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능력 시험대…오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IT도전 쓴맛

[스페셜경제] 최근 제일모직이 정보기술(IT)사업에 집중하면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의 행보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제일모직은 올해 2분기 영업이익 절반가량을 IT사업에서 올렸다. 재계에서는 이에 “이서현 부사장이 패션보다는 IT사업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실제 이 부사장은 올해 초 패션총괄담당에서 전사경영기획담당으로 자리를 옮기는 등 경영보폭을 한층 넓혔다. 이와 관련해 이 부사장의 오빠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e-삼성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IT분야에 도전했지만 쓴맛을 본 바 있어, 여동생인 이 부사장의 ‘IT 도전’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사진=뉴시스
‘종합섬유기업’ 제일모직의 정체성이 희미해지고 있다. 주력분야인 패션사업의 위상이 불황으로 인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 매출액의 선두자리를 케미칼(화학) 부문에 내준 데 이어 최근엔 전자재료 부문이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올해 들어 영업이익의 절반가량이 전자재료사업에서 나오는 등 제일모직의 명실상부한 ‘신수종사업’으로 발전했다. 전자재료사업이 정보통신(IT)사업에 분류되는 만큼, 업계에선 제일모직이 IT기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영업이익, ‘전자재료>케미칼>패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제일모직은 올 2분기(잠정실적) 총 매출액 1조6281억원 중 케미칼 부문에서 7311억원(45%), 패션부문에서 4464억원(27.4%), 전자재료부문에서 4342억원(26.7%)의 매출을 올렸다. 직전분기에 패션과 전자재료부문의 매출비중이 6.2%포인트 차를 보였지만, 불과 1분기 만에 0.7%포인트 차로 좁혀진 것이다.


영업이익으로 계산하면 제일모직에서 전자재료사업의 위치는 한층 강화된다. 2분기 제일모직의 영업이익 727억원 중 무려 73.8%인 537억원이 전자재료사업에서 나왔다. 제일모직의 주업종이 패션에서 화학으로, 화학에서 다시 전자재료사업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이를 입증하듯 오는 9월말에는 그룹 계열사 삼성전자와 손을 잡고 독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전문 벤처기업인 ‘노바엘이디(NOVALED)’를 인수키로 했다. 이는 창사 이래 최대규모의 해외투자로, 제일모직 측은 “고부가 디스플레이 소재 시장을 선도하기 위함”이라고 배경을 밝혔다.


제일모직의 이같은 ‘변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감지됐다. 섬유와 패션사업이 침체기를 겪는 동안, 제일모직은 지난 2000년 1월 정보통신소재사업부를 발족한 뒤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들의 생산 및 판매 등 전자재료사업을 일궈왔다.


불과 10여년이 흐른 뒤, IT사업은 사실상 제일모직의 중심사업이 됐다. 삼성의 신수종사업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지만, 일각에선 최근 패션사업의 부진이 IT사업의 성장을 부채질 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패션사업을 이끌다시피 했던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의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패션 전문가’ 이서현의 변신, IT까지 넘보나


이서현 부사장은 올 초 패션총괄담당에서 전사경영기획담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올해 4월에는 경북 구미 전자재료사업장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열린 OLED 소재 출하식에도 직접 참석했다. 이전까지 이 부사장은 ‘패션사업’ 부문에서만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에 최근의 이같은 변화는 재계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앞서 미국 파슨스 디자인스쿨을 졸업한 이 부사장은 지난 2002년 제일모직의 패션연구소 부장으로 입사한 뒤 줄곧 패션사업에 매진했다. 특히 전무로 승진해 경영전면에 나선 지난 2010년부터는 패션부문의 사업다각화를 추진하고, 제조유통일괄의류(SPA)브랜드·아웃도어 웨어 진출에 나서 승부수를 띄웠다. 그러나 패션업계의 불황이 더 심각했다. 제일모직은 최근 14년간 지속했던 힙합브랜드 ‘후부(FUBU)’를 접음과 동시에 수익성 낮은 브랜드를 정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파브랜드와 아웃도어 웨어 역시 뒤늦은 출발로 인해 성공여부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두 사업은 투자비용과 마케팅 비용 등으로 인해 패션사업의 실적부진의 주원인이 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 부사장이 패션은 물론 화학, 전자재료사업을 담당하는 전사경영기획담당으로 보직변경을 했다. 이 부사장의 경영보폭이 제일모직의 모든 사업영역에 뿌리내린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재계 일각에선 “이 부사장이 향후 경영자로 나설 때 패션사업의 부진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패션을 비롯한 전사경영에 나선 게 아니겠냐”고 평가하기도 했다. 재계에선 삼성의 3세 후계구도로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자,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레저·유통, 차녀 이서현 부사장이 패션·화학 계열사를 맡을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이 부사장, 전사경영기획 담당


그러나 ‘전문성’과 관련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 부사장이 패션 분야에서 한 우물을 파왔던 만큼, 완전히 다른 IT와 화학분야에서 성과를 낼 수 있겠냐는 지적이다.


특히 오빠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000년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인터넷사업인 ‘e-삼성인터내셔널’로 IT업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호된 시련을 겪은 바 있어 이 부사장의 행보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반면, 제일모직 측은 이 부사장의 경영능력 검증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이 부사장이 10여년이 넘는 기간 재일모직에 근무하면서 패션뿐만 아니라 전사업에 경영참여를 해 왔다”며 “올해 직책의 명칭이 변경됐을 뿐 실상은 전사적으로 경영(능력에 대한) 검증을 해 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회사의 정체성 문제와 관련해 “제일모직 비전의 양대 축이 ‘소재와 패션’”이라며 “어느 한 쪽에 몰아서 하겠다는 게 아니다. 각각 사업 포트폴리오에 맞게 양대 부문이 같이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패션사업의 부진은 대형 신규브랜드의 출시로 인한 성장통”이라며 “현재 추진하고 있는 시스템 개혁을 통해 추후 갖추게 될 경쟁력을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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