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과다 직원 자살할 때 배당성향 높여

이문환 비씨카드 대표


[스페셜경제=김은배 기자]‘김용균법’ 추진으로 대변되는 ‘위험의 외주화’가 위험장비가 없는 사무직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비씨카드가 몸소 보여주는 모양새다. 비씨카드의 외주업체에서 IT개발자가 발주사의 과도한 요구로 인한 업무과중 스트레스로 자살했다는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것.


외주업체 직원 故김용균 씨는 작년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 벨트 점검 중 사망했다. 최근에도 비슷한 일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이같은 경각심은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문제는 외주업체 근로자를 향한 생명의 위협은 위험장비를 다루는 업종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발주사의 근로자를 배려하지 않는 과도한 업무요구’라는 공통분모 아래 비씨카드의 2차 협력사에서도 ‘비씨카드 첨단화 사업’ 도중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발주업체의 갑질이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데 있어 위험장비 못지않은 흉기라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이같은 비극 속에 비씨카드는 배당성향을 높여 주주 배불리기에 나섰다. 하청에게는 생명에 위협이 될 만큼 과중한 업무를 실어주고 그로인해 모은 돈은 ‘가진 자들의 잔치’로 만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출처=청와대 게시판 캡쳐


IT버전 故김용균씨? ‘위험의 외주화’


위험 장비 뒤지지 않는 발주사 갑질


프로젝트 중에도 모멸감 주는 갑질多


배당성향 65%→88% ‘그들만의 잔치’


지난 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BC카드(이하 비씨카드) IT 개발자의 죽음’이라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비씨카드의 불합리한 업무환경을 고발(한다)”고 운을 뗀 청원인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하여 설 연휴중 자살한 IT 개발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IT 개발자를 ‘30여년 해당 업무에 종사하였기에 업무능력은 탁월했고 리더쉽도 출중한 분’이라고 자살을 택할 이유가 없는 사람임을 강조한 뒤, 자살 선택 이유로 두가지, ▲무리한 일정과 ▲발주사(비씨카드)의 갑질을 꼽았다.


‘무리한 일정’과 관련해선 “난이도와 상관없이 일주일에 무조건 몇개를 채워야하고 개인별 실적을 일일히 공개(한다)”며, “52시간을 준수해야 한다며 저녁도 먹지 않은 채 일에 매진해도 그 실적은 채울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청원인은 이어 “과도한 업무량이면 인력을 더 투입해야 한다라는 상식적인 사실을 ‘그들이’ 모르지 않는다”며 사실상 고용업체와 발주사의 책임을 지적했다.


‘발주사의 갑질’로는 “무리한 수정 요청과 실적을 체크하는 그들의 무시와 압박은 모멸감을 가지게 한다”고 비씨카드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를 강요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한 번 차세대 실패를 경험한 비씨카드가 이번에는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우리를 사지로 몰아 넣고 있다”고 비난의 날을 세웠다.


‘IT 개발자’는 비씨카드 재재하청 직원…본청 갑질은 쉽고 회피는 더 쉽다?


비씨카드 및 하청업체 등에 따르면, 사망한 IT 개발자는 비씨카드의 차세대 프로젝트와 관련해 2차 협력회사에서 일하던 중 설연휴 기간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씨카드의 이번 첨단화 사업을 수주해 총괄하고 있는 것은 LG CNS이며, 일부 업무를 이관한 1차 협력회사는 KT DS가 맡고 있다. 하청에 재하청 형태로 일이 진행되는 셈이다. 구조가 이렇다보니 비씨카드의 입장에서는 2차 하청회사의 업무 소화 능력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청원인의 주장에 따르면 업무 환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리한 요구를 강요한 정황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렇듯 하청에 하청으로 내려갈수록 본청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운 반면, 정작 하청업체에서 사건이 터지면 본청은 회피하기 쉬운 구조다. 이번 IT 개발자 자살 사건에서도 사업 당사자들인 원청 비씨카드와 수주업체 LG CNS, 1차 협력사 KT DS는 모두 하청업체의 일이라 제대로 알기 어렵다며 발을 빼려하고 있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 업무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관계사들끼리 책임을 떠넘기며 사건의 본질을 희석시키고 있는 셈이다.


