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원 적자 이유 알고보니…새누리당 ‘입김’에 흔들

‘정경유착’ 단면 고스란히 보여줘…“정신 못 차린 한전”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간다” 질문에 “할말 없다” 일축
직원들 ‘도덕적 해이’ 심각…고스란히 국민 피해 돌아와


▲ 김중겸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지식경제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허리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스1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의 ‘방만 경영’이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번에는 정치인 한마디에 자회사까지 동원해 드라마 협찬비로 3억4000만원을 지원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만성적인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공기업이 드라마 협찬비로 수억원을 지원했다는 사실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정치권과 한전에 따르면 한전을 비롯한 발전 자회사 6곳은 3억4000만원을 조선일보의 종합편성 채널인 ‘티브이(TV) 조선’이 방영하는 드라마 ‘한반도’에 협찬했다.


한전은 1억원, 6개 발전사는 각각 4000만원씩을 분담했다. 지난해 12월 이들 공기업은 ‘한반도’ 제작사인 ‘래몽래인’과 계약을 맺고 협찬금을 세 차례에 분납하기로 하고 발전사들은 이미 800만원의 계약금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한전이 천문학적인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 왜 거액의 예산을 드라마에 투자한 이유에 대한 의혹이 쏟아진다.


일단 ‘홍보 효과’를 위해 비용을 지출했다는 것이 한전의 입장이다. 에너지 관련 드라마인 한반도는 스마트그리드나 전기 절약 등 홍보의 수단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한전의 이같은 해명에도 의혹은 증폭되고 있다.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설사 진짜 그런 의도로 무리하게 투자했다 하더라도 ‘방만경영’ 이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시청률조사기관 ACB닐슨미디어서치에 따르면 한반도 1회분 방송 시청률은 1.649%였다. 다음날 2회분 시청률은 1.205%로 떨어졌으며 13일 3회분 시청률은 1.118%로 더 하락했고, 14일에는 간신히 1.009%로 '1% 선'마저 위태위태한 상황이다.


지난해 말 개국 후 0%대의 충격적 시청률을 기록한 TV조선에 홍보효과를 위해 수억원을 투자했다는 말은 누가 봐도 이상하다. 그것도 사기업도 아닌 적자 공기업의 경우라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이같은 말도 안되는 상황이 연출된 배후에는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전의 드라마 협찬은 권 의원의 강요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의혹이 일파만파 퍼지자 권 의원은 지난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하면서도 한국전력에 협찬 가능성을 타진한 부분에 대해서는 일부 시인했다.


권 의원은 “지난해 5월께 한반도 제작사 관계자(래몽래인)가 와서 ‘대한민국이 영토는 작지만 에너지개발을 통해 강국이 되고, 한반도가 통일된다는 내용이며 좋은 취지’라며 한전과 발전 자회사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며 “그래서 한전 관계자를 만나 에너지 공기업인 한전의 홍보에 도움이 되고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길이 있는지 검토해보라고 소개한 것이 전부”라고 해명했다. 이어서 “드라마 협찬 과정에 강요나 협박을 했다거나 TV조선 등 종편사 영업맨이라는 식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권 의원의 해명에도 공기업과 정치권의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관계에 대한 비판을 잠식시키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발전 자회사 관계자들은 한전과 발전회사들을 국정 감사하는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소속인 권 의원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마디로 무언의 압박이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권 의원이 입김이 있은 후, 래몽래인은 지난해 7월 한전과 6개 발전사에 협찬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발전사들은 래몽래인과 계약을 맺을 당시 드라마가 TV조선에 방영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한 발전사 관계자는 “시청률이 0%대밖에 안 되는 종편에 협찬한 꼴이 돼서 우습게 됐다”고 말했다.


발전사들과 달리 권 위원은 “드라마 제작사가 어떤 과정을 거쳐 한전 및 자회사들과 계약을 체결했는지, 애초에 공중파인 SBS에서 TV조선으로 변경됐는지 몰랐다”며 “특히 TV조선 관계자는 한 사람도 아는 사람도 없고 만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권 위원이 양자를 연결한 데다 드라마 제작 발표회에서 축사까지 한 사실이 알려지며 파장은 확대되고 있는 모습이다.


