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과 보수의 기업’ 태광의 변화 예고


[스페셜경제=구경모 기자]태광그룹이 달라지고 있다. ‘은둔과 보수의 기업’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폐쇄적이었던 조직 문화를 버리고 대내외 소통을 늘리는 등 다방면에서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그룹 홍보에도 힘을 쏟으며 고객과의 접점을 찾고, 사회공헌활동과 경영 효율화에도 적극 나서는 등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태광그룹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심재혁 태광산업 부회장이다. 그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지난 2011년 1월 구속 기소된 후 경영 공백을 메우기 위해 2012년 3월 긴급 투입됐다. 심 부회장은 작년 12월 24일 연매출 8조원, 영업이익 8000억 원 달성을 목표로 하는 장기 사업전략인 ‘JUMP 2088 비전’을 발표하며 그룹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인 태광그룹의 형성과 혼맥에 대해 살펴봤다.


‘경주 이씨(慶州李氏)’의 가풍을 이어받은 이 창업주
롯데家와 KCC家로 연결되는 이호진 전 회장의 혼맥


고 이임용 창업주는 1921년 경북 영일군에서 중농(中農)인 이우식씨와 정막랑씨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이 창업주는 보통학교를 마친 후 일본으로 건너가 간조실업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1942년에 귀국해 부친의 권유로 같은 동네 유지 이송산씨의 맏딸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와 중매로 결혼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면사무소에서 일하는 평범한 공무원이었던 이 창업주는 이 결혼으로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와 창업동지인 이기화 전 태광그룹 회장과도 연결되며 인생의 전기를 맞게 된다. 이기택 전 총재와 이기화 전 회장은 이 전 상무의 남동생들이다.


두 처남‥이기화와 이기택


이 창업주는 1951년에 공직을 그만두고 54년 부산 문현동에 태광그룹의 모체인 태광산업사를 설립한다. 부산의 조그만 직물공장에 불과했던 태광산업은 훗날 나일론, 스판덱스 등 다양한 섬유 소재의 호황기를 거치며 대규모 섬유업체로 성장하는 데 성공한다.


사실 초기 태광은 이 창업주와 이선애 전 상무가 함께 일구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부산에서 소규모 직물 공장을 먼저 시작한 것은 이 전 상무였다. 이 전 상무가 시작한 공장의 사업이 번창하자 이 창업주가 공무원 생활을 그만 두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이후 박정희 정권이 경제 개발을 위해 수출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태광그룹은 눈부시게 발전하기 시작한다. 당시 태광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제품이 바로 아크릴이다. 양모의 대체품이었던 아크릴은 당시 수요가 많았고 경쟁업체도 적어 태광이 고속 질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이 시기에 이 창업주는 동양합섬, 고려상호신용금고, 흥국생명, 대한화섬, 천일사 등을 연달아 인수하며 외형을 키워 비로소 그룹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이선애 전 상무의 동생이자 창업 동지인 이기화 전 태광그룹 회장이다.


이 창업주와 이기화 전 회장은 재계 40위권인 현재의 태광그룹을 함께 만들어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반면 이 창업주는 또 다른 처남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로 인해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한다. 이전 총재가 야당을 대표하는 거물급 정치인이어서 군사정권 시절 태광그룹은 수차례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으며 거센 정치권의 외풍에 시달리게 된다. 이때의 영향으로 인해 외부에 스스로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은둔형 분위기와 보수 안정적인 경영스타일이 태광그룹의 사풍처럼 굳어졌다는 것이 재계의 평가다.


연애는 없다‥오직 중매 뿐


이 창업주는 이선애 전 상무와의 사이에서 식진·영진·호진 3형제와 경훈·재훈·봉훈 세 자매를 뒀다. 절의를 중요시한 ‘경주 이씨(慶州李氏)’의 가풍을 이어받은 이 창업주는 평소 유교적인 면을 강조하며 전통과 관습을 소중하게 여겼다. 그래서 태광그룹 2세들은 연애 결혼한 커플이 없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 같은 영향으로 이 창업주는 3남3녀의 자녀를 명문가에 중매로 결혼 시켰다. 덕분에 태광그룹의 2세들은 내로라하는 정·관·재계의 명문 집안과 백년가약을 맺어 화려한 혼맥을 구축하게 된다.


장남인 고(故) 이식진 전 태광산업 부회장의 혼사는 다른 형제들과 비교하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전 부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태광산업의 영업과장으로 일하다 부친인 이 창업주의 명으로 진임순씨와 결혼하게 된다. 임순씨는 개인사업가 진재홍씨의 장녀다. 이들 부부는 슬하에 정아, 성아, 원준 등 1남 2녀를 낳았다.


차남 고(故) 이영진씨는 연세대 상대를 졸업했다. 그 후 모친인 이선애 전 상무의 친구가 중매를 서, 고(故) 장상준 전 동국제강 회장의 4남 2녀 중 막내 딸인 옥빈씨와 결혼했다. 이영진씨는 슬하에 성준, 성은 남매를 뒀다.


이 창업주는 삼남인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혼인으로 롯데가와 인연을 맺게 된다. 이 전 회장의 부인은 신격호 롯데 총괄 회장의 여섯째 동생인 신선호 일본 산사스식품 회장의 맏딸 유나씨다.


이 전 회장은 대원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미국으로 건너가 코넬대 경영학석사(MBA)와 뉴욕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들 부부는 슬하에 현준, 현나 남매를 뒀다. 또한 이 전 회장의 결혼으로 태광그룹은 멀게는 KCC와도 연결된다. 신격호 회장의 조카 최은정씨가 정몽익 KCC 대표이사 사장과 결혼했기 때문이다.


