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한시의 이면

[스페셜경제=현유진 기자]선비의 삶과 사상을 담은 한시를 독자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앞장서온 강원대 김풍기 교수가 <한시의 품격>을 출간했다.


조선시대 주류 문화인 한시를 본격적으로 다루며, 그 속에서 조선 지식인 사회와 문화를 읽어낸다. 저자는 한시를 양반만의 전유물로 바라보지 않는다. 사대부의 시뿐만 아니라 속세를 벗어난 승려의 시 그리고 신분적 불평등을 문학으로 승화한 중인들의 작품까지 폭넓게 살핀다.


좋은 시작품을 읽는 가운데 자연스레 그 안에 깃든 ‘옛사람이 시를 보는 눈’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들이 읊은 한시의 세계가 오늘날 우리 삶의 풍경과 다르지 않음을 알게 하려는 의도다.


저자는 고상한 듯 보이는 한시의 세계뿐만 아니라 한시와 더불어 살아가던 이들이 일으키는 잡음까지 포착해서 생생하게 들려준다. 옛것을 인용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던 문화에서 표절의 경계는 어디까지인지, 자존심을 건 문인들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하게 전개되었는지, 날선 비평의 세계에서 한시가 어떻게 살아남아 전해지는지 등 조선 지식인 문화의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서슴없이 들춘다.


시가 곧 권력…선비문화 이해하기


10대의 어린 총각부터 70대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함께 어울려서 답안지를 쓰고 마음 졸이며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는 것은 과거시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렇듯 입신양명을 꿈꾸며 관직에 나아갈 때도, 모든 명예를 버리고 초야에 묻힐 때도 그들 곁에는 언제나 한시가 함께했다.


저자는 선비 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한시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좋은 한시 작품을 소개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일견 어려워 보이는 시운론(時運論), 천기론(天氣論), 성령론(性靈論) 등의 문학이론을 깊이 있게 다루는 이유다.


하지만 그 핵심을 설명할 때에는 서거정, 이규보, 허균 등의 문집에 실린 글과 시작품을 직접 인용해 옛사람의 생각을 직접 대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조선시대 안내서 역할 ‘톡톡히’


조선시대는 시를 짓는 능력 자체가 권력을 쥐는 열쇠인 시대였다. 그런 까닭에 과거를 준비하는 이들은 모두 시를 짓는 방법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마치 그림을 그리듯 시를 써야 한다거나, 한자 자체의 소리와 높낮이를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거나, 작품의 구성과 글자의 배치를 섬세하게 배려해 깊은 뜻을 숨겨놓아야 한다는 식의 한시 작법론은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선비들이 모두 이같이 올곧은 방법으로 작품 활동에 매진한 것만은 아니다. 글이 하나의 권력인 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언제나 표절의 유혹에 직면하게 마련인데, 그 양상은 오늘날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아예 표절과 창조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하기 수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한시의 파란만장한 이야기에 대해 <한시의 품격>은 일종의 안내서 역할을 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한시론, 한시작법, 한시비평론이라는 어려운 이름에서 벗어나 한시 자체에 주목하며 한시의 품격과 그 속에 깊이 밴 선비 문화를 이해하는 안목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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