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조사 ‘피해자’ 없고 비대위와 학과 교수들만 남았다?


세종대 김태훈 교수

[스페셜경제=선다혜·김지혜 기자]올해 초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투 열풍이 대학가에서 계속되고 있다. 미투 운동은 그간 관행적으로 자행·묵인 돼 오던 ‘위계에 의한 성폭력’을 고발한다는 측면에서 여성인권 개선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다만 미투운동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일각에선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빚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까지도 공방전이 계속되는 세종대학교 김태훈 교수의 미투 논란은 점차적으로 본질을 벗어나 또 다른 양상으로 번지고 있는 모양새여서 이같은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더욱이 이번 사건은 피해자들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것으로 알려진 영화예술학과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만 나서면서 이 사건은 피해자와 김태훈 교수 사이에 문제가 아니라, 비대위와 김태훈 교수의 ‘공방전’으로만 치닫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해당 사안이 ‘미투’보다는 학교 내 알력싸움으로 생긴 일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김태훈 교수 측은 “이제 이 싸움에 미투는 사라지고 학과교수일동만 남았다”라고 말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지금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에서 불거진 ‘미투 논란’을 짚어보기 위해서 사건의 중심에 선 김태훈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이하 <스페셜경제>과 김태훈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



미투 사건에 대한 진실 여하 가리기보다 ‘공방전’ 가열
‘가해자’ 낙인 때문에…진실 호소해도 믿어주지 않는다



Q. 현재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 비상대책위원회가 설립돼 있는 상황이다. 이 비대위가 김태훈 교수와 관련한 사안에 대해서 입장문을 내고 파면을 주장하고 나서고 있다. 이 비대위 안에는 피해자가 속해 있는 것인가?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만든 사람은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 98학번 졸업생 두 명으로 알고 있다. 영화예술학과는 영화연출 전공과 연기전공으로 나뉘는데, 이들은 영화연출을 전공한 사람이고, 내 (연기)수업 한 번 들어본 적 없던 사람들이다. 의혹이 제기되자 얼굴도 모르는 40대의 분들이 갑자기 학교에 나타나 비대위를 만든 것이다.


보통 다른 학교들을 보면 재학생들이나 여학생협회, 또는 학생 인권과 관련된 곳에서 비대위를 구성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여기는 특이하게 졸업한지 15년이 넘는 40대 남성들이 주축이 되어 이런 비대위를 만든 것이다. 더욱이 그들은 올해가 창과 20주년으로 영화예술학과 동문회를 주축으로 여러 기념행사를 준비할 때 생업을 이유로 단 한 번도 사전준비 회의에 나오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갑자기 학교에 나타나 변호사에게 사전 자문을 받았다며 다른 졸업생과 재학생들을 선동하니 그들의 동기가 순수해 보이지 않는 것이다.


3월초에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학교에서 첫 진상조사를 받고 나오는데, 학교 관계자가 ‘건물을 나가면 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있으니 너무 놀라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다. 도대체 누가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옆을 지나갔는데, 시위하던 그들이 나를 몰라봤다. 나 역시도 그들을 몰라서 그냥 지나쳤다. 현재 비대위에 있는 영화연출전공 재학생들도 내 얼굴을 모른다. 졸업생들과 학과에서 선동을 하니까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고 느껴진 다른 일도 있었다. 비대위와 학생위가 지난 5월에 저의 파면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연대서명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나의 파면과 함께 ‘부당한 조교감축 지시를 철회하라’는 요구를 함께 넣어 연대서명을 받더라. 도대체 나의 성추행 의혹과 조교감축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조교 감축지시가 부당하다고 여겨진다면 학과교수들이 교무처 등의 담당부서에 가서 회의를 하거나 설득을 하면 될 것을 학생들을 내세워 이를 관철시키려고 하니 그 의도가 순순하지 않음이 자명해짐을 느꼈다.


또 이들은 ‘공금횡령’ 의혹을 언론에 폭로하면서 ‘다시는 어디에서든지 교육자라는 이름으로 누구를 가르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등의 인격말살적 언행을 주저하지 않았다. 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15년 이상 얼굴도 본적이 없는 그들이 쓴 내용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내용에 저는 처참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 20여년 교육에 몸담으면서 그래도 학과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전공의 특성상 학교에서 학생들과 밤을 지세는 것이 다반사였으며, 연극하는 제자들 생계가 걱정되어 졸업생의 취업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나로서는 정말 나의 지나온 인생을 부정하는 언행이었다. 또한 내부 결제로 진행되는 학과운영을 졸업생들이 어떻게 알고 공금횡령의혹을 제기하는 것인지, 여기에는 내부 교수가 관여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공금횡령의혹은 이후 학교 감사실의 조사를 받아 ‘혐의 없음’을 통보 받은 상태이다.