한편, 장남인 고 이식진씨와 차남인 고 이영진씨 모두 태광그룹에서 중역 자리를 역임했으며 이후 2004년에 삼남인 이호진 전 회장이 회장 자리에 올라 경영을 맡게 된다. 이는 유교적 가풍을 지닌 고 이임용 창업주의 뜻에 따라 남자에게 가업을 잇게 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아들들 보다 화려한 딸들의 혼맥


이화여대를 졸업했다는 공통점을 지닌 이 창업주의 세 딸들은 모두 화려한 혼맥을 자랑한다. 장녀 경훈씨는 친척 할머니가 중매를 서, 고 허만정 LG그룹 공동창업주의 막내아들 허승조 GS리테일 부회장과 결혼한다.


차녀 재훈씨는 고 양택식 전 서울시장의 장남 원용씨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원용씨는 현재 경희대학교 의대 교수로 일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슬하에 서윤, 서정, 서인, 혁준 등 1남3녀를 두고 있다. 이 창업주는 재훈씨의 결혼으로 정계 유력인사들과 연결된다. 양택식 전 시장의 동생인 양기식씨의 딸 경희씨가 홍석조 BGF 리테일 회장의 부인이다. 홍석조 회장의 누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리움미술관 관장이다. 다시 말해 이 창업주는 고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이 사돈의 사돈이 되는 셈이다.


새로운 성장 동력‥방송·미디어 진출과 종합금융체제 구축


신선호 회장의 손자…두 번째로 많은 재산 가진 이현준


이외에도 태광그룹은 양택식 전 시장 가문을 중심으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노신영 전 국무총리, 김한수 한일합섬 창업주 등과 한 다리 건너 사돈 관계를 맺어 화려한 인맥을 구축한다. 또 막내 딸 봉훈씨는 한광호 한국베링거인겔하임 명예회장의 아들 한태원 전 한국베링거인겔하임 회장과 혼인해 슬하에 동우, 상우, 정우 3남을 뒀다.


미디어 부문에 집중 투자


“나무는 숲과 함께 자라야 한다”며 이임용 태광그룹 창업주는 생전에 ‘내실 있는 정도경영’을 강조했다. 이 창업주는 나무가 숲에서 자라지 못하면 뿌리를 내리기 힘든 것처럼 기업인이 정치나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보다는 사업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다.


이러한 이 창업주의 한눈팔지 않는 ‘내실 경영’은 태광그룹을 자산 24조 규모의 대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밑바탕이 됐다. 그랬던 태광이 1996년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된다. 같은 해 11월 창업주인 이 전 회장이 75세를 일기로 타계하면서 3남인 이호진 전 회장이 경영 전면에 부상했기 때문이다.


1997년 태광산업 사장에 이어 2004년 태광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 전 회장은 섬유가 주력이었던 태광그룹의 업종 전환을 시도한다.


우선 이 회장은 1997년 케이블 TV 회사인 ‘태광 티브로드’설립을 시작으로 2003년 이후 미디어 부문에 집중 투자하기 시작한다. 현재 티브로드는 국내 최대 복수 유선방송 사업자(MSO: Multiple System Operator)로서 전국에 21개 유선방송 사업자를 보유, 방송·초고속 인터넷·VoIP(인터넷 전화)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또 금융 쪽으로 흥국생명, 흥국화재, 흥국증권, 흥국자산운용, 고려저축은행, 예가람저축은행 등의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태광그룹은 보험에서 증권, 투신, 자산운용, 대출, 예금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이고 전문적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석유화학·서비스·레저 분야에도 진출해 계열사 40개를 보유한 재계 40위권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은 2011년 회삿돈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 기소 돼 퇴임했다, 이에 이 전 회장의 처외삼촌인 심재혁 부회장이 2012년 3월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이다. 심 부회장은 이후 기업 혁신을 부르짖으며 새로운 변화를 주문하고 나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전 회장의 부인 신유나 씨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여섯째 동생인 신선호 일본산사스식품 회장의 딸이며, 심 부회장의 누나가 신선호 회장의 부인이다.


3세 경영 준비 완료?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은 친동생 9명과 조카 25여명을 두고 있다. 직계와 방계 비속이 국내 명문가 자녀와 잇달아 혼인하면서 신 회장은 태광그룹, 아모레퍼시픽, KCC, 한진그룹 등 재벌 총수 일가와 사돈을 맺었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3세의 보유자산은 엄청나다. 재산 대부분은 주식이다.


신 회장 일가의 3세 중 두 번째로 가장 많은 재산을 가진 이가 바로 신 회장의 여섯째 남동생인 신선호 일본산사스 회장의 손주 이현준씨다. 신선호 회장의 딸 유나씨가 이호진 전 회장과 결혼해 낳은 첫째 아들이 이현준씨다. 이현준씨는 티알엠(167억원)·티시스(162억원)·티브로드홀딩스(238억원)·한국도서보급(26억원) 등 주식 593억 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6월 태광그룹이 지배하고 있는 계열사 3곳(티알엠, 티시스, 동림관광개발)이 합병했는데, 그 중 합병 법인의 지분 44.62%를 소유하게 돼 그룹 지배력도 공고해졌다. 이 때문에 이 전 회장이 횡령·배임 죄로 실형을 선고받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지금 3세 경영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얘기가 재계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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