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뉴시스

[스페셜경제=김은배 인턴기자]지난 2014년 말부터 묵혀 두었던 ‘대기업집단 기준상향’이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한 마디에 한달 반만에 결과물이 나왔다.


합리적이지 못했던 기존의 규제를 변화시켰다는 점은 의미가 있지만 지나치게 일사천리로 진행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 일각에서는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에 공백이 발생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대기업집단기준상향이 정부의 주요과제에 포함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인 2014년 말이다. 이런 가운데 공정위는 사회 각계의 의견수렴과 철저한 검토를 핑계 삼아 이를 방치했다. 지난 4월 1일에는 대기업집단 신규지정‧발표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기준 상향 여부, 시기, 방법 등은 검토되거나 결정지어진 바 없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카카오와 셀트리온이 대기업집단에 포함되면서 논란이 일던 시기에도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두 회사가 포함될지 모르고 투자를 했겠느냐”면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월 26일 박 대통령이 언론사 편집국장 간담회를 통해 “시대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고 발언한 이후 급격한 변동이 일어났다. 또 박 대통령은 지난 5월 18일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속도를 올려서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고 한번 더 강조했다.


이후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결과물이 나왔다. 이렇게 조속한 처리가 가능한 일을 2년 가까이 방치한 셈이다.


급하게 하다보니...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 구멍 뚫려


기존 대기업집단기준은 자산 5조원 이상이었다. 전경련을 비롯 경제개혁연대에서도 상향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감할 정도로 합리적이지 못했다. 자산규모의 격차가 뚜렷한 카카오와 삼성에 똑같은 규제가 적용됐는데 새로 진입하는 대기업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여론이 커졌다.


대기업집단에 포함되면 상호‧신규 순환출자 제한을 비롯 30여개의 법적 규제를 받기 때문이다. 카카오와 삼성의 자산규모는 각각 5조800억원과 348조원이다. 공정위 내부에서도 이전의 30대 대기업을 규제 대상으로 지정했듯 30개 안팎의 대기업을 집중 감시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추후 3년 단위로 대기업집단 기준 상향을 검토하기로 한 것도 정책예측성을 높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준비할 오랜 시간이 있었음에도 그 시간을 활용하지 못하고, 국민입장에선 우발적이라고 오해할 수 있을 정도의 다급한 진행이 뒤따르다보니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에 큰 허점이 노출 됐다.


이에 공정위는 대기업집단기준은 자산 5조원에서 10조원으로 상향조정하지만 총수 일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은 기존의 5조원 이상 수준에 유지시킬 방침이라고 밝혔다.


9일 공정위 관계자는 “이 규제는 현 정부 경제민주화의 핵심이 되는 정책 가운데 하나로 현행기준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차등규제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법과 시행령 개정이 동시에 이뤄져야함에도 이를 간과했다는 것이다.


오는 9월 시행령만 우선 고칠 예정이기 때문에 공정거래법 개정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총수 일가 사익편취 조사에 구멍이 발생하게 됐다.


정부는 오는 10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이 개정안이 언제 통과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최대한 조속히 개정안이 통과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지만 국민들에게 2014년 같은 안건을 두고 말했던 그들(공정위)의 발언이 데자뷰 처럼 겹쳐지는 것은 면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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