이렇듯 악의적인 비대위를 법적으로 고소 한 상태다. 떳떳하다면 당당하게 경찰서에 나와 조사를 받으면 된다. 모든 것은 법이 판단 해 줄 것이다.

Q. 그렇다면 왜 교수님의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비대위를 만들면서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일까?


나도 궁금하다. 그러던 중 처음 나에게 18년 전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A씨에게 제보를 받은 기자님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해당 기자님이 사건에 대한 제보를 받고 사실 확인을 위해서 취재를 들어갔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A씨에게 오히려 불리한 증언이 나왔고, 그래서 잠깐 기사를 내보내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기사가 나오지 않자 A씨가 해당 기자에게 ‘왜 기사가 안 나오느냐’고 물었고 취재하는 과정에서 다른 증언들이 나왔으니 사실 확인을 더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A씨가 ‘학과에 모 교수님하고도 상의를 했다’고 말해, 그 기자분이 ‘누구요?’ 되물으니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한번은 어떤 학생이 ‘조교’를 사칭하며 학교 측에 진상조사 장소와 과정을 세세히 물었는데, 알고 보니 그 학생은 학과조교도 아니었고 비대위 소속 영화전공 박사학생이었다. 끊임없이 염탐을 하며 일부 학과 교수들에게 보고를 했던 모양이다.


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대학원 졸업생 B씨에게 ‘너가 힘을 실어줘야 되지 않겠니...’라고 말한 어느 교수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사건하고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상한 정황이 포착됐다.


의혹이 제기되고 나서 친한 제자들과 제 상황과 제 심경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얘기들이 학과 교수를 통해 (비대위)로 넘어가 있었다. ‘김태훈이 뭐 하고 있더라’, ‘무슨 자료를 준비하고 있더라’ 처음엔 이게 왜 이렇게 됐는지 몰랐다. 그리고, 공금횡령의혹이 제기됐을 때 그와 관련된 정확한 사실을 알고 있는 제자들도 사실을 밝히지 않고 숨어버렸고, 나에게 불리한 증언들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학과 내에서 교수들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놓고 목표는 ‘김태훈 파면’을 내세우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김태훈 교수에게 동조하면 ‘2차 가해’라는 말로 학과 내에서 적으로 돌려 버리니 학생들도 (저에 대한 이야기를) 나쁘게 할 수밖에 없었다. 비대위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허위 조직에 불과하다고 확신한다. 이런 정황들이 너무도 많았다.


Q.이번 사안이 미투(me too)보다는 다른 외부적인 요인이 사건의 시발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은데?


(동료 교수들과)20년 가까이 한솥밥을 먹었다. 사안에 따라 때로 다투기도 했지만, 그래도 한 조직에 있으면서 보람과 행복을 느낀 순간들이 많았다. 특히 같은 전공 교수들은 서로의 집안사정까지 잘 아는 동고동락한 사이이다. 그런데 이 사건 터지고 지금까지 약 4개월 동안 단 한번도 연락을 해온 이가 없었다. 내가 그 어떤 일에 연루됐다해도 언론의 의혹을 떠나 ‘김교수 얘기를 직접 한번 들어봅시다’ 라고 하는 것이 최소한의 인간 도리가 아니런지요? 하지만 내가 접한 현실은 하다못해 ‘잘 지내냐?, 밥은 먹냐? 딸은 괜찮냐?’등 안부 연락 조차 한번 없었다. 아마도 그들은 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해도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그들이 ‘2차 가해’, ‘여론호도’ 운운하며 ‘학과 교수일동’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빨리 파면하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아직 소속교수이니 이 교수일동에는 나도 포함되는 것인가?


나는 여론을 호도할 능력이 없다. 진실만 보여주기에도 개인으로서 너무도 힘이 든다. 진실을 이야기하자니 한 두 언론의 오보를 들이밀며 내가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발표한 나에 대한 근거 없는 인격살인적 보도는 지금도 인터넷에 넘쳐나는데 말이다.


