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수기 논란 ‘모르쇠’…‘무용론 확산’

[스페셜경제=황병준 기자]바야흐로 3월 주주총회 시즌이 진행되면서 상장사들은 전직 장관과 검찰 수뇌부 등 이른바 권력기관 요직을 거친 ‘사외이사 모시기’ 전쟁을 펼치고 있다.


각 기업들은 오랜 공직 경력을 바탕으로 회사 발전에 조언을 해주길 기대하며 사외이사를 모신다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권력형 사외이사들에게 바라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권력에 대한 기업의 ‘방패’ 역할이다. 이들은 전관예우 등 관계유지를 통해 기업이 받은 수 있는 불이익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또한 사외이사의 찬성률이 사실상 100%에 달하면서 기업의 거수기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권력형 사외이사의 불편한 진실을 살펴봤다.


올해 신규 또는 재선임된 10대그룹 사외이사의 절반 가까이가 이른바 권력기관으로 분류되는 인사로 채워진 것으로 드러났다.


<재벌닷컴>이 총수가 있는 10대 그룹 소속 상장사의 올해 정기주총 안건을 분석한 결과 신규 또는 재선임 예정인 사외이사 140명 중 정부 고위 관료 출신이거나 국세청과 금감원, 공정위 등 이른바 권력기관 출신 인사가 61명으로 전체의 43.6%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직 장관 ‘모시기’ 경쟁


출신별로 살펴보면 정부 고위 관료 출신이 28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중 전직 장관과 차관이 각각 8명씩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검·판사 17명, 금감원 6명, 국세청 7명, 공정위 3명 등 총 61명이 권력기관 출신이다.


MB정부에서 청와대 국정기획 수석을 거쳐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 장관을 거친 박재완 전 장관은 삼성전자 사외이사 선임됐다. 또한 롯데제과 사외이사 후보로도 추천됐다.


박봉흠 전 기획예산처 장관은 삼성중공업 사외이사로 내정됐으며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 장관은 GS건설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경한 전 법무부 장관, 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은 두산인프라코어, 한화생명, 오리온의 사외이사로 각각 선임됐다.


10대그룹 44% 권력기관 출신…‘위험한 선택’
장·차관·검찰·교수 여전히 인기…그들만의 리그



지난 2013년부터 GS의 사외이사를 맡아온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은 이번 주총을 거쳐 임기가 3년 연장됐으며 , 김성진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삼성증권 사외이사로 재선임됐다.


오명 전 부총리겸 과학기술부 장관은 지난 2010년 3월 이후 6년간 NC소프트 사외이사를 역임했으며 오는 25일 임기 3년의 사외이사로 재선임할 예정이다.


법조계 출신의 대표적 인사는 박용석 전 대검찰청 차장이다. 박 전 차장은 롯데케미칼 사외이사로 영입됐으며, 정병두 춘천지검장은 LG유플러스, 노환균 전 대구고검장은 현대중공업, 천성관 전 서울지검장은 두산건설, 채동헌 전 춘천지법 부장판사는 코스모신소재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송광수 전 검찰총장은 삼성전자와 두산, 문효남 전 부산고검장은 삼성화재, 차동민 전 서울지검장은 두산중공업, 노영보 전 서울지법 부장판사는 (주)LG, 이석우 전 서울지법 부장판사는 대한항공, 석호철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한화테크윈 사외이사로 각각 재선임됐다.


‘세무조사’ 막아라


사외이사 중에서 국세청 출신의 인사는 인기가 높다. 기업의 곳간이 공개될 수 도 있는 세무조사를 막거나 강도를 줄일 수 있을 것을 은근히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승호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은 현대모비스, 김영기 전 국세청 조사국장은 현대건설, 채경수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은 롯데칠성음료 사외이사로 각각 선임됐다. 김용재 전 중부지방국세청 납세자보호담당관은 한화투자증권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오대식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은 SK텔레콤, 김창환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은 두산, 박외희 전 서울지방국세청 부이사관은 현대비앤지스틸 사외이사로 재선임됐다.


금융감독원 출신으로는 문재우 전 금감원 감사가 호텔신라와 롯데손해보험 신규 사외이사로 영입됐다. 이장원 전 금감원 부원장과 김윤하 전 금감원 검사국장은 롯데케미칼과 롯데하이마트 사외이사로 새로 선임됐다.


공정위 출신의 대표적인 사외이사는 김동수 전 위원장이다. 김 전 위원장은 두산중공업 사외이사로 선임됐고, 안영호 전 공정위 상임위원은 LG화학 사외이사로 자리했다. 황정곤 전 공정위 부이사관은 현대비앤지스틸의 사외이사에 재선임됐다.