BC카드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작고한 고인께는 안타까움을 전한다”면서도 “발주사로써 (하청업체의)업무를 직접 통제하지 않아 정확한 사실관계를 알기 어렵다. 노무법인과 법무법인을 통해 사실 파악 중이며 인사담당부서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경과를 들은 바는 없다”고 하청업체와 거리를 뒀다.


관계자는 “혹시라도 수주업체와 하청의 과정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조치를 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원청의 과도한 요구로 인한 나비효과가 하청업체 직원의 죽음을 부르고, 하청의 일이라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은 흡사 최근 ‘김용균법’ 추진으로 이어지고 있는 ‘위험의 외주화’ 논란을 연상시킨다. 사실상 위험한 기계를 다루느냐 아니냐를 제외하면 판박이에 가까워 보인다. 오히려 비씨카드의 과도한 갑질은 위험한 기계 없이도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데엔 큰 격차가 없음을 몸소 보여준 사례로 남을 우려가 있다.


故김용균씨의 영정사진


위험장비 없이도 ‘위험의 외주화’ 판박이 참사


고(故)김용균(24) 씨는 작년 12월 11일 오전 3시 20분께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외주업체 직원으로 일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김씨의 비보는 전국에서 추모집회가 일게 만들었고 작년 12월 27일 국회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계기가 됐다.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 논란이다.


기업들이 위험한 일, 어렵고 힘든 일 등을 본청에서 해결하지 않고 외주업체에서 활용하는 구조적 문제를 꼬집은 것인데, 외주업체는 노동자 일부를 일용직으로 투입하는 만큼 ‘소모품’처럼 여겨진다는 지적이다.


업체 입장에서 안전교육, 환경개선, 업무량조절 등 근로자의 업무환경을 배려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근로자에게 효율적으로 많은 일을 시키느냐가 자연스럽게 더 관심사가 된다는 얘기다. 본청 입장에서도 ‘하청업체가 알아서 할 일’로 치부하면서 근무환경 보다는 하청업체의 성과에만 관심을 갖는 구조로 분석되고 있다.


이같은 지점에서 ‘위험의 외주화’ 논란은 비씨카드의 IT 개발자 자살사건과 닮아 있다. 위험한 장비만 없었을 뿐 하청업체의 성과에만 주목하면서 근로자들의 안전과 환경, 업무량 등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갑질적인 행태가 IT 개발자의 비극적 선택을 하게 된 배경이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이다.


비씨카드의 이같은 발상은 최근 배당정책에서도 묻어난다. 이날 카드 업계에 따르면 배당을 아직 공시하지 않은 롯데카드를 제외한 전업카드사 7곳이 2018년도 사업분에 대한 배당을 이사회를 통해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비씨카드의 작년 사업분에 대한 배당성향은 88%로 전년(65.2%) 대비 대폭 상승했다. 비씨카드는 중간배당 220억원을 포함해 모두 840억원의 배당을 결정, 전체적인 배당 규모는 전년대비 12.4% 감소했으나 비씨카드의 작년 순이익이 955억원으로 전년도(1471억원)에 비해 35.1%(516억원) 줄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불황 속에서도 주주들의 이득을 챙기는데 더 주력한 셈이다.


한 회사의 울타리 안에서 하청업체 근로자가 과도한 업무 압박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설 때 누군가는 그들의 목숨을 담보로 번 돈으로 잔치를 벌이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은 이러한 배경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IT 개발자의 죽음을 고발한 청원인은 “기업의 이윤이 우리 목숨보다도 더 소중한 것 일까”라고 반문하며 “그들의 이윤은 우리의 피·땀·눈물”이라고 부르짖었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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