이같은 의혹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스페셜경제와의 통화에서 “에너지를 소재로 다룬 드라마라고 해서 홍보를 목적으로 협찬했을 뿐 권 의원과는 무관하다”고 전했다. 이어서 ‘사실상 홍보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에너지를 다뤘다고 해서 무조건 지원해주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기자의 질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할말이 없다”고 일축했다.


이번 한전 협찬은 정경유착의 한 단면을 보여준 것이라며 정치권의 입김에 휘둘리는 한전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한전이 천문학적인 적자를 기록하면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애먼데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는 지적이다.


천문학적 적자에도 직원들은 돈잔치


실제 한전은 매년 수백억원의 돈을 선전․판촉비에 쏟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2010년 한국전력 재무제표에 따르면 한전은 각종 선전․판촉비로만 407억7000만원을 사용했다. 보통 대기업의 경우 연간 100~200억원 수준의 홍보비를 사용하는데 공기업인 한전이 홍보비용이 더 많아 의아스럽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수년째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에도 한전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방만 경영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한전은 두 차례 전기요금을 인상했다. 그럼에도 전년보다 130% 가까이 늘어난 3조 원에 육박하는 영업손실을 냈다.


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해 43조2149억원의 매출과 2조993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2010년과 비교하면 10.0% 매출이 증가했다. 문제는 영업손실은 128.1%나 불어난 수치다.


한전의 부채규모는 2010년 말 44조1897억원에서 지난해 말 50조3306억원으로 무려6조1409억원 증가했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전기요금 인상 등으로 매출은 늘었지만 여전히 전기요금이 전력생산 원가보다 싸기 때문에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라고 호소했다.


한전은 지난해 8월과 12월 각각 4.9%, 4.5% 전기요금을 올렸지만 전력생산을 위한 원자재 가격도 그만큼 오르면서 원가회수율은 여전히 90.9%에 그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쉽게 말해 100원을 팔면 10원을 손해 보는 셈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볼멘소리에도 한전을 바라보는 시선은 매섭다. 그도 그럴 것이 한전은 원가에 못 미치는 공공요금 현실화를 외치며 전기요금을 인상했으나 매년 방만 경영과 성과급 잔치를 되풀이 하며 스스로 명분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전은 막대한 적자에 허덕이면서도 억대 연봉자가 가장 많은 공공기관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소속 자유선진당 김낙성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식경제부 산하 공공기관 60곳 가운데 1억원 이상 연봉자가 가장 많은 곳이 한전이었다.


한전이 758명으로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한국수력원자력(625명), 중부발전(204명), 동서발전(201명), 남동발전(181명), 서부발전(179명), 남부발전(133명) 등의 계열사가 뒤를 이었다. 특히 한전의 경우 2009년에 비해 1억 이상 연봉자가 500명이나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2009년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 최고 등급인 ‘S’(탁월)를 받았다는 이유로 3천788억원(500%)의 성과급을 6월, 9월, 12월에 나눠 받으면서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한전은 비리 만물상?


방만 경영으로 천문학적인 부채를 기록하고도 일시적으로 경영이 호전 됐다고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자구 노력 없이 부실에 대한 책임은 국민의 호주머니로 채우고 정작 공기업 스스로는 고임금과 성과급 잔치로 배를 불리는 모순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천문학적인 적자를 내면서도 고임금을 받고 있는 한전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다. 한전은 ‘옐로카드제’, ‘쌍벌제’, ‘기동감찰팀’ 등을 도입하며 직원들의 비위를 감시하고 있지만 직원들은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달에는 한전 송전 철탑 청소를 부풀려 15억원의 부당이익을 취한 무등록 전기공사사업자와 이를 방조한 한전 직원 등이 경찰에 적발됐다.


또 이에 앞서 지난해 8월에는 한전 직원 70여명이 경찰에 적발돼 충격을 줬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한전이 발주한 전기공사의 편의를 봐 주고 불법 하도급 계약을 묵인해 주는 대가로 15억원 상당의 금품과 술·골프 접대 등을 받은 혐의(뇌물수수 등)로 전·현직 한전 직원 70여명을 적발해 이 가운데 4급 공사감독관 김모(49)씨 등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5년 동안 한전이 자체감사와 감사원에서 지적받은 사항만 무려 4883건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전의 방만 경영,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국민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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