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의 각종 안전사고로 이건희 회장도 격노

[스페셜경제] 삼성이 ‘안전 환경 강화 종합대책’을 발표한 지 채 1주일도 안 돼 계열사 삼성물산이 보수 시공한 호텔신라에 ‘누수’가 발생했다. 최근 삼성정밀과학의 물탱크 사고, 삼성전자의 불산 누출 등 삼성 계열사의 크고 작은 안전사고로 이건희 회장의 불호령이 떨어진 게 무색할 정도다. 정치권에서도 삼성의 안전사고에 대해 “초일류기업을 자부하지만, 안전관리만큼은 삼류기업이라는 오명을 면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이건희 삼성 회장/사진=뉴시스
“글로벌 럭셔리 호텔로 도약하려 합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장녀 이부진 사장이 운영하는 호텔신라는 지난 1일 전 객실과 라운지, 야외수영장 등에 835억원을 들여 새단장을 마친 뒤 이같은 포부를 밝혔다. 호텔신라는 올해 1월부터 7개월간 전면 휴관을 계획했을 만큼, 이번 리모델링에 큰 공을 들였다. 그러나 호텔신라의 자신감은 재개관 5일 만에 금이 갔다. 리모델링으로 새롭게 마련된 최상층의 VIP라운지(이그제큐티브 라운지)에서 빗물이 새는 사고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호텔신라 ‘누수’…삼성물산이 공사 맡아


이 VIP라운지는 응접실, 서재, 식음료 제공까지 가능한 복합공간으로 1박 객실료가 90만원에서 최고 14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누수 사고가 일어난 6일 오후 1시께 VIP라운지에서 머물던 고객들은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으며, 당황한 직원들이 양동이와 수건 등을 가져와 빗물을 막은 것으로 전해졌다.


호텔신라 측은 “곧바로 처치해 정상 운영했으며, 정확한 누수 원인을 파악 중이다”고 밝혔다.


사고의 책임은 즉각 호텔신라의 리모델링을 전담했던 시공사, 삼성물산에게로 돌아갔다. 일각에선 이번 누수 사고가 삼성물산의 ‘부실공사’ 때문이 아니겠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건물의 배관시설 등 구조적 문제가 이번 사고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반면, 삼성물산 측은 이같은 의혹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예정된 공기에 맞춰 공사를 진행했다”며 “(누수 원인에 대한)결론도 안 난 상태에서 각종 의혹이 나오는 것에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실 확인이 안 된 추론으로 확대해석하면 곤란하다”며 “최선을 다해 원인을 찾고,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누수 문제의 경우, 원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호텔신라가 사고 당일 누수 지점을 찾아 보수를 했더라도,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집중호우가 발생하는 장마철에는 해마다 누수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룹차원 안전강화…효과 “글쎄”


호텔신라의 이번 누수 사고는 삼성이 불과 5일 전 ‘안전 환경 강화 종합대책’을 발표한 것과 대조돼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삼성은 지난 1일 올해에만 잇달아 발생한 계열사의 안전사고를 계기로 안전 환경을 강화하기 위한 고강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안에는 △삼성 안전관리 스탠더드(기준) 제정, △안전환경 분야 인적역량 강화, △안전환경연구소 조직 확대 개편, △임직원 및 최고경영진 안전우선 경영의식 확립, △협력사 안전환경 관리수준 향상, △안전환경 필요투자 최우선 집행 등이 담겼다.


삼성은 이 중 안전관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오는 10월 말까지 수립해 각 계열사에 배포하고, 표준작업절차서 등을 올해 말까지 개선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심지어 가장 최근에 벌어진 삼성정밀화학 물탱크 파열사고에 대한 책임을 물어 시공사 삼성엔지니어링의 사장을 전격 경질하기도 했다. 이번 인사에는 이건희 회장이 직접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물탱크 사고를 보고받은 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후진적인 환경 안전사고는 근절해야 한다”고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이 회장의 격노가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올해에만 삼성전자, 삼성엔지니어링 등 주요 계열사들이 잇달아 안전사고를 내면서 업계는 물론 시민사회, 정치권 등지에서 삼성을 향한 비판과 안전대책 주문이 쏟아졌다.


“초일류기업이 안전관리는 삼류”?


연 초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공장에선 맹독성 물질인 ‘불산’이 누출되면서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벌어졌다. 불산 누출 이후 당시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선 “대기업의 성장과 명예 위에 국민의 생명이 담보가 되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환경실천연합회)”, “세계 1등 기업이라는 삼성전자에서 세계 꼴찌 기업에서나 일어날 법한 사고가 발생한 것은 부끄러운 일(민주당)”, “노동자들의 안전을 생각할 때 초일류 기업 삼성에서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경악할 일(진보정의당)”이라는 비판 논평이 줄을 이었다.


불산 누출 논란이 점점 확대되자 삼성전자는 지난 3월 권오현 부회장이 직접 나서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사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권 부회장은 “사고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고위급 책임자의 사과문이 발표된 지 2달여 만에 같은 공장에서 또다시 불산 누출 사고가 반복됐다. 또한, 7월25일에는 이 공장에서 암모니아 냄새가 번져 누출이 의심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에 삼성전자의 안전관리 강화가 ‘말’에서 그쳤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밖에 이건희 회장을 최고로 격노하게 만든 사고는 삼성정밀화학의 ‘물탱크 참사’였다.


지난 7월 26일 삼성정밀화학의 공사현장에서 대형 물탱크가 파열돼 근로자 3명이 숨졌으며 12명이 중경상을 입는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사망자 중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 21살 A씨도 있어 세간의 안타까움을 샀다.


이 사고는 시공사 삼성엔지니어링과 물탱크 제작업체 다우테크가 충수시험(물을 채우는 과정서 ‘누수’를 확인하는 시험)을 실시하면서 누수를 무시하고 계속 물을 채우다 중국산 볼트가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지면서 발생한 것으로 삼성의 ‘안전 불감증’이 초래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결국, 노동단체와 정치권은 당시 사고를 “명백한 인재(人災)”라고 규정하고, 삼성의 안전불감증을 규탄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산하연맹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관련)진단과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공사를 강행해 발생한 명백한 인재”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삼성의 안전관리는 비용이라는 인식, 삼류기업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라며 “최고 경영자의 강력한 안전 의식 제고와 구체적인 실천계획 마련 등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삼성 측도 각계의 주문을 받아들여 지난 1일 종합대책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삼성물산이 시공한 호텔신라의 VIP라운지에서 ‘누수’가 발생하면서, 삼성의 이런 대책이 무색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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