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 승계 작업’…‘은밀하고 복잡하게’

[스페셜경제=황병준 기자]1950년대 한국 전쟁이 끝나고 국민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면서 급성장한 식품산업. 전통식품에서부터 가공식품 등 국내 식품업계의 태동기는 이때부터였다.


국내 최대 식품기업인 CJ는 53년 제일제당공업으로 설립됐고, 롯데칠성음료는 1967년, 농심은 65년, 오뚜기 69년 창립하면서 성장했다.


국내 식품 대기업은 창업주인 1세대들의 성장을 뒤로하고, 최근 2,3세들이 경영 전반에 나서거나 경영체제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부 기업들은 오너가의 지분이 대다수인 계열사를 발판으로 일감몰아주기를 진행, 부의 축적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기도해 물의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최근 창업세대가 물러나면서 2,3세 들이 경영 전면에 부상하면서 본격적인 시험대를 맞고 있다. 일부 후계자들은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기업들도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식품기업의 경영 승계 과정을 들여다봤다.


국내 식품업계는 지난 50‧60년대 태동기를 거쳐 발전을 거듭해 성숙기를 맞이하고 있다. 창업 1세대 키워 놓은 환경속에서 식품업계 2,3세들은 새롭게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들 2,3세대를 중심으로 경영일선에 배치돼 본격적인 경영후계구도가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주목되는 오너가 후계구도를 살펴보면 지난해 말 SPC그룹 허영인 회장의 장남인 허진수 파리크라상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했으며, 사조그룹 주진우 회장의 장남 주지홍 식품총괄본부장은 상무로 승진했다. 올해 연말에도 많은 오너가 후계자들이 승진 인사가 단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3세 대표주자 누구(?)


가장 관심이 커지고 있는 곳은 대상이다. 임창욱 명예회장의 차녀인 임상민 상무가 올해 초 결혼식을 올리면서 후계구도에도 변화가 올 수 있다는 조짐이 들리고 있다.


임상민 상무는 지난 2009년 복귀한 임세령 상무의 동생이다. 임상민 상무는 언니와 달리 대학 졸업 후 대상에 입사하면서 실무를 익혔고 언니보다 더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차기 후계구도에 한 발 더 앞선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오너가 소유 관계사 어디(?)…승계 작업 ‘구심점’ 역할


빙그레 ‘제때’ 삼양 ‘비글스’ 유명세…편법 논란 일기도


국내 대표 제과업체 크라운제과는 식품제조 및 판매를 담당하는 식품사업 부문을 인적 분할해 신설회사를 설립, 존속회사를 지주 회사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최근 밝혔다.


윤영달 회장의 장남 윤석빈 크라운제과 대표이사가 최대주주로 있는 ‘두라푸드’는 윤 회장의 지분 4.07%를 매입해 크라운제과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를 통해 윤 대표는 두라푸드를 통해 해태제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완성했다.


CJ그룹은 지주회사 전환을 마치고 자회사 합병을 통해 승계구도를 그리고 있다. 오너 2세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의 규모를 넓히면서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재현 회장의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과장은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 15.7%를 보유하고 있다. CJ올리브네트웍스는 최근 재산커뮤니케이션을을 흡수합병한 CJ파워캐스트를 자회사로 편입하는 등 몸집을 불리고 있다.


대상 역시 오너 일가 지분율이 높은 자회사의 규모를 늘리고 있다. 대상홀딩스는 지난 12월 대상과 대상에프엔에프의 외식사업부문을 대상베스트코에 양도했다.


임세령 상무(좌), 임상민 상무(우)

대상베스트코는 대상이 70%를 보유하고 있고 임창욱 회장과 임세령, 임상민 상무가 각각 10%씩의 지분을 갖고 있다.


별처럼 사자지는 1세대 식품 거인들


식품업계의 후계구도가 완성해 가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이기지 못한 1,2세대 창업주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다.


지난달 12일 국내 식품업계 대표기업인 오뚜기 함태호 명예회장이 86세의 일기로 별세했고 23일에는 샘표 박승복 회장이 95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또한 지난 4월에는 국내 조미료 업계의 대명사 미원을 만든 대상그룹 임대홍 명예회장이 9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국내 식품시장을 개척하고 발전하는데 있어 빠질 수 없는 입지적 인물이다.


