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뀔 때 마다 ‘찍어내기’…공공성 땅에 추락

[스페셜경제=조경희 기자]정권이 바뀔 때 마다 반복되는 것이 바로 인사논란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지만 ‘낙하산’ ‘코드인사’라는 말이 더 익숙한 이유다. 박근혜 정부 들어 밀실 인사라는 말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을 반증한다.

하지만 KT, 포스코, KB국민은행을 둘러싼 논란의 양상은 조금 다르다. 정부가 효율성 제고를 위해 민영화시킨 공기업에 대해 끊임없이 외압을 가한다는 지적 때문이다. 청와대는 즉시 “압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사임을 발표한 KT 이석채 회장의 경우 검찰 수사라는 압박 카드를 내밀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포스코 정준양 회장도 비슷하다. 정부 지분이 사라지면서 청와대나 정부가 이들 기업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는 없다. 하지만 의례히 5년 마다 ‘목’이 날아가고 진행하던 사업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수난사가 이어지고 있다.


박 대통령 당선인 시절 ‘낙하산 인사’ 일침 놓더니…
5년마다 외압퇴진‧낙하산 수두룩‥내부승진 ‘절대 NO’

지난 11월 3일 이석채 KT 회장이 아프리카 르완다 출장에서 귀국한지 하루 만에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남중수 전 KT 사장이 물러난 지 5년 만에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 되는 것이다. 이 회장이 돌연 사퇴를 표명한 배경에는 검찰 수사의 강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데 대한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포스코 정준양 회장 역시 사의를 표명했다. 그간 포스코는 공기업 수장이 차례로 물갈이 되면서 교체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온 기업이다. 포스코는 지난 9월 박근혜 대통령의 베트남 순방에 동행할 경제사절단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교체설이 다시 일기도 했다. KT 이석채 회장도,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효성 조석래 사장 역시 초대되지 못했다.

그간 끊임없이 교체설이 흘러나왔던 KT는 배임 혐의로 검찰수사가, 효성그룹 역시 수천억 원 대 탈세혐의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재계 서열 26위인 효성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사돈 지간이다. 조 회장의 동생인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 아들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은 이 전 대통령의 셋째 딸 수연씨와 결혼했다.

정부의 이 같은 행동은 대표적 ‘MB맨’에 대한 솎아내기 차원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 같은 솎아내기가 일체의 정부 지분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KT와 포스코는 이미 민영화된 지 10여년이 넘은 상황에서 청와대가 인사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민영화 시켜놓고 일일이 간섭 <왜>


KT와 포스코는 공기업에서 민영화의 길을 걷고 있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삼성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건희 회장 같은 실제 ‘오너’가 없다는 점에서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잡음이 일고 있다.

또 낙하산 인사나 정부 입김에 휘둘리면서 사실상 ‘무늬’만 민영화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KT는 지난 2001년 민영화했으며 성공적인 민영화 성공 사례로 꼽힌다. 사의를 표명한 이석채 회장은 지난 2011년 연임에 성공했으며 정보통신부장관을 지냈고 MB 정부 시절 국민경제자문위원을 지낸 바 있다.

이 회장은 그간 성공적으로 KT를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 출장 차 자리를 비운 지난달 31일 KT 사옥 외 비서실장 등 최측근의 사무실과 주거지까지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 강도를 높이자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이 회장은 사의를 표하며 직원들을 향한 이메일에 “회사를 살리는 것이 저의 의무이기에 회사가 마비되는 것을 그대로 지켜볼 수는 없었다”며 “아이를 위해 아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솔로몬 왕 앞의 어머니 심정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적었다.

검찰은 KT가 적자가 예상되는 사업에 재투자한 뒤 이를 계열사로 편입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참여연대의 고발 건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T는 “고발 내용은 회사의 ‘경영상 판단’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제기된 것으로, 배임 혐의 등이 성립하지 않으며 부동산 관련 부분은 자료에 대한 이해를 잘못한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이 회장도 지난달 29일 르완다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KT가 그동안 실시한 인수합병이 실패한 적이 있느냐”며 “벤처기업은 어느 나라든 인수하면 (수익을 내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고 배임혐의를 강력히 반박했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검찰 수사를 자신의 사퇴 압박 카드로 느껴 사퇴를 결정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 회장 역시 사퇴설에 대해 “거대 쓰나미를 어찌 돌파하겠냐”라고 발언한 것으로 아려지면서 검찰 수사에 대해 사퇴 압박을 느꼈음을 시사했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의 사퇴가 ‘시기’가 문제였을 뿐, 오래 전부터 기정사실이나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한다.

이 회장이 사퇴를 결정하고 나자 시선은 자연스럽게 포스코에 쏠리고 있다. 포스코에 대한 압수수색, 사퇴 압박, 사퇴 표명 수순을 걷게 된다는 것. 다만 ‘시기’만 조율중이라는 것이다.

포스코 정준양 회장은 지난 16일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이석채 KT 회장의 사퇴에 이어 불과 10여일만의 일이다.

정 회장의 전임인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도 임기를 1년여 남겨둔 2009년 1월 돌연 사퇴 선언을 했다. 검찰이 이 회장 집을 압수수색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이 전 회장은 당시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서”라고 사퇴 이유를 설명했지만 사실상 사퇴 압박으로 보여진 것이 사실이다.

