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궤적


[스페셜경제=김민정 기자]1968년 첫 작품을 발표한 이래 방대한 저술활동을 펼쳐온 탁월한 역사작가 시오노 나나미. 15년에 걸쳐 완간한 ‘로마인 이야기’시리즈를 비롯하여 ‘바다의 도시 이야기’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등 흥미진진한 역사 논픽션을 쉼 없이 써왔다. 또한 ‘남자들에게’ ‘침묵하는 소수’ 등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품격 있는 삶의 태도와 스타일을 말하는 매력적인 에세이로 사랑받아 왔다.


그런 그가 이번에 펴낸 에세이집 ‘생각의 궤적’은 1975년부터 2012년에 이르기까지 지난 37년간 다양한 매체에 실린 그의 글들을 엄선하여 엮은 책이다.


처녀작 ‘르네상스의 여인들’에 이어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과 ‘신의 대리인’으로 신인 딱지를 뗀 젊은 작가였던 30대부터, ‘로마인 이야기’ ‘르네상스 저작집’ ‘십자군 이야기’ 등 대작들을 펴낸 70대 노작가로 명성을 얻기까지, 긴 세월 동안 틈틈이 써온 이 에세이들은 작가 인생 중 한 순간을 기록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데 엮어놓으면 일관된 신념으로 이어지는 삶의 궤적이다.


로마의 가을


20대의 시오노는 자신의 꿈을 좇아 이탈리아로 홀로 건너갔었다. 그의 발길이 처음 닿은 곳은 다름 아닌 10월의 로마. “로마의 가을은 나를 역사 작가로 만들었다”고 할 만큼 매혹적인 도시였다. 그리하여 1년 예정으로 떠난 유럽 여행은 로마를 본거지로 삼은 긴 여행이 되었고, 40여 년이 넘는 이탈리아 거주로 이어졌다.


그 세월 동안, 그가 처음 품은 꿈과 계획이 차근차근 영글어갔음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를 바다 건너 저 먼 나라의 과거 이야기 속으로 인도해준 수많은 작품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생각의 궤적’에는 우리가 기존의 작품에서 접할 수 없었던 시오노의 여러 얼굴이 담겨 있다. ‘글이 곧 사람이라지만 먹는 것 또한 그 사람을 나타낸다’고 말하는 그에게 식사 자리는 무척 큰 의미가 있다.


음식을 즐기면서도 유쾌한 대화를 만들 줄 아는 친분 있는 두 선배 학자들을 시오노는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녀는 여행지에선 현지 음식을 먹어보라고 당부한다. 음식에는 그 나라의 문화와 문명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흥미로운 대목은, ‘작가’ 시오노의 집필실 풍경일 것이다. 때로는 가볍고, 때로는 진지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우리는 그가 어떤 자세로 작품에 임했는지 알 수 있다.


오직 작품에만 전념


예컨대 시오노가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한 남자’ 체사레 보르자에 대해 쓸 당시를 회고하는 대목에는 관능이 넘친다. 연인과 사랑을 나누는 여자의 뜨거운 몸짓이 연상될 정도다. 한편 그의 준비된 역사관과 주도면밀한 작품 취재 과정이 드러나는 대목도 있다.


그는 ‘로마인 이야기’를 준비할 당시 가난한 신인 작가였다. 15년 이상 걸릴 작품을 준비하며 들 생활비를 계산해 보고는 좌절했지만, 이윽고 오직 집필에만 전념할 뿐 다른 생각은 하지 말자고 자신을 다독여, 결국 ‘로마인 이야기’를 완성한다.


이 때 쓴 만년필만 모두 4자루다. 여든이 가까워오는 지금도 차기작을 집필 중인 현역 작가 시오노 나나미. 지중해의 태양에 이끌려 떠나온 긴 세월 동안, 그는 쓰고자 마음먹었던 것들을 차근차근 써왔다. ‘생각의 궤적’은 이미 펴낸 그의 책들을 다시 들추어보고 싶게 만드는, 지중해의 태양과 바람을 담아 독자에게 보내는 시오노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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