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명중 1명만 ‘반대’…‘무조건 찬성에 손 번쩍’

[스페셜경제=황병준 기자]국내 주요 상장사 사외이사들이 여전히 거수기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사외이사의 거수기 논란은 비단 어제 오늘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기업의 경영활동의 방향키 역할을 해야 할 사외이사들이 총수들의 독자경영에 외부 방패막이가 되고 있다는 지적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우리 기업들의 사외이사 문제점에 대해 살펴봤다.


최근 사회적 책임투자컨설팅 업체 ‘서스틴베스트’가 국내 상장기업 880여 곳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이들 기업의 사외이사가 단 한 차례라도 반대 의견을 낸 경우는 전체의 25곳, 2.8%에 그쳤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보류나 기권, 수정, 조건부 찬성 등 찬성 외 의견 역시 전체 대상의 39곳. 4.4%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기업의 사외이사가 소신이나 주관적 판단보다는 기업에서 선택한 경영 방향에 무조건적으로 동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사외이사들의 이 같은 행태로 인해 사외이사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사외이사 무용론 제기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경영진의 주요 의사결정에 사외이사가 독립적으로 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사외이사의 문제점은 ‘거수기’ 논란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 의장의 독립성 역시 의문으로 나타났다.


올해 3월말 기준 이사회 의장을 대표이사나 최대주주가 아닌 사외이사가 맡은 경우 역시 평가 대상기업의 51곳에 불과한 전체 5.8% 인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의 경영활동에 있어 외부에서 개관적인 눈으로 방향을 결정해야할 사외이사의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 영향력에서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인 셈이다.


그렇다면 국내 기업들의 사외이사에는 어떤 인사들이 자리할까. 지난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사외이사제도가 도입됐다.


보다 객관적이고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제도지만 그동안 국내 기업환경에서는 권력기관 출신이나 총수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른바 보은 인사가 주로 자리했다.


권력기관 출신인사가 늘어난 데에는 총수들이 대외기업활동에 있어 방패막이를 내세우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국내 대기업 사외이사는 누구(?)


국내 대기업들의 사외이사를 살펴보면 소위 ‘힘’있는 권력기관 출신들의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8월, 기업경영성과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내 30대 그룹 계열사 199개의 사외이사 현황을 조사한 결과 3월 말 현재 사외이사 657명 가운데 관료출신 인사들이 274명으로 전체 43.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직 관료 사외이사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분야는 ‘법조’다. 법조 출신은 70명, 24.6%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청와대 69명, 24.3% 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내 기업들의 사외이사 선임 기준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청와대 출신 사외이사가 가장 많은 곳은 삼성으로 11명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SK와 현대차가 7명, 두산과 롯데가 6명, GS가 5명, CJ 4명, LG와 하림 신세계가 각각 3명씩 인 것으로 나타났다.


권익위 ‘사외이사 제도’ 손본다…사외이사 반대 2.8% 뿐 


보은(報恩)이던, 관(官)이던, 끗발 있는 인사 모시기 경쟁


30대 기업부터 100대 그룹 사이의 사외이사에는 관료 출신 비중은 29%로 낮아진 반면 학계 출신 인사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났다.


학계출신 사외이사는 28%로 나타났으며 재계 출신 역시 106명으로 28%를 차지했다. 세무‧회계가 4.2%(16명), 법조 3.7%(14명), 언론 2.4%(9명), 기타 1.3%(5명) 등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교수들의 ‘외도’


학계출신 사외이사들을 선도하고 있는 곳은 역시 국내 최고 대학을 자부하는 ‘서울대’다. 서울대 교수들은 그동안 사외이사에 단골로 등장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국민의당 이동섭 의원은 서울대에서 제출받은 2017년 전임교원 사외이사 겸직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사외이사 겸직 교수는 120명으로 이들은 사외이사를 하며 받은 연봉은 평균 5026만원 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는 총장 허가를 받으면 연구와 교육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1인당 2개 회사 이내로 대기업, 연구기관 등의 사외이사를 겸직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서울대 사외이사 대부분이 이사회에서 찬성표를 던지는 이른바 ‘거수기 논란’이 제기돼 뭇매를 맞은 바 있다.


권익위 ‘사외이사제’ 손본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사외이사 제도는 지난 20년간 국내 기업에 정착했지만 끊임없이 거수기 논란이 지적됐다.


국민권익위원회 전경.

국민권익위는 이러한 문제점 등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1일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기 위한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날 토론에는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사외이사 무용론에 대해 여러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지적되 온 사외이사제도와 ‘준법감시인제도’에 대한 문제점들이 제기됐다.


사외이사가 경영진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하지만 현재 많은 기업들의 사외이사가 기업의 입장에서 이를 지지하는 경우가 많아 실효성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사외이사 선정시 CEO등 경영진의 참여 배제와 기존 사외이사에 대한 연임 추천시 상호추천을 금지, 소액주주들의 참여 등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사외이사제도는 본연의 취지와 달리 기업의 입장에서 외부견제용으로 선임된 경우가 많다”며 “사외이사가 거수기 논란에서 벗어나려면 선임에서부터 기업의 입김을 줄여야 하며, 사외이사에게 일정한 경영활동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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