그런 그들이 ‘2차 가해’를 운운하며 나에게 입을 다물라 한다. 묻고 싶다. 그대들은 어떤 자격으로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기본권리를 묵살하는가? 익명성 뒤에 숨어 자신들의 이익만을 관철시키려는 비겁한 행태는 무엇인가?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2차 가해, 학부모 운운하며 뒤로 숨지 말고 당당하게 실명을 밝히고 앞으로 나올 것을 권고한다. 그대들이 주장한 허위 사실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제가 성명서를 통해 언론에 전했지만, 성폭행을 주장한 A씨의 경우 본인이 학교 진상조사에 나오지도 않았고, A씨 사건은 학교의 징계안건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언론데 ‘성폭행’ 프레이밍을 계속 하며 저를 성폭행 범으로 몰아가고 있다. 왜 그들을 비롯한 일부 언론은 ‘성폭행’이라는 프레임으로 나를 가두려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들은 나의 징계위 안건인 ‘성추행 의혹’이 파면의 사유로는 약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징계위 결과에 영향을 미치고자 끊임없이 성폭행 프레이밍으로 끌고 가는 것 같다. 제발 진실된 사실을 가지고 얘기했으면 좋겠다. 이제 이 싸움에 미투는 사라지고 ‘비대위’와 ‘영화예술학과 교수 일동’만 남아있다.


Q.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도 학과 내에서 교수들끼리 갈등이 있었나?


저희 과는 ‘영화예술학과’다. 연극과 영화는 비슷한 것 같지만 하나의 전공으로 묶이기 어렵다. 더욱이, 과 명칭이 ‘영화예술학과’이고 영화 쪽 교수들이 네 명이나 되니 주도권을 잡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처음에는 연극을 아예 하지 못하게 까지 했었다.


전공 특성상 배우의 ‘연기’는 무대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연극을 하게 되는데, 제가 영화예술학과 안에서 연극과 연기를 발전시킨 사람 중의 하나다. ‘에쮸드’라는 연기교육법을 통해서 교육과 훈련을 하는데 이것이 관련 교육계나 현장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다. 예를 들어 피아노로 따지면 바이엘, 체르니와 같은 거다. 이전까지 ‘끼만 있으면 된다’식의 배우를 위한 교육훈련이 부족했던 국내 현실에서 체계적인 기초 훈련법을 제시한 것이다.


에쮸드를 통해서 연기 공부를 한 배우들은 무대에서든 카메라 앞에 서든 자연스럽게 살아있는 연기를 하게 되니 관련 교육계와 현장에서 인기를 끌게 되고, 세종대가 연극영화관련 대학에서 인기가 급상승하는 큰 요인이 되었다. 급기야 세종대 ‘연기전공’의 경우 수시에서는 200:1의 경쟁률을 보이게 됐다.


또 대학원의 경우 연기전공에서 실기대학원으로 MFA과정을 만드니 많은 대학 졸업자들이 몰려들면서, 어느 해는 석사 대학원생이 100명이 넘어 학부생보다 많을 정도였다. 당연히 이에 따라 학과운영이 연기전공 중심으로 흘러가게 되고, 전공의 특성상 공연이나 연기전공학생들은 자주 모이게 되는 데 이런 모든 것들이 영화 쪽 교수들이나 영화학생들에게는 불만이 된 듯하다.


그래서 이전부터 ‘전공 분리’나 ‘학과 명 변경(연극영화과)’의 등의 안건이 있었는데 번번이 영화 쪽 교수들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연기전공생들이 현장에 나가 영화예술학과라는 학과 명칭 때문에 불이익을 보곤 했는데 특히 몇몇 학생들이 교생실습을 나갈 때 연기전공의 학생은 학과명칭 때문에 중고등학교에서 자신의 전공인 연기를 가르칠 수 없고 카메라 관련 수업을 해야 하니 당연히 경쟁력이 부족해 임용시험이나 교사입사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학과 교수 그 누구도 이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같은 전공 교수들도 연기전공을 한 졸업생이 받는 피해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Q. 대학 내 교수들끼리의 알력다툼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세종대 영화예술학과의 경우 모든 화살이 교수님에게만 향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이런 것일까.


학과 내 쟁점이 많은 상황에서 연기전공 쪽의 중심에 제가 있었다. 제일 오래 있었고, 학과 처음 만들어 질 때부터 시간강사로 있다가 2002년부터 전임으로 와 있어서 (학과에 관련된) 모든 걸 다 알고 있었으니까. 학과 내 전공 간 문제가 생기면 모든 불만이 나에게 쏟아졌다.


