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조원 적자의 늪’…주인의식 공백이 불러온 ‘참사’

파산 우려에도 임직원 연봉 오른다…‘모럴해저드’ 심각
헐값에 신사옥 매각…방만한 부동산 운영으로 부채비율↑



[스페셜경제=선다혜 기자]공기업들의 방만경영과 도덕적해이는 오래 전부터 지적돼 왔지만, 아직도 뿌리 뽑지 못한 고질병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같은 문제의 시발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기업 ‘수장’ 역시 교체된다는 데 있다. 소위 말하는 ‘낙하산 인사’들로 공기업 사장 자리가 채워지는 것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이 낙하산 인사들은 공기업의 궁극적인 목표인 ‘공공의 이익’ 실현보다는 정권에 힘을 실어줄 있는 ‘정책’을 따라가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보니 부실사업인 것을 알면서도 무리한 투자를 감행하고, 그 투자가 경영악화를 만들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공기업의 ‘몫’으로 돌아가는 악순환의 고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곳 중에 하나는 ‘방면경영의 끝판왕’이라는 오명을 달고 있는 한국석유공사다. 지난 이명박 정부시절 ‘해외자원개발’로 인해 발생한 수조원에 달하는 적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안일하게 신사옥을 매각하고 임직원 연봉을 올리는 등의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석유공사도 도처에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지난 3월 양승호 사장 체제를 출범시켰으나,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지난달 발표된 ‘공공기관 경영평가’ 공개에서 석유공사는 2년 연속 D등급(미흡) 판정을 받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무능한 공기업으로 전락해버린 한국석유공사의 지나간 역사에 대해서 짚어보기로 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공개서 2년째 D등급 판정받아
무리한 투자로 회사 휘청거려도 ‘오너’만 바뀌면 끝?


한국석유공사의 ‘악몽’은 MB정부 시절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뛰어들면서 시작됐다. 지난 2009년 당시 정부가 자원외교를 강조하면서 석유공사와 광물자원공사 등 공기업은 그 일환으로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특히 석유공사는 4조 5000억원이라는 거액을 쏟아부어 캐나다 ‘하베스트 유전’을 인수했다. 물론 정부의 기조에 발맞춘 사업이었지만, 제대로 된 현장실사 한 번도 없었던 ‘묻지마 투자’였다.


문제는 석유공사가 투자했던 다른 해외자원개발 사업 결과 역시 ‘하베스트 유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하베스트 유전의 경우 투자규모가 월등이 컸기에, 피해 규모 역시 천문학적이라는 것 외에 별반 다를 게 없다. 실제로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동안의 석유공사의 해외자원개발법인 7곳을 살펴보면 총 손실규모는 4조 731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서 비중이 가장 높은 사업은 당연히 ‘하베스트 유전’ 이었다. 하베스트 유전의 3년 동안 손실규모는 ▲2014년 4342억 ▲2015년 1조 6258억 ▲2016년 3063억원으로 총 2조 366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밖에도 미국 이글포드 사업, 영국 다나 사업 등 다른 해외자원개발 사업 역시도 적자가 계속되면서, 일부 사업은 ‘일시 중단’되기도 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파산 가능성’ 우려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뛰어들면서부터 석유공사의 부채는 수십조원에 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석유공사가 이를 타개할 자구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존폐의 기로에 설 수 있다는 이야기마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석유공사의 부채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6조 8000억원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원개발을 시작하기 전인 2007년 당시 부채는 약 3조 6830억원에 불과했을 때와 비교하면 약 13조 1170억원이 늘어난 것이다.

또한 석유공사의 3년 동안의 부채비율을 살펴보면 ▲2015년 453% ▲2016년 528% ▲2017년 674%로 매년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재무건전성 악화는 해외자원개발에 대한 투자와 지급보증이 계속되면서 차입금을 차입금으로 상환하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석유공사의 총자산에서 장·단기 차입금이 차지하는 규모는 13조 2064으로, 차입금의존가 68.4%에 달하고 있는 상황이다. 차입금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석유공사가 지난해 이자비용으로 지출하는 금액만 약 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기울어도’ 연봉은 오른다


최악의 상황에 놓인 석유공사가 급증한 부채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기존의 살림살이에서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양 사장은 취임 직후 구조조정을 통해서 22개처, 110개 팀으로 구성된 조직을 18개처 99개 팀으로 축소했다. 또한 회사 부실의 책임을 나누고자 3급 이상 임원들이 임금의 10%, 양 사장은 50%를 회사에 반납하기로 했다. 아울러 상위 직급자의 승급인사를 보유하고 수년간 하지 않았던 하위 직급자에 대한 승진인사와 신입사원 채용을 하기로 했다.


