억원은 받아야 한다고 주장이다.

더구나 산업은행이 포스코에 인수 가격의 70~80%를 재무적 투자자 자격으로 지원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한 만큼 가격 수준에 있어서만큼은 물러서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인수 가격 통보를 앞두고 포스코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또 동부 패키지 실사를 시작한 지난 4월과 최근의 상황이 다르다는 것도 포스코가 신중 모드로 돌아선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최근 포스코는 계열사 포스코에너지가 동양파워 입찰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2건의 인수합병(M&A)건을 진행하는 중이다. 포스코에너지는 동양파워 입찰에 4000억 원을 제시한 상태다. 18일 포스코에너지는 동양파워를 4311억 원에 인수키로 결의하는 등 인수 제안을 받던 상황과 달라졌다는 것.

일각에서는 포스코, 동부그룹, 산업은행이 인수가격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고 평한다. 인수에 부정적인 분위기이지만 결국 포스코가 ‘가격’을 놓고 벌이는 줄다리기라는 것. 가격을 두고 한 쪽은 깎고 한 쪽은 올리려는 눈치게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배타적 우선협상권 요구?


지난 18일 <조선비즈>는 포스코가 패키지 인수계약의 핵심 매물인 동부발전당진의 배타적 우선협상권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인수 검토를 요청받은 포스코는 “동부발전당진에 대한 우선협상권을 보장받으면 산업은행 측의 제안을 검토해보겠다”는 반응을 보였고, 이에 따라 산업은행이 포스코에 패키지 딜 전체에 대한 우선협상권을 주는 수의계약 방식으로 협상에 수반된 자산 실사 등이 추진했다는 것.

그러면서 동부그룹이 반대하는 패키지 딜에 대해 수의계약 형태로 이뤄지는 것이 포스코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산업은행과 포스코가 3월 27일 발표한 매각 제안서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포스코의 재무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동부제철 인천공장의 지분의 70~80%를 인수하고, 포스코가 나머지 지분 20~30%를 인수하면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또 동부발전당진에 대해서는 포스코를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하겠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면서 IB업계 및 산업은행의 말을 인용, “포스코가 우선협상권을 요구했기 때문에 인수 의지가 어느 정도 있다고 판단했다”며 “배타적 우선협상권이 인정되는 수의계약 형태로 패키지 인수 협상이 추진된 것에는 포스코의 의지가 상당히 반영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스페셜경제>는 포스코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기사의 방향이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작성되고 말 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홍보팀에서)말 한 것으로 나와서 응대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말로 답변을 피했다.

사실 권 회장 입장에서는 이번 동부패키지는 계륵과 같은 존재다. 포스코의 현 경영상황으로 봐서는 동부패키지를 굳이 인수하지 않아도 된다. 더 심각하게 살펴보면 인수를 포기하는 것이 해답 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는 권 회장이 정권의 묵인 하에 수장이 됐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엄밀히 따지면 겉은 사기업이지만 실은 반공기업이기 때문이고 정권에서 낙점하는 인사가 회장으로 선출됐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정부의 요구에 쉽게 거부할 수 없다. 작금 인수전 갈등은 이런 문제들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재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문제는 이번 동부패키지 인수전에서 포스코가 시간 끌기와 명분 쌓기를 하다 보니 동부그룹과 산업은행까지 덩달아 시장에서 신뢰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권 회장이 리더십을 발휘해 인수전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이제는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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