연극을 열심히 하는 한 교수는 처음 임용되면서 ‘왜 우리학과는 연극영화과가 아니냐 우리도 타대학처럼 그냥 연극영화과로 하면 안되냐’ 라고 문의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그랬다. ‘제발 부탁이니 당신이 좀 앞장서서 해보라’고. 그러나 그 교수도 그냥 순응해서 지내고 있고 아무도 학과 내 연기전공의 학생이 겪는 불편이나 어려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연기전공 실습공연이 매학기에 3~4편이 있는데, 본인이 학부에서 실제 전공을 하지 않은 교수들이 지도를 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나타났다. 공연이라는 것이 무대에서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뒤에서는 망치를 두드려 세트를 만들어야 하고 전기문제와 관련된 조명을 해야하고, 이 모든 것은 전문분야에 해당되어 이것을 실제 배우고 해보지 않으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 생기게 마련이다.


나는 과가 생긴 이후 지금까지 내가 직접 지도하는 공연뿐 아니라 학과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공연에 이러한 일과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뒷정리와 청소를 해왔다. 제 나이 오십이 넘으며 언제까지 공연 끝나고 뒷정리를 해야 하나... 언제까지 극장 대청소를 해야 하나 생각하면 한숨이 나왔고 내가 대학생 때 했던 일을 교수가 되서 오십이 넘어서도 해야 한하니 그것이 한탄스러웠다.


하물며 공연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가장 개인적 공간인 분장실에 대해서도 전공교수들은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조그만 공간에 30여명의 학생들이 들어가 북새통을 이루고 있고 더욱이 남녀가 한 공간 안에서 의상을 갈아입으니, 기본적 인권도 지켜지지 않는듯하여 이를 개조하고 남녀가 분리된 분장실을 만들기를 건의해도 전공교수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연기전공 학생들이 그나마 남녀 따로 마련된 분장실에서 쾌적하게 공연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나로서는 그래도 책임을 다한듯하여 뿌듯하지만 교수들 그 누구도 어떠한 과정을 거쳐 이 공간이 마련되었는지 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 우리 학과 교수들의 단적인 모습일 것이다. 공연을 위한 전문 기술지식이 없으니 대부분 학생들과 조교에게 맡겼으며, 그러니 안전문제를 책임질 사람 또한 아무도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재 학과 내 있는 소극장은 이대로 가면 2~3년 내에 유닛의 전기문제로 인해 큰 사고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아무도 여기에 직접적인 관심을 두지 않으니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 어느 교수는 강사선정이나 겸임교수 위촉에만 관심이 있고, 또 석박사생들이 저에게 논문지도를 받겠다고 몰리는 것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으니, 저는 학과장을 하든 안하든 전공 내에서 가장 뒤치다꺼리의 일을 도맡아야 했다. 실제로 한 학기에 20여명의 대학원생 논문지도를 해야 했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때는 책임감에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잠자는 시간을 쪼개 논문을 읽곤 했다.


실제로 올 2월, 내가 연구년이 끝나 복직을 하기 전 상황에, 자신의 대학후배를 겸임교수에 위촉하고자 했던 한 교수와 다툼이 있었다. 나는 위촉에는 별문제가 없으나 복직을 하는 내가 할 수업이 없으니 겸임교수 위촉을 한 학기 미루고 전임인 나의 수업을 배당 해줄 것을 건의 했고 그 교수도 처음에는 전화로 동의 했으나 나중에 이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면서 충돌이 있게 되었다.


난 이 문제가 처음에는 전공내의 다툼으로 그리 큰 문제가 아닌 것으로 여긴 것에 비해 그 교수는 타전공인 영화 쪽 교수들 모두에게 연대서명까지 하며 교무처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 교수에게 묻고 싶다. 이전 강의에서 강의평가가 안 좋았고 이제 연구년을 끝내고 복직을 하는 전임교수가 담당할 교과목이 제대로 없는 상태에서 겸임교수의 위촉을 한학기 미루자는 것이 그렇게 문제가 되는 것인지. 더욱이 그 교수가 자신의 직접적 대학후배일 때 세간의 눈길이 안 좋은 것을 염두에 두자고 한 것이 그리 큰 문제였는지.


상세한 내용을 모르는 영화 쪽 교수들은 내가 마치 큰 힘이 있어서 겸임교수 위촉을 변경한 것인 양 오해 한 것 같고 이와 비슷한 일이(역시 나의 의도와 관계없이 학교본부가 유도한 겸임교수 위촉 건으로 다툼이 생겼었다) 작년 12월에도 있었으니 학과교수들 모두 자세한 내막은 모른 채 한쪽의 의견만을 듣고 나에 대해 적대감을 표시하며 김태훈 교수 파면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여론전 통해서 무조건 ‘파면’만을 요구하는 상황
영화예술학과 교수들 사이 알력다툼 오래된 일?