2·3세 경영 시험대 본격화…창업 1세대 퇴진 잇따라


‘위기냐 or 기회냐’ 변화는 식품 환경…시장 판세 분석


국내 카레의 대중화를 선도한 함 명예회장은 오뚜기를 창업한 후 47년간 국내 식품산업 선도에 인생을 바쳤다. 국내 최초의 즉석식품인 3분 카레를 출시, 식문화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 (사진 좌측부터)대상 고 임태홍 명예회장, 오뚜기 고 함태호 명예회장, 샘표 고 박승복 회장.

박승복 회장은 ‘내 식구들이 먹지 못하는 음식은 만들지도 말라’는 선친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최고의 품질을 고수했다. 1976년 선친의 뒤를 이어 55세의 나이로 샘표식품 사장으로 취임해 오늘날 샘표 발전에 기틀을 쌓았으며, ‘간장하면 샘표’라는 인식을 각인시키게 만들었다.


국내 조미료 시장의 선구자였던 임 명예회장은 일본에서 조미료의 성분인 글루타민산 제조 방법을 연구해 이듬해 부산으로 돌아와 동아화성공업을 세웠다. 국산 최초의 발효조미료 미원을 만들어 조미료의 또 다른 이름으로 ‘미원’을 대표브랜드로 성장시켰다.


오너 일가의 ‘숨겨진 곳간’


식품업계의 창업주들의 1세대 퇴진이 이뤄지면서 기업의 미래를 열기 위한 3세대의 역할이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그룹 승계의 발판으로 작용할 소유의 관계사들이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일부 기업들은 비밀 곳간을 마련해 후계 작업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어 논란이 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최근 지분 매입을 두고 경영승계 발판으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주목을 받은 곳은 빙그레의 ‘제때’다. 계열사인 ‘제때’는 빙그레의 냉장 냉동 제품을 운송하는 물류업체로 그동안 내부거래를 통해 꾸준히 성장했다.


제때는 지난 9월 중순 다섯 차례에 걸쳐 빙그레 주식 2만5483주를 장내 매수했다. 이에 따라 빙그레 지분도 기존 1.70%에서 1.98%로 올라갔다. 제때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이곳이 김호연 회장의 자녀들이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남 동환씨와 장녀 정화씨 차남 동만씨가 각가 3분의 1씩 보유하고 있다.


현재 빙그레는 김 회장이 33.77%의 지분을 보유중에 있으며, 김구재단이 2.03, 제때가 1.96%를 보유하고 있는 구조다.


일각에서는 빙그레 오너일가가 제때를 통해 빙그레의 지배 지분을 획득하거나 상장을 통해 경영승계 자본을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빙그레 지분 매입을 위한 경영 승계 포석이란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오너가 자녀들의 개인 회사를 통해 일감을 몰아줘 회사를 성장시키고 늘어난 자산 가치를 통해 주요기업의 지배력을 확보하는 부의 승계하는 일종의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풀무원 역시 남승우 대표의 장남 성윤씨가 지난해 95%의 올가홀푸드의 지분을 매입하면서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성윤씨는 본격적인 경영 참여 없이도 계열사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삼양식품의 최정상에 ‘SY캠퍼스’


삼양식품 역시 지배구조의 정상에 SY캠퍼스가 자리잡고 있다. SY컴퍼니(구 비글스)는 오너가 3세의 개인회사다.


2007년 2월 ‘비글스’로 설립된 SY캠퍼스는 지난 3월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이 회사는 오너가 3세인 전병우씨가 13세인 2007년에 설립됐고 지분의 100%를 보유하고 있다.


SY컴퍼니는 사실상 지배구조의 최정상에 위치하며 차기 경영권 승계의 전진 기지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병우씨가 100% 소유한 SY캠퍼스는 신주인수권(워런트)을 이용한 주식투자로 70억원 가까운 시세차익을 얻으며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지난 2008년부터 2012년 3월까지 본점 주소지로 돼있던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사우나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페이퍼컴퍼니 의혹도 제기됐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본금 5000억원, 종업원 1명인 SY홀딩스가 매출 수천억원 규모의 삼양식품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내츄럴삼양 지분 인수 관계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사조그룹의 경우 그룹 지배구조 최정점에 오너일가가 대다수 주식을 소유한 비상장사 ‘사조시스템즈’가 자리하고 있다.


사조그룹은 오너 자녀가 대주주로 있는 비상장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줘 회사의 몸집을 키운 후 지주사로 올리는 전형적인 편법승계 방법을 취해 지탄을 받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창업주인 오너가 자식들에게 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자녀 지분이 높은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기업을 성장시킨 후 이를 발판으로 후계자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방법을 취하면서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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