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키운 카드사-가맹점 수수료갈등…결국 부담은 ‘소비자의 몫’


[스페셜경제=김봉주 기자]카드업계는 최근 현대·기아자동차와의 카드수수료 협상 전쟁을 마쳤지만, 통신·유통업계 등 타 업종과의 카드 수수율 협상 갈등은 여전히 남아있다. 카드사들은 지난해 정부가 소상공인 카드수수료 인하 정책을 추진하며 비용충당을 카드사의 마케팅비용에서 해결할 것을 요구함에 따라 대형가맹점에 대한 수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소상공인 반발로 이어졌고, 이에 따른 소상공인 카드수수료 인하는 대형가맹점 수수료 인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카드사-가맹점 수수료 갈등을 불러일으켰고, 이를 지시한 금융당국은 나 몰라라 하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 금융당국의 땜질처방은 돌고 돌아 결국 소비자의 부담으로 돌아올 우려가 제기된다.


최저임금 부담, 카드사 거쳐 대형가맹점


카드수수료 인상, 돌고 돌아 소비자에게


이번 사태의 발단을 문재인 정부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앞서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에 대해 소상공인들의 반발기류가 형성되자, 정부는 ‘카드 수수료 인하’ 카드를 꺼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카드사에 연 매출 500억 원 이하 가맹점까지 카드 수수료 인하를 지시하는 대신, 대기업 가맹점 수수료를 인상하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역진성 해소’를 주문한 바 있다.


이에 카드사들은 지난 1월 말 연 매출 500억 원을 초과하는 대형가맹점에 대해 수수료 인상을 통보하고 이달부터 적용했다. 대상 가맹점 수는 약 2만3000여 곳, 업종별 인상 수준은 △자동차 1.8%→1.9% △대형할인점 1.9%~2.0%→2.1%~2.2% △통신 1.8~1.9%→2.0~2.1% △항공 1.9→2.1% 등이다.


다만, 카드사는 현대·기아차와의 수수료율 협상 과정에서 난항을 겪었다. 당초 카드업계는 현대차의 수수료율을 기존 1.8% 초·중반대에서 1.9% 후반대로 인상하겠다는 뜻을 고수했다. 하지만 현대차가 1.89% 이상은 줄 수 없다고 거부하면서 계약해지를 통보하기도 했다. 결국 신한카드가 현대차가 제시한 수수료율 인상안을 받아들였고, 삼성카드·롯데카드·하나카드·NH농협카드·씨티카드 등도 줄줄이 현대차가 제시한 인상안을 수용했다. 합의된 카드사와 현대차의 가맹점 수수료율은 현대차가 제시했던 1.89% 수준, 기존보다 0.04~0.05%포인트 올랐다.


카드업계가 금융당국의 주문으로 대형가맹점에 수수료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대기업들은 국내외 경제 상황 등으로 순순히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수수료 인상안을 받아든 대형할인점·통신사 등 대형 가맹점들도 여력이 없다고 항변하는 등 수수료 인상을 최대한 막으려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연구 결과 정부가 대기업에 고용 확대를 적극적으로 요청함에도 대기업 10곳 중 7곳은 이번 해 상반기 신규채용을 작년보다 축소·중단, 채용 계획을 세우지조차 못한 이유는 국내외 경제와 업종 상황 등으로 인한 ‘경영 악화 때문’으로 풀이된다.


카드사가 자영업자 수수료를 인하로 줄어든 수익을 대형가맹점 수수료를 인상으로 메꾸려는 시도는 금융당국의 ‘역진성 해소’라는 지시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카드 수수료 분쟁에 불을 지펴놓고 소극적으로 보고만 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 카드 수수료 분쟁의 시작점이며 수수료 인하를 압박한 뒤 분쟁에는 모른척한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 13일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카드사노동조합협의회와 금융노동자 공동투쟁본부는 대형 가맹점 카드수수료 인상 협상에 대해 금융당국이 철저히 감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카드수수료 인하 곳곳서 파열음…현대차에 이어 통신사·마트까지


현대·기아차와의 협상은 일단락됐지만, 협상을 지켜본 백화점·대형할인점·통신사·항공사 등 대형 가맹점들도 수수료율 인상 수준에 반대하는 상황이다. 이들 대형 가맹점과 카드사들은 물밑 협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연 매출 500억 원 이하 가맹점에 적용되는 카드수수료를 인하한 만큼 이번에는 카드사들의 입장도 완고해 보인다.


SK텔레콤 등 통신사와 이마트 등 대형 할인점은 이미 카드사들에 공문을 보내 새 수수료율에 대한 반대 의견을 밝혔다. 유통·통신업계가 카드사에 현대·기아차처럼 ‘계약 해지’라는 강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할 가능성이 있다. 자동차는 소비자가 자주 사는 물건도 아니고 카드 결제 비중도 낮아 협상력에서 카드사의 힘이 약했지만, 유통·통신업계는 카드사의 각종 프로모션과 무이자할부 등의 혜택 뿐 아니라 대부분의 결제가 카드로 이뤄지기 때문에 카드 의존도가 높다.


카드사와 대형가맹점의 수수료 갈등을 유발한 금융당국은 이에 대해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지난달 금융위원회는 “대형가맹점이 부당하게 낮은 수수료를 요구하면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여전법상 감독·제제·처벌 근거가 마련돼 있고 금융위가 “여전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고 밝힌 것과는 달리 이번 ‘카드사-현대차 수수료율 갈등’에서는 조정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최근 수수료 갈등이 불거지자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당국이 뒷짐만 지고 있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새로운 체계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의견 충돌”이라고 답변했다. 수수료율 갈등은 카드사와 가맹점이 협상 당사자로 풀어야할 문제라며 책임에서 한발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현행 여전법 18조 3항에 따르면, ‘대형가맹점은 거래상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낮은 수수료를 책정하면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이를 위반하면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1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 또 19조에는 ‘금융위는 이를 조정할 수 있고 조정이 되지 않으면 강제 기관에 이를 통지해 해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이러한 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은 대형 가맹점을 대상으로 적정성 검사를 한 전례는 없다.


대형 가맹점에 대한 카드업계의 수수료율 인상 요구는 금융당국이 작년 말 소상공인들을 살리겠다는 명목으로 카드 수수료 부담을 낮춘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카드업계는 앞으로 다른 대형 가맹점과 협상에서 밀려 중소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로 인한 손실을 보전하지 못하면 무이자 할부나 각종 마일리지·포인트 적립, 캐시백 등의 혜택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오는 21일부터 네이버는 카드사 수수료 부담으로 신용카드 결제를 통한 네이버페이 충전 서비스를 중단한다. 이와 같은 소비자 불편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친서민을 표방하고 자영업자를 돕는다며 수수료 역진성 해소라는 정책 목표를 내걸었지만, 수수료 갈등을 키우면서 그 피해는 돌고 돌아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사진제공=뉴시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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