Q. 이번 사안이 학교의 알력다툼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굳이 피해자들이 학교나 교수들을 위해서 미투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가장 처음 미투를 했던 A씨에 대한 이야기를 해 달라.


그들이 학교나 교수들을 위해서 미투를 시작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미투가 발생하면서 같은 목표를 지향하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A씨는 99년 당시에 저랑 잠깐 알고 있었고. 2000년 1학기에 간헐적으로 봤고, 가장 친해지게 된 계기가 2000년 여름에 같이 영화를 찍게 되면서다. 당시 그 영화감독이 누구였냐면 A씨가 (미투에 대해서)상담을 했다던 (교수)그분이다.


이후 저는 수원여대로 갔고, 저 대신 전임교수로 다른 교수가 왔었다. 여기서 A씨의 폭로가 말이 안되는 게 (이미 다른 학교로 간)상황에서 제가 A씨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었겠냐. 그리고 당시 학과에는 연기전공 전임교수가 새로 부임했으며, 모든 학생들이 그분의 지도하에 있었다. 나는 A씨에게 어떤 위력을 가질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A씨는 졸업한 이후에도 저와 영화를 같이 찍었던 학과 교수와 영화작업을 계속했었다. 최근 2~3년 전에도 영화를 같이 찍은 것으로 안다. 그러니까 그 둘은 꾸준하게 연락을 했었던 것이다. 거기에 A씨는 나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가공하고 확대하여 그 교수에게 전달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교수는 앞서 말한 학과 상황에서 그 이야기를 더욱 크게 받아들였고, 나를 모함하는 어느 교수의 이야기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미투 폭로에 관여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그 교수가 몇몇 다른 교수와 강사들이 있는 자리에서 나에 대해 예전에 큰 모욕감을 크게 느낀 적이 있고 그래서 A씨의 폭로를 전적으로 믿는다는 애기를 했다고 한다.


나는 관선이사 시절 학교 내 당시의 상황에서 여러 오해가 있었지만 그래도 개인적인 감정이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난 그 교수를 인간적으로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의 학교상황과 나에 대한 오해가 불러일으킨 것이 확대되고 재생산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난 A씨와 만난 적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도 한 때는 좋은 감정으로 만났었으니까. 다만 전문가가 공들여 작성한 것처럼 잘 쓰여진... 이런 소설 같은 폭로 글에서 누군가가에 도움을 받은 듯한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A씨와 헤어질 때 잘 헤어지지 못한 기억이 있다. 당시 A씨가 내가 아는 친한 남자배우와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A씨와 남자배우 그 둘에게 나는 어떠한 애기도 하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A씨와의 만남이 소원해졌는데 이후 A씨는 나와 안좋게 헤어진 것이라 생각하며 나쁜 기억만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싸우기도 하고 좋을 때도 있었고 여행을 가기도 하고 서로 내면의 상처를 위로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A씨는 만났던 1년 몇 개월 동안의 시간을 나쁜 기억만 편집해서 가지고 있는 게 아닌 지 생각이 든다.


만약, 성폭행 피해자라면 어떤 법적인 처벌을 요구하거나, 혹은 공소시효가 지나서 못 요구한다면, 무릎을 꿇고 참회를 해라라던가 진정으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이런 부분을 요구할 것 같은데. 현재 A씨가 요구하는 것은 오로지 ‘파면’ 뿐이다. 졸업한 지 20년이 된 사람이, 20년 전 이야기를 하면서 요구하는 것이 학교에서의 ‘파면’이다. 더군다나 그 현재 A씨는 학교와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학교와 그 어떤 연관성도 전혀 없는 상황이다.


그러면 이 같은 요구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결국 학과 안에서 벌어진 교수들 간의 알력다툼과 관계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A씨 입장에서 제가 학교를 그만둔다고 해서 자신의 상처가 치유가 되는 것일까? 이 부분이 정말 이해가 안 간다.


단지 그 분은 내가 승승장구 하는 것 같은, 학교나 대학로에서 잘되는 것 같은 모습이 싫은 듯하다. 사실 지난 10년 간 저는 내적 고통이(아내와의 사별로 인해) 너무 커서 그냥 그것을 이겨내고 아이 셋을 잘 키우고자 앞만 보며 열심히 살려고 했던 것이고 어쩌면 그런 한을 풀어내고자 했던 것이 연극공연을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최근 5~6년 전까지도 나는 내적 고통이 심해 무대에서 그런 감정을 풀어내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연극무대는 일종의 나를 치료해주는 역할이었고 난 어떤 작품, 어떤 역할을 맡던지 결국 작품에서 어느 순간 나의 속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무대에서 감정을 풀고 나면 스스로 조금은 건강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에 유일하게 나를 지켜준 것이 연극무대였다.


