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 지난주 ‘두 개의 문’을 봤다. 2009년 1월19일 용산 4구역 철거민과 이들을 지원하러 온 전철련(전국철거민연합) 회원이 망루로 올라갔고 25시간 만에 이들 중 다섯 명, 경찰특공대원 한 명이 주검으로 내려왔다. 이 영화는 그 하루, 그리고 지루한 법정 공방을 ‘무미건조하게’ 기록했다.


많은 사람들이 가슴을 꽉 메우는 답답함, 뱃속 저 밑에서 치밀어오르는 슬픔과 분노를 토로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여느 사람과 조금 달랐다면 영화의 밑바탕에 깔린 화면 대부분을 인터넷 방송 ‘칼라티비’가 촬영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 화면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만들어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칼라티비와 사자후티비 등 인터넷 방송에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자막이 떠오르길 잠깐 바란 것은 역시 내가 대표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영화에도 잠깐 언급됐지만 용산 참사의 밑바닥에는 ‘부동산 투기’가 깔려 있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뉴타운 사업’은 가히 천재적이었다. 당시의 주먹구구 계산으로 용산 4구역 땅 주인에게 이 사업은 많게는 50배의 장사였다. 공사를 맡은 재벌 건설사들은, 저축은행 사태로 문제점을 드러낸 프로젝트 파이낸싱 방식으로 비용을 조달했다.


하루라도 빨리 분양을 해서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니 용역을 고용해서라도 주민들을 몰아내야 했다. 이명박 정부의 ‘불관용 원칙’과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의 공명심이 어우러져서 25시간 만의 참사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해 겨울, 사람들은 잘 모이지 않았다. 대통령의 한마디로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 소가 수입된다는 소식에 광장으로 끝없이 몰려 나와 결국 대통령의 사과 성명까지 이끌어 냈던 시민들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명백한 참사 앞에서 침묵했던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지칠대로 지쳤기 때문일 것이고, 또 경찰의 소환에 공포를 느끼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혹시 자신의 부동산 투기 열망 때문에 진실을 애써 외면하고 결국 침묵으로 정부를 옹호한 사람들도 있었던 건 아닐까?


2009년 봄 총선에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과 열린우리당(현 민주통합당) 후보들은 똑같이 ‘특목고’와 ‘뉴타운’이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던 것도 이런 심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 이제 부동산 가격은 폭락 직전의 벼랑 끝에서 파들거리고 시민들은 가계 부채의 덫에 신음하고 있다. 재미도 별로 없고 답답하기 짝이 없는 ‘두 개의 문’이 5만 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은 혹시 당시에 대한 참회는 아닐까?


불행하게도 2008년 총선 공약 중 나머지 하나, 특목고로 상징되는 ‘교육 투기’는 여전히 기세를 떨치고 있다. 1등이나 꼴등이나, 또는 중간이나 어느 아이가 언제 자살할지 아무도 모른다.


특별히 그 아이에게 어떤 징조를 찾으려 하거나 부모한테 문제가 있었을 거라고 짐작하면서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70만 명의 등수를 정하는 지극히 비합리적인 발상, 상대적인 것이기에 끝이 있을 수 없는 경쟁을 용인하고, 오히려 승리할 수 있다며 아이를 채근해선 안 된다.


영화에서 ‘두 개의 문’은 어느 쪽이 망루로 연결되는지도 모른 채 작전을 감행한 것을 말한다. 그러나 감독은 ‘두 개의 문’이라는 제목으로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는 철거민과 아이들을 ‘죽음의 문’으로 몰아넣었다. 죽음의 문을 폐쇄하고 ‘삶의 문’을 열어야 한다. 지금 당장….


http://www.saesayon.org/journal/view.do?pcd=EC01&paper=20120723101010458


정태인 새사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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