롯데그룹 제일 많아


사외이사 중 이른바 권력형기관 출신 인사가 가장 많이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곳은 롯데그룹이다. 롯데그룹은 올해 신규 또는 재선임한 사외이사 19명중 12명인 63.2% 권력기관 인사 출신으로 채웠다.


뒤를 이어 삼성그룹이 61.9%, 두산그룹 61.5%를 차지했으며, 현대차그룹과 GS그룹 사외이사 절반이 이들 인사로 채워졌다. SK그룹은 4명중 1명인 25%로 가장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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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이사 중에는 교수 출신도 비교적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대학별로 살펴보면 서울대 교수가 15명으로 가장 많고, 성균관대 4명, 고려대와 연세대, 한양대가 각각 3명, 서강대와 중앙대가 2명으로 나타났다.


또한 10대 그룹의 신규 또는 재선임된 사외이사 가운데 두 개 이상에서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는 인사도 39명이나 된다.


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은 CJ와 오리콤, 그리고 BNK금융지주 등 3개사에서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외이사 겸직인사 ‘39명’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는 인사들 중에도 권력기관 인사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삼성전자와 롯데쇼핑, 권도엽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GS건설과 CJ대한통운, 박봉흠 전 기획예산처 장관은 삼성중공업과 SK가스 등에서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허경욱 전 기획재정부 차관은 삼성생명과 GS사외이사를 맡고 있으며, 오대식 전 서울지방국세청장도 SK텔레콤과 메리츠금융지주를, 노영보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도 LG와 현대중공업, 손병조 전 관세청장 역시 삼성화재와 현대정보기술 등 2개사의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교수 출신 중에서는 이창우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가 LG전자, AK홀딩스 사외이사를, 곽수근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롯데쇼핑과 LS, 유관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에스원과 오리콤 등 2개사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거수기 ‘논란’ 도마 위


국내 사외이사들은 거수기 논란이 꼬리표처럼 작용하고 있다. 기업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사외이사의 본연 임무보다는 자신을 선택한 기업에 대한 거수기 역할론이 팽배했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사외이사에게 돌아가는 고수익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외이사제도는 1997년 말 외환위기 닥치면서 이듬해 기업 지배구조 개선 방안의 일환으로 증권거래소 ‘상장규정’에 따라 상장법인들을 대상으로 처음 도입됐다. 이후 2001년부터 증권거래법을 통해 사외이사제도 운영이 의무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업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본연의 입무보다는 친기업적 성향이 우선적으로 작용됐다. 이는 사외이사의 선임부터 오너 등 기업 경영인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손혁·정재경 계명대 교수가 학회지 ‘회계학연구’에 발표한 ‘사외이사와 최고 경영자의 사회적 관계가 과잉투자에 미치는 영향’ 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2003년~2010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결산법인 3231개 기업 사외이사 가운데 최고경영자와 동향(同鄕)인 사외이사 비율이 20.7% 인 것으로 나타났다. 5명중 1명은 최고경영자와 지연 등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외이사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지나친 찬성률이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중 167개 기업의 사외이사 활동내역을 조사한결과 사외이사들은 총 1만3284표의 이결권을 행사했다.


하지만 이중 찬성표를 던진 것은 전체의 99.7%인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 아닌 표중 반대는 13표 유보 또는 보류 가 28표로 나타났다. 실질적으로 기업이 추진하는 의사에 반대 의견을 제시한 경우는 전체의 0.1%도 안된 것이다.


10대 그룹 중에서 100% 찬성률을 보인 곳은 롯데, 포스코, 현대중공업, 한진 등 4곳이었지만, 10대 그룹 이하 중견그룹일수록 100% 찬성 비중이 70%대에 달하면서 거수기 논란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거수기 논란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지만 지나친 연봉도 논란이 되고 있다. 대기업 그룹 사외이사들의 2014년 평균 연봉은 4900만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차례 이사회에 참석할 때마다 평균 450만원씩 받는 셈이다.


그 중에서도 삼성이 7500만원으로 가장 높았으며 KCC가 7000만원을 웃돌았으며 에쓰오일과 현대차, 아모레퍼시픽 등이 6000만원이상을 받아갔다.


해외 사외이사 어떻게?


국내 사외이사들 중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 권력기관 출신들이라면 외국에서의도 이러한 성향은 나타날 것인가.


미국 포춘이 선정한 상위 100대 기업 사외이사는 74%가 재계 출신 전문가인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에서는 경쟁회사의 CEO가 사외이사로 자리하는 경우도 있으며 CEO의 독단을 사외이사가 견재 해 CEO가 자리에서 물러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독립성에 문제가 있는 사외이사 임명을 제한을 두어야 한다”며 “사외이사들의 평가시스템 등을 도입해 근본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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