지금 내가 원하는 건 단지 자식들에게 떳떳한 아비 일뿐이다. 이제는 그분도 자식을 키우니 성폭행범이 되어 홀로 자식을 키우는 아비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잘 알 것이다. 차라리 죽는게 낫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백 번씩 한다.


Q. 그럼 B씨의 경우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대학원을 졸업한 B씨와는 사적인 이야기를 공유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친분을 가졌었다. 사적인 관계가 아니라면 어떻게 단 둘이 와인 바를 가고 노래방을 가고 일반적인 공적 관계에서는 알 수 없는 서로의 내면의 이야기를 알 수 있단 말인가? 지난 해까지도 B씨가 먼저 ‘만나자’, ‘밥먹자’ 연락을 해왔다. 내가 먼저 연락을 취한 적은 없었다. 이러한 기록은 메신저 등을 통해서 남아있다. 나는 술 먹고 손버릇이 안 좋거나, 또는 습관적으로 누군가를 추행하거나 그런 사람이 못된다.


그런 B씨가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B씨는 세종대에 교사자격증 받을수 있는 교육대학원에 왔다가 나랑 면담 후 일반대학원으로 옮긴 것이다. 난 B씨가 기발한 창의성과 자유로움을 가지고 있었기에 교육자의 길보다 창작자의 길을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추천했다. 그러나 B씨가 교육자의 길을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난 간과한 것이다. 이런 틀에서 다시 생각해보니, B씨는 나와의 사적인 관계유지는 물론 그리고 항상 먼저 문자하며 연락을 하여 밥을 먹자고 하는 것들 모두 자신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듯하다.


B씨는 처음에 언론에 A씨의 사건이 불거지자 자신과 오랫동안 연극을 했던 학과교수에게 연락을 했고 이어서 또 다른 교수와 상담을 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B씨는 내가 A씨 사건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오히려 제자들을 동원해 무마하려한다는 등 A씨를 꽃뱀으로 몰려고 한다는 등의 근거 없는 이야기를 들은 것으로 파악된다.


사건이 터지고 내가 학교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해야하냐고 문의했고 학교는 일단 지금 당장 수업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이 상황을 당시 학과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말씀드리며 대체 강사를 구할 것을 부탁했는데 결국 이것이 화근이 된 것 같다. 학과교수들은 나의 얘기를 들으며 내가 A씨 사건을 아주 가볍게 생각한다는 의구심이 들었던 모양이다.


A씨의 성폭행 주장에 나는 넋이 빠져 뭘 어떻게 할 상황도 아니었다. 나의 상황이 걱정되는 일부 사람들이 내 집까지 와서 내가 그 어떤 극단적인 선택을 할 까봐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내가 무슨 대처를 하고 있다는 등의 악의적인 정보가 B씨에게 들어갔다고 하니 이것은 당시에 있었던 그리고 나에게 악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서 나온 이야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당시에 함께 있었던 어느 분의 증언처럼 B씨는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한 교수가 ‘네가 힘을 실어줘야 하지 않겠니’라는 등의 이야기를 듣고 결국 B씨가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추가 폭로가 된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 주목해야 할 부분이 B씨 또한 성추행 의혹을 폭로를 하면서 ‘파면’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B씨 또한 학교를 떠난 지 오래되었고 이제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법적 조치를 취하거나 진실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아닌 ‘파면’을 요구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된다. 만일 B씨가 학교에 있기에 나와 얼굴 마주치는 것이 싫다거나 또는 그 어떤 학교와의 관계가 있다면 모를까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는 것과 김태훈 교수가 학교에서 파면 당하는 것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비대위가 ‘공금횡령’ 의혹을 제기할 당시, 어느 학생이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장기자랑관련 부당성을 신고하면서도 그들이 한 목소리로 요구하는 것은 그냥 김태훈 교수 ‘파면’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각각이 나에게 받았다는 상처의 경우나 크기가 다르고 또 각각이 의혹을 가지는 사건이 어떤 것은 나하고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그들은 모두 ‘파면’을 요구한다. 내가 파면을 당했을 때 이득을 가지는 집단은 당사자인 그들이 아닐 것이다. 나는 ‘공금횡령’이나 장기자랑과 관련하여 근거없이 주장된 ‘성희롱’ 의혹 등에 대해 감사실의 조사를 받고 ‘혐의 없음’의 통보를 받았다.


