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택배기사, "노예계약 강요하는 본부 각성하라" 시위

[스페셜경제] 공공기관도 ‘갑을(甲乙)논란’에 예외는 아니었다. 추석명절을 앞두고, 우정사업본부가 위탁 택배노동자들과의 갈등에 직면했다. 이들 위탁 택배노동자들은 최근 우정본부의 각종 ‘불공정거래’로 인해 생존권마저 위협받고 있다며 사측의 ‘갑의횡포’(의혹)를 폭로했다. 우정본부 측이 택배물건(이하 택배물) 무게에 따라 수수료를 차등지급하고, 하루 택배수량을 제한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됐다. 절정은 지금부터다. 추석을 일주일 남겨두고, 노동자들은 ‘운송 거부’의 움직임을, 사측은 ‘파업을 주도한 노동자 거르기(블랙리스트)’ 의혹에 시달리고 있다.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린동 우정사업본부(이하 우정본부) 앞, 우체국 위탁 택배노동자들이 ‘택배물’ 대신 ‘피켓’을 높이 들고 섰다. 피켓엔 “슈퍼갑(甲) 우정본부, 막파가식 횡포 더 이상은 못 참겠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추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지금, 택배업계는 ‘특수’를 맞았지만 우체국 위탁 택배노동자들의 하루 일과는 타 경쟁사업체 노동자들과는 조금 다르다.


이들은 최근 위탁 택배노동자 생존권 사수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구성하고, 사실상의 사측인 우정본부와 대립중이다.


비대위는 우정본부가 △중량별 차등 수수료제 도입, △일일 택배수량 제한 등 ‘불공정거래’로 택배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비대위 측은 지난달부터 가두시위를 진행 중이지만, 갈등을 봉합하기엔 사측과의 대화에 별다른 진전이 없어 보인다. 우정본부와 비대위 측이 같은 제도를 놓고,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존권 쥐고 흔드는 ‘5kg’ 뭐길래


비대위와 우정본부 등에 따르면, 우정본부는 지난 7월1일부터 ‘중량별 차등 수수료제’를 도입했다. 이는 기존 배달 건당 수수료로 960~970원을 받는 것 대신, 택배물의 무게를 ‘5kg’으로 기준해 수수료를 차등지급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5kg 이하는 과거 수수료의 88%, 5~10kg은 124%, 10~20kg은 136% 등으로 규정했다.


시행 전 우정본부 측은 위탁업체와 택배노동자들 측에 “5㎏ 이하 택배가 전체 물량의 56%, 5㎏ 초과 택배가 46%를 차지한다고 발표하고, 이를 근거로 중량별 차등 수수료제를 실시하면 수수료 인상효과가 있다”고 홍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7월 한 달 후 사정이 달라졌다. 택배노동자들은 우정본부가 ‘허위발표’를 했다며 울분을 토로했다. 막상 중량별 차등 수수료제를 도입해 보니 “5㎏ 이하 택배가 80% 이상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5kg 기준 택배물의 비율은 곧바로 노동자들의 호주머니 사정을 결정했다.


비대위 측 관계자는 기자회견에서 “(7월)제도시행 후 수수료가 최소 7만원에서 최대 20만원까지 깎였다”며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음을 호소했다.


특히 이들은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정본부가 수정작업의 번거로움과 배달수수료를 인하하기 위한 방편으로 택배중량을 조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내는 이가 중량을 잘못 기재해도 우정본부에서 이를 수정하지 않아, 가령 ‘20kg’짜리 택배가 ‘5kg’ 이하로 바뀌는 사례가 허다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비대위는 “국가기관인 우정본부가 갑의 지위를 남용하여 기사들에게 사기나 다름없는 횡포를 부리고 있다”고 이른바 ‘갑의 횡포’를 폭로했다.


