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환경부 작두 위 영풍석포제련소, 일본에 뺏긴 조선 기술혁신 재판 우려

선다혜 기자 / 기사승인 : 2019-02-24 15: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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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경제=선다혜 기자]연산군대의 조선은 화학공학 분야 선진국이었다. 희귀문물에 관심을 가진 연산군은 금속제련에 대해서도 장려 정책을 폈다.


납을 이용해 은을 분리해 내는 방법을 개발한 한 철공은 연산군에게 큰 상을 받았다.


역사저술가 박종인에 따르면 당시 유행하던 은 제련 방식은 박리식, 즉 광석을 두드려 깬뒤 은 부위만 골라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산군 때는 잿더미 속에 납과 은을 같이 녹여넣고 재와 섞인 납을 분리해내는 제련법이 사용됐다.


16세기 초의 조선발 산업혁명이었다. 그러나 중종반정에 의해 연산군이 폐위되자 찬란한 금속혁신의 역사도 막을 내렸다. 성리학을 중시했던 중종 정권은 사대부의 질박함과 거리가 먼 은 제련 기술을 천시했다.


군자는 기능적인 업무에 종사해서는 안된다는 유교의 가르침에 따라 기술 전시의 요람이었던 궁궐의 분위기도 사라졌다.


조선이 은 제련을 천시하는 사이 일본에서는 무로마치 막부와 전국의 영주들이 금속제련에 큰 관심을 가졌다. 일본 서부지역의 3분의 1을 소유했던 모리 가문은 이와미은광(시마네현 오다시 일대)을, 야마나 가문은 이쿠노 은광(효고현)을 운영하며 조선 전래의 제련법을 받아 들였다.


어마어마한 은 생산량과 기술혁신에 힘입어 17세기 무렵 일본은 세계시장에서 유통되는 은의 4분의 1을 생산했다.


경북 봉화에 위치한 영풍 석포제련소를 보면 과거 기술과 공업의 힘이 컸던 조선 초기의 전성기가 떠오른다.


영풍은 1970년 석포에 한국최초의 습식 아연제련소를 짓고 80년대까지 약 8000톤에서 10000톤 사이의 아연괴를 생산했다. 여러 국가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제련업을 개도국에 넘겨주는 사이 영풍은 2017년 기준으로 36만톤의 아연괴를 생산하는 세계 1위 제련소를 만들어 냈다.


일관공정으로 이룩한 제련소 중에서는 기술적으로 최고의 시설로도 손꼽힌다. 한국 금속학계의 권위자 손호상 경북대 교수(전 공과대학장)는 '영풍 석포제련소가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비롯된 기술혁신의 소산이자 한국형 습식제련의 가능성을 증명한 공장'이라고 평가했다.


제련 선진국인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손 교수는 '리사이클링(재활용) 기술의 총아가 바로 석포제련소'라고 지적하며 그 과학적 성취를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문제는 과거 성리학자와 비슷한 입장에 놓여있는 한국의 환경단체들과 당국이다.


영풍은 낙동강 상류에 있다는것 만으로 거의 6년간 엄청난 뭇매를 맞았다. '최근에는 석포제련소 인근 주택 및 농경지의 중금속 오염에 현저한 영향이 있다'는 이유로 일대를 광범위하게 토양정화할 것을 요구받기도 했다(이 명령의 주체는 봉화군).


감성과 공포로 덧칠된 서사는 과학적 증명보다 힘이 강하다. 석포를 비롯해 봉화 일대 대부분은 광석매장량이 높은 광화토양이다. 자연발생적으로 중금속이 많이 배어 있는 땅인 것이다. 이 지역에서 영풍제련소가 거의 50년간 돌아갔다고 하나 실제 공장에 의한 오염기여도는 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봉화군은 당국으로서 전문적인 식견을 발휘하기보다는 집단감성에 호소하는 성리학적 우를 범하고 있다.


환경부가 올해부터 인근지역 오염의 원인을 제공한 사업장에 정화책임을 크게 지우는 법을 준비 중이라 한다.


상당히 우려스러운 내용이다. 그 취지는 국민들의 건강권과 환경권이겠으나 잘잘못을 세밀히 가려야 할 일이 감성행정으로 재단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과거 은 제련업을 절단냈던 정책 오류가 영풍을 두고 벌어지지 않기를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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