Q.이야기를 종합해 보자면 현재 학교 내부적인 징계에는 A씨 사건은 제외되고, B씨 사건만 포함된 상황인데 정작 중요한 B씨 사건에 대해서는 언론은 물론 비대위도 언급하지 않고 ‘여론전’을 통해서 김태훈 교수 파면만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인데.


현재 학교에서 열린 진상조사위나 또는 징계위의 절차에 해당되는 것은 A씨 사건이 아니라 B씨 사건에 대한 부분이다. 그러니 진실공방을 하고 싶다면 비대위도 B씨 사건에 대해서 증거자료를 말하면 된다. 그러나 비대위 측은 정작 B씨 사건에 대해서는 어떤 진실도 말하고 있지 않다. 또 비대위 성명서에도 B씨 사건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냥 오로지 A씨 사건만 가지고 여론전을 계속하고 있으며, 마치 현재 징계위에 A씨 사건이 회부된 안건인양 언론에 발표하면서 성폭행 프레임을 씌우고 징계위 판단에 영향을 미치려는 치졸한 행태이다.

제가 언론에도 말하는 것이 ‘(B씨에게) 법정에서 서게 해 달라. 고소해 달라’는 것이다. 처음에 진상위에서 들은 내용은, 법적인 결과가 있으면 그걸 가지고 판단하겠지만 지금은 ‘언론에서 시끄러우니’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이었다. 결국 ‘비대위-영화예술학과 교수들-A’의 목표는 (이 같은 여론전을 이용해서)그냥 저를 파면시키고 싶은 것 뿐이다. 그들의 마지막 입장문에서 ‘영화예술학과 교수 일동’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결국 학과 내 알력다툼이 표면으로 드러난 것이다.


작년부터 학과 내 교수들 사이에 알력다툼이 도를 넘었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교수집단에 갇혀 (있다).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교수는 두 부류가 있다는 말을 한다. 나쁜 교수와 더 나쁜 교수가 있다고.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고. 특히 (교수집단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있어서는 정말 너무 이기적이고, 이런 부분이 힘들었고 나와도 성향이 안 맞았다. 그런 상황에서 이 같은 일이 터지자 정말 창피하고 죽을 것 같아서 ‘그만두자’고 생각했고, 학교의 진상위가 조사를 하겠다하니 공정하게 조사를 해줄 것이라 믿었지만 그건 나의 순진한 생각이었다.


사퇴를 너무도 쉽게 응하니 처음 제보를 받은 기자님도 의아해했을 정도였다. 나에게는 어떤 직위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명예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난 밥그릇 지키고자 하는 모양으로 비쳐지는 것이 너무 싫었다. 난 나를 지키고 싶었다.


저는 모든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하겠지만, 사귀는 사이였던 것이고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고 이야기 했다. 하지만 이미 제가 사퇴한다는 게 부각되면서 저의 다음 말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미 사퇴로 인해서 제가 그 사건들을 모두를 인정하는 모습이 돼 버렸다. 난 너무 순진 했다.


저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특히 혼자되면서 주위의 권유로 여성을 만나고 연애를 하면 했지 지금까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 무엇보다 나름 열심히 나를 지키며 살고자 했던 지난 나의 인생이 한순간에 왜곡되어 쓰레기가 되는 것이 너무 가슴 아팠다.


Q.학교 내부적인 분위기는 어떤 상황인가?


학교라는 곳이 원래 교육을 하는 곳이니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현재 세종대는 언론에 보여지듯 매우 혼란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예전부터 재단과의 싸움에 깊이 관여했던 학과교수가 참여하고 있고, 나에 대한 폭로에도 그 교수가 관여 되어있으니 그래서 학교는 미투와 관련된 이슈에 굉장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학과의 교수들도 이 부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치졸한 언론전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교수 일동’이라는 익명성 뒤에 숨고 비대위라는 애꿋은 졸업생을 앞세우고서. 어쨌든 그렇다 보니 난 사면초가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사법부에 판단을 받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공개적으로 나를 법정에 세워달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Q. 사건이 불거진 것은 2월 말이었고, 이와 관련한 교수님의 입장 표명이나 대처는 좀 늦어졌다고 보여진다.