그러나 우정본부 측의 입장은 이와는 전혀 상반된다. 우정본부 관계자는 “택배물의 무게에 따라 수수료를 차등지급하는 게 ‘논리적’으로 맞는 것”이라며 “무거운 물건을 배달하고, 똑같은 수수료를 받는다면 상대적으로 손해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7월 한 달만 보고 얘기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연중 평균치로 따졌을 때 ‘5㎏ 이하 택배가 전체 물량의 56%, 5㎏ 초과 택배가 46%를 차지’한다는 발표가 나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정본부 측은 지난 7월20일 위탁업체 측에 ‘5kg 이하는 과거 수수료의 88%’라는 7월 규정을 재수정, 이를 5%포인트 올려 93%(8월부터 적용)로 조정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제도 시행 후 택배노동자들의 강한 반발에 수수료를 인상한 것으로 보인다.


1일 130개 수량제한, ‘독소조항’논란


5kg 택배물에 더해 위탁 택배노동자들을 힘겹게 하는 것이 또 있다. 택배기사 1인당 1일 130개로 제한된 수량 때문에 월 200만원이 채 되지 않는 월급으로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비대위 측은 이 과정에서 집배원(정직원)에게 택배물량을 나눠주면서, 위탁 택배노동자들과 우체국 정직원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비대위 관계자는 “크고 무거운 택배는 위탁기사에게 맡기고, 가벼운 택배는 우체국 집배원이 하도록 강제하고 있다”며 “우정본부가 개인사업자들에게 위탁을 준 지역의 택배마저도 경비절약을 위해 집배원에게 배정하는 등 일감을 빼앗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집배원들은 기존 우편물에 택배까지 더해져 고강도 업무에 시달리고 있고, 우리 또한 수량제한으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비대위 측 주장에 따라 위탁택배노동자들의 한 달 월급을 계산하면, 하루 130개의 택배를 처리했다고 가정했을 때 270만원 정도를 수령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부가세 27만원, 기름 값 30만원, 보험료 10만원, 번호판 지입료 11만원~17만원, 전화비, 차량수리비, 감가상각비 등 고정지출로 약 100만원을 빼면 결국 이들이 손에 쥐는 돈은 170만원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우정본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특성상 예산범위 내에서 운영될 수밖에 없다”며 “이를 위해 물량을 월별로 평균치를 산정, 위탁기사와 집배원간 배달량을 탄력적으로 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지역별로 다를 수 있지만, 전국 평균으로 봤을 때 일일 130개 제한은 사실과 다르다”며 “올해에는 일일 154개(한 달 기준), 지난해에는 142개로 최대물량은 160개 범위 내에서 지침이 정해져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고객서비스를 강조하며 “수량제한이 없으면, 서비스 품질이 떨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진짜 ‘갑’은 누구?…공방전 ‘치열’


양측간 갈등은 ‘갑을관계’라는 단어에서 조차 팽팽하게 엇갈리고 있다. 우정본부 측은 ‘우정본부와 위탁업체’, ‘위탁업체와 택배기사’ 사이의 계약이기 때문에 올 초 문제가 됐던 갑을관계 사례와는 차이가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비대위 측은 우정본부가 파업에 참여한 택배노동자들의 ‘재취업’을 막기 위해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왔다며, 위탁업체의 인사권에 우정본부가 관여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비대위는 당시 기자회견을 통해 “우정본부는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하면서 예산을 이유로 들어 자신들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는 기사들을 해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리에 함께한 민주당의 우원식 의원은 “우정사업본부는 (위탁택배노동자 관련 문제를)위탁업체에 맡기고 '우리는 책임이 없다'고 해 왔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내부적으로 고용 관리를 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며 “정부가 나서서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박탈한 것”이라고 비판의 소리를 높였다.


한편, 우정본부와 위탁 택배노동자들 사이의 ‘갑을관계’ 논란을 지켜보는 시민들은 우려의 시선이다. 추석 직전 ‘물류마비’가 오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 그러나 상당수의 시민들은 “택배노동자들의 ‘고충’을 실감한다”며 갑을논란의 사실관계가 명확히 밝혀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원식 의원에 의하면, 이번 우정본부의 갑을논란은 향후 국정감사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