황경로 2대 회장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후 1년 만에 물러났고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만제 회장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유상부 회장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퇴임했다.

이구택 전 회장 후임이었던 정준양 회장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지난 2009년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하물며 포스코 초대 명예회장이었던 고 박태준 회장 마저 불명예퇴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정몽준 의원 “교체의도 있다면 국민 실망”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은 지난달 30일 검찰이 KT 이석채 회장에 대해 배임 혐의로 수사 중인 데 대해 “만에 하나라도 정권이 바뀌었으니 자기 사람을 심겠다는 의도가 있다면 국민을 실망케 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최근 KT나 포스코처럼 공기업에서 민영화에 대한 검찰수사와 세무조사가 이뤄지는데 새 정부 출범에 따른 경영자 교체를 위한 것이 아니냐고 세간에서 말들이 많아 걱정”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5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같은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어 법치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나온다”며 “이 회장에 대해서는 배임과 함께 비자금 의혹까지 제기됐지만 시중에서는 이를 정치적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더 많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정확히 5년 전에는 남중수 KT사장이 검찰 수사로 자리에서 물러난 것을 기억할 것”이라며 “죄가 있으면 조사받고 처벌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번 일에 대해 새 정권이 출범하면서 반복됐던 전 정권 인사 축출과정이 아닌가 하는 말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민간기업에 왜 ‘입김’ 행사하나


KT와 포스코는 정부가 단 한주의 주식도 갖고 있지 않은 민간기업이다. 정부가 관행처럼 ‘입김’을 행사하려면 KT나 포스코의 주식을 사서 인사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회장 사퇴를 계기로 KT가 100% 민간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새 정권이 출범하면 기존 CEO가 물러나고 친정부 성향의 ‘낙하산 CEO’가 취임하는 식의 행태가 반복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KT의 주주는 국민연금공단(8.65%), NTT도코모(5.46%), 실체스터(5.01%), 미래에셋자산운용(4.99%), 우리사주조합(1.1%) 등으로 구성돼 있다. 자사주의 비중은 6.6%이며 외국인 주주는 43.9%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시민단체들 역시 CEO 선임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사회 각층의 인사들이 CEO 추천위원회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행 KT 정관에 따르면 CEO 추천위원회는 사외이사 7명 전원과 사내이사 1명으로 구성된다. CEO추천위원회가 재적위원 과반수(위원장 제외) 찬성으로 후보를 결정하면 주주총회에서 최종적으로 선임 여부가 확정된다.

KT새노조, 참여연대민생희망본부, 언론연대 등 노동·시민단체들은 12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T이사회가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밀실에서 후보추천 절차와 후보를 결정할 게 아니라 반드시 국민적 여론 수렴을 해야 한다”며 “사회 각계각층의 존경받은 인사들로 CEO 추천위원회가 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KT 인사태풍 ‘불가피’


강력한 조직 장악력으로 5년간 KT를 이끌어온 이석채 회장이 물러나게 됨에 따라 경영 공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진다.

KT 이사회는 지난 12일 다음 주 초 CEO추천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차기 회장 선임을 앞당겨 경영 공백을 최대한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예상 외로 차기 CEO 선임까지 기간이 길지 않을 수는 있지만 KT가 직면한 현안이 산적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CEO 부재에 따른 타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KT는 지난 3분기 실적에서 이동통신사 중 유일하게 매출 하락을 기록했다. 매출이 작년 동기보다 7.3% 줄었으며 당기순이익은 63.1%나 감소했다. 무선 가입자당 평균매출(ARPU)도 유일하게 감소했으며 무선 가입자수는 3분기에만 11만4천명이나 줄었다.

특히 이 회장 재임 중 외부에서 영입된 임원이 30여명에 이르고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낙하산 인사’로 분류하기도 한다.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달 미래창조과학부의 국정감사에서 “낙하산 연합군이 KT를 장악하고 있다”며 이 회장을 정점으로 한 ‘낙하산 36명’의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남중수 전 사장이 퇴임하면서 그의 재임시절 영입인사들이 대부분 퇴사한 것을 고려하면 역시 이 회장의 영입인사들도 그와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이 회장이 물러나는 것뿐만 아니라 이 회장의 측근들까지 함께 구조조정 될 ‘인사태풍’이 예고되고 있다.


친박계 인사 ‘막을 수 있나’


이석채 회장 사의표명 이후 표현명 T&C(텔레콤&컨버전스) 부문 사장이 공백을 메우는 상황에서 후임 CEO가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표 사장 외 김일영 코퍼레이트 센터장이 거론되고 있는 상태다.

표 사장이 차기 수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김 사장의 경우 이 회장의 측근으로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올라있어 두 사람 모두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 주변에서는 이미 두세 달 전부터 청와대 민정라인에서 후보군 3배수 검증 작업을 마쳤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KT 회장이라고 해서 꼭 IT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사람”이라는 말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이 회장 사퇴를 계기로 KT가 100% 민간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새 정권이 출범하면 기존 CEO가 물러나고 친정부 성향의 새 CEO가 취임하는 식의 행태가 반복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움직임에 대해 청와대의 카드가 무엇일까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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