이렇게 사측이 경영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긴축재정에 들어간 것과 맞지 않게, 지난해 석유공사 임직원들의 연봉은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회사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행보임과 동시에 도덕적 해이가 드러나는 부분”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그도그럴것이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지난해 석유공사 기관장이 수령한 연봉은 지난 2016년에 비해서 702만원이 오른 1억 2403만원이었다. 직원들의 연봉 역시 전년도에 비해서 1021만원이 올라 8281억원으로 증가했다. 심지어 이는 지난해 경영평가 성과급 감소로 인해서 대부분 공기업 임직원들의 연봉 인상폭이 줄어든 것과도 대조적인 모습이다.
실제로 330개 공기업 기관장의 평균 연봉은 1억 6322만원으로 전년 대비해서 201만원이 줄어들었으며, 직원들 역시 6707만원으로 101만원 증가하는데 그쳤다. 이에 대해서 석유공사 측은 지난 2016년 전 직원이 연봉을 10%씩 자진반납하면서 다른 공기업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인상폭이 높게 보이는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이러한 해명을 바탕으로 계산해도 2016년 한국석유공사 직원들의 연봉은 7986만원 가량이다. 자진반납을 하지 않았다고 가정해도 직원들의 연봉은 전년도에 비해서 295만원이 인상한 것이기 때문에 공기업 평균을 상회하는 것이다.


부채비율 역시 매년 증가하면서 ‘파산 가능성’까지 언급되는 회사 임직원들의 연봉 인상폭이라고 보기엔 다소 과하게 보인다. 더욱이 ‘긴축재정’을 위해서 회사의 임원진들을 상대로 임금의 일정 부분을 삭감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올라간 연봉 인상폭을 감안하면, 과연 임금삭감 카드가 실효성이 있을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회사 ‘피해’ 입히고도 나몰라라?


석유공사 내부의 만연해있는 도덕적 해이는 ‘신사옥 매각’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앞서 한국석유공사는 재무구조를 개선한다면서 울산 신사옥을 임대조건부로 매각했다. 여기서 문제는 절감되는 이자보다 지급해야 할 임대료가 훨씬 많아서 석유공사가 손해를 보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 5월 감사원의 ‘공공기관 부동산 보유 관리실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석유공사는 지난해 1월 울산혁신도시 내 지하2층, 지상 23층 규모의 본사 신사옥을 A부동산투자 회사에 ‘매각 후 재임대’(세일즈 앤 리스백) 하는 방식으로 2,200억원을 받고 팔았다. 하지만 석유공사가 A사에 15년간 사옥을 빌려 쓰면서 내야 하는 임대료만 1446억원으로, 신사옥 보유세 63억원과 공사채 상환 시 이자비용 절감액 798억원을 더한 금액이 861억원에 불과해 오히려 차액만큼 손해를 보게 됐다.
이에 감사원은 향후 15년간 585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또 사옥을 매각하고 임대하게 되면 금융리스 부채가 발생해 종전보다 부채가 늘고, 부채비율도 1.4% 포인트만큼 높아지는데도 이를 검토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더욱이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부채감축계획 운용지침’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부채가 감축되는 등 재무구조 개선의 효과가 있을 경우에만 한 해서 자산을 매각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당초 석유공사가 신사옥을 매각한 것도 부채감축을 위한 ‘자구책의 일환’이었다. 자금을 확보해 부채를 감축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한다는 것이 목표였으나, 오히려 매각으로 인해 재무구조가 더 악화돼 버린 것이다.


심지어 당시 매각 업무를 담당한 실무자들은 이 같은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었다. 그럼에도 경영악화를 타개할 방안을 만들라는 경영진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서 허위 사실에 기반한 방안을 만들고, 이를 보고한 뒤 시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임대조건부 수의계약 협상에서 인수업체가 석유공사에 우선매수청구권 행사 시기를 제3자 매각 시 ‘임대차 5년 이후 매년’에서 ‘5년 단위 행사’로 해달라는 특약 조건도 그대로 들어줬다. ‘5년 단위 행사’로 해달라는 특약 조건을 받아들이면 안정적 임대료수익을 보장할 수 있어 인수업체가 제3자에게 매각하는 데 유리한데도 이를 받아들여준 것이다.


현재 석유공사에서 가장 초점을 맞추고 있는 사안은 부채감축과 이를 통한 경영정상화다. 그리고 이에 일환인 업무를 담당하던 실무 직원들이 이렇게 안일하게 일처리를 진행했다는 것은, 석유공사 내부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극에 달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관련 업계에서는 “사실 석유공사가 앞날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부채가 현재 약 17조원 달하기 때문에 뾰족한 대안 없이는 이를 탕감하기도 어려워 보인다”면서 “그런 상황에서 내부 직원들의 도덕성 문제까지 불거지고 있다. 이러한 상태라면 내년에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비슷한 등급을 받거나 최악의 경우 더 나빠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회사 내부에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이를 타개할 대책이 나와야 하는데 석유공사는 문제가 될 때마다 ‘사장 바꾸기’만 자행되고 있다”며 “사장만 바뀐다고 해서 기업 내부적으로 모든 게 다 바뀌는 것이 아니다. 이는 임직원 전체가 경영쇄신을 위해 노력하고 혁신을 일으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단순히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사장을 교체하는 것으로는 직접적인 문제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지금 가스공사가 몇 년 째 도돌이표를 걷는 것도 결국은 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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