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發 ‘압수수색’…특명 “문건 보낸者 찾아라”

▲한국기업데이터(YTN화면 캡쳐).
[스페셜경제=황병준 기자]최근 기술신용평가기관 한국기업데이터(사장 조병제)가 전체 직원의 사내 이메일을 무단으로 내려 받아 분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이 회사의 조병제 대표이사는 지난해 말 간부급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발송했다. 하지만 이메일 속 내용이 노조 익명게시판에 공개되자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문제는 사실 확인을 위해 직원들의 이메일을 들여다 본 것.


이에 대해 노조는 명백한 ‘불법사찰’로 규정하고 회사의 사과와 제발방지를 요구했지만 사측은 ‘인사상 조치’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메일 열람이 불법으로 이뤄졌다면 현행법 위반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불법 사찰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기업데이터를 살펴봤다.


정부가 지난 2005년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와 신뢰도 높은 신용평가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국책기관과 민간기관이 출자해 한국기업데이터를 설립했다. 이후 2013년 정부지분을 줄이고 시중은행 지분을 늘리는 방식으로 한국기업데이터를 민영화 시켰다.


최근 한국기업데이터는 대표이사 지시로 전직원에 대해 불법으로 이메일을 확인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사내 이메일 왜 봤나(?)


사건의 발단은 지난 12월 30일 회사 대표 명의로 간부들에게 전달된 메일에서 시작됐다. ‘1,2급 직원 여러분들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메일에는 2015년 임금협상 노사합의 사실과 함께 “상급단체인 금융노조의 상후하박을 이유로 1급, 2급 직원에 대한 임금동결을 주장하는 노조를 끝내 설득하지 못했다”며 “경영자로서 심한 자괴감을 감출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글이 5일 노조의 익명게시판에 올라오자 조 사장은 유출자를 찾아내라고 지시한것으로 알려졌다. YTN에 따르면 이러한 지시에 따라 IT관리부장은 12월 30일부터 4일까지 직원들의 사내 이메일 사용기록을 내려 받아 대표이사에게 전달했다.


IT관리부장, 직원 사내 이메일 연람 후 대표 보고(?)
개인정보 연람 명백한 ‘불법’…法, 증거 인멸 우려



여기에는 한국기업데이터 전체 직원 약 3,000명이 언제 누구와 이메일을 주고받은 지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회사측은 이메일 기록 조회는 사찰이 아니라 회사 인사상 필요에 따라 징계 조치를 밟으려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이메일 내용도 들여보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기업데이터의 한 관계자는 <스페셜경제>와의 전화통화에서 “사찰은 절대 아니다. 내용을 들여 본것이 아닌 제목만 확인했으며 이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졌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법무법인 바른의 최재웅 변호사는 <스페셜경제>와의 전화통화에서 “통신 모니터링을 실시하기 전 아무런 사전 절차없이 근로자의 이메일과 메신저 등 전자통신을 무단으로 모니터링 하거나 열람할 경우 원칙적으로 기본권 침해 등을 이유로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 형사상 통신비밀보호법위반, 정보통신망법위반 등에 해당 될 수 있다”며 “또한 이를 위반해 지득한 통신을 공개하거나 누설한 자는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또한 최 변호사는 “봉합 또는 기밀장치를 이용해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을 기술적 수단으로 그 내용을 알아내면 형법상 전자기록등내용탐지죄를 구성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2003년 다른 직원의 이메일을 열람한 혐의로 기소된 한국디지털위성방송 간부에게 징역형을 선고된 판례도 있다.


불안에 떠는 직원


이번 개인 정보 사찰 의혹 파장은 직원들에게도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회사가 언제 어떤식으로 사찰을 할 지 알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한국기업데이터의 한 직원은 YTN과 인터뷰에서 “직원들이 회사 메일에 대해 불신을 갖게 됐고, 서로 외부 개인 메일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며 “직원들 사이에는 불신과 내가 언제 사찰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해 졌다”고 전했다.


금융노조 기업데이터지부는 사측에 재발방지와 사과를 요구했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찰은 노조활동을 축소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메일 불법사찰이 알려지면서 내부 구성원 간 소통도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국기업데이터는 측은 “회사 인사상 필요에 따른 조치였다”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전국금융산업노조도 이번 사건을 간과하지 않겠다며 지난 4일 ‘한국기업데이터 경영진은 전 직원 이메일 사찰 즉각 사과하라’는 성명을 제기했다.


금융노조 측은 “한국기업데이터 경영진은 전 직원의 업무용 내부 메일을 들여다보는 초유의 사찰을 벌였다”며 “해당 노조는 조 사장에게 즉각 사과와 재발방지를 촉구했으나 조 사장은 오히려 대표고유의 감독권이라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화살을 쏘아 붙였다.


정치권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노조위원장에게 이메일을 보낸 사람을 찾기 위해서라는 점에서 사용자가 노동조합의 운영에 부당하게 개입한 부당 노동 행위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불법 사찰’ 의혹 법정으로 갈까


직원들은 업체 대표가 이메일 사찰과 관련한 증거를 없앨 우려가 있다며 법원에 증거보존을 신청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직원들의 신청 이유가 정당하다고 판단, 현장검증에 나설 계획이다. 사찰 증거 인멸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이 직원을 대상으로 개인 정보를 무단으로 연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또한 해당 직원을 찾아내기 위해 전 직원에 대한 이메일을 확인했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