당시에는 언론에서 마녀사냥식으로 파렴치한을 만드는데 무슨 이야기를 해도 믿어주지 않았다. 며칠 전에도 한 기자 분에게 전화가 와서 제 입장을 성심성의껏 이야기 해드렸지만 기사는 공정하지 않게 악의적으로 나왔다. 미투운동에 의해 성폭력 프레임이 씌워지면 이미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모두가 그 시선으로 나를 가두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진상위가 조사를 한다고 하니 거기서 나의 결백을 밝힐 수 있으리라 믿었다. 공정하게 조사를 받아 결코 성추행은 아님을 증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순진한 생각이었다. 물론 진상조사위 위원들이 법 전문가도 아니고 일반전공의 나와 같은 보통 교수들이니 어떻게 그런 분들이 공정한 판단을 하겠느냐. 그 때 당시에 언론에서는 A씨의 자극적인 폭로로 제가 파렴치한으로 묘사될 때였다. 그러니 그분들은 온통 선입견에 빠져 급기야 제가 진술한 것을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B씨의 진술에 끼워 맞출 뿐이었다.


난 B씨가 진술한 것을 진상위에 가서야 처음 알게 됐고 나의 기본적인 방어를 위해 자료를 요청했지만 자료 또한 받지 못했다. 모든 것이 일방적이었다. 죄인에게 호통 치듯 말하는 어느 위원의 말이 지금도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또한 아무런 결과가 아직 나지 않았음에도 ‘성폭행, 성추행이 사실로 확인됐다’라는 거짓말을 언론에 흘리며 언론이 원하는 대로 빨리 결과 내기에 급급해 하고 있었다.


Q.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이 사건이 9시 뉴스에 나올 정도가 되니까 동네에도 나갈 수가 없더라. 집 앞 슈퍼에도 못나가겠고 사람을 만나지도 못하겠고 기자의 전화도 못 받겠고. 그런 상황에 놓이니까 왜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지도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죽하면 친지들의 위로 전화도 받을 수도 없었다. 그냥 죽고만 싶었다. 대인기피증이 생기고 특히 비대위의 인격말살적인 성명 ‘어디에서든 교육자라는 이름으로 누구를 가르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말은 나에게 정신병적 증상을 만들었고 이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이번 일 때문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딸 때문이다. 올해 3월에 딸아이가 중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그리고 제 기사가 터진 게 2월 28일쯤이었다. 일단 외할머니가 돌보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하면서 쉬쉬했었다. 그러던 중에 딸아이가 학교에서 인터넷 검색 수업을 받게 됐다. 거기서 자기가 아는 사람 검색하기가 있었다. 얘는 아빠가 연극을 하고 해서 본인 어렸을 때부터 인터넷에 나오고 이런 걸 초등학교 때부터 자랑스러워했었으니까, 그 때도 이런 상황을 모르고 수업시간에 처음 반편성이 된 친구들 앞에서 아빠 이름을 검색한 것이다.


그 때 아이가 검색하는 것을 교실에 있는 애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빔프로젝트로 켜놓은 상황이었고, 제 이름을 검색하고 나서 모두가 다 경악을 하게 된 거다.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성범죄자가 되어있었으니까. 애도 순간 멘탈이 나가게 되고. 아이가 받았을 그 충격은 지금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담임선생님 말에 의하면 아이가 어찌 할 바를 몰라 울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얼굴 빨개져 고개만 숙이고 말하기 좀 그렇지만 소변을 지리고 있었다고 하더라.. 자식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더구나 엄마 없이 키운 딸이라 혹시나 부족한 것이 없을까 늘 걱정했는데 그 피를 토하는 고통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다.


지금도 딸아이가 그때 받았을 충격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집에 돌아와서 하지 않았고 나도 몰랐다. 그리고 며칠 지나고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애가 학교에 안 온지 삼사일쯤 됐다고. 학교 간다고 나갔는데 가지 않은 거다. 그리고 학교 전화를 받은 날부터 애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애가 어디 갈 때가 없으니, 그나마 자신이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초등학교 친구네 집을 찾아간 거다. 애를 찾으러 돌아다니면서 걔가 받았을 충격과 함께 혹시 애가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냥 한강에 뛰어들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겨우 안정을 시켜 전학을 시켰지만 사실 지금도 아이와는 데면데면한 상황이다. 뭐라고 할 말이 없는 아비가 되어버렸다.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30~40대가 돼서 우리 아빠에게 오래전에 힘든 일이 있었어. 아빠가 바람을 피운 적이 있었어 하면서 어떤 부분은 용서하고, 어떤 부분은 용서하지 못한 채 받아들이는 것하고. 우리 아빠가 과거에 ‘성범죄자였어’ 라고 생각하는 건 정말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그동안 연극을 하며 엄마 없이 자신들에게 최선을 다한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커왔다. 이제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을 것이다. 다만 내 아이들에게 떳떳한 아비가 되고 싶다. 내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죽을 때까지 할 생각이다. 아니 죽어서도 끝까지 할 것이다. 그건 바로 내 이름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