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리터 누출’‥“인명 피해만 없으면 그만 인가”

[스페셜경제=고수홍 기자]최근 울산에서 또 다시 플루오린화수소산(불산)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해 인근 주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건은 지난해 2월 불산 유출로 곤욕을 치렀던 바 있는 이수화학(이규철 사장)에서 또 다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나 안전 불감증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이수화학은 최초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사고 은폐의혹마저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이어 2번째…보수작업 후 사고 ‘눈살’
점검 결과 이상 없었다?…부실관리 의혹 수사


이번 사건은 지난 16일 오전 0시47분께 울산 남구 사평로에 위치한 이수화학 울산공장에서 발생했다. 농도 40%의 불화수소산(Hydrofluoric Acid·불산) 약 1000리터가 누출돼 소동을 빚었다.


지난해 이어 재발 왜?


최초 신고는 인근 기업체에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가스냄새가 심하게 나는 것을 느낀 인근 기업체 근로자가 최초 신고를 했고, 현장에 출동한 울산소방본부는 공장 내 LAB(연성알킬벤젠)공정에 설치된 지름 1.9cm의 드레인 밸브가 손상된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달 21일부터 공장 정기보수 중인 이수화학 측은 전날 오후 저장탱크 세척작업을 마치고 불산 약 5000ℓ를 탱크로 옮겨 담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와 업체 측이 사고 발생 40여분만에 메인밸브를 차단하고 물과 중화제를 사용해 누출된 불산 희석작업을 펼친 끝에 8시간 만에 대기 불산 농도가 희석됐다.


당시 현장에서 작업중이던 근로자 12명은 사고 직후 무사히 대피해 인명피해는 없었으며 근로자들은 방제작업 끝에 사고일 오전 8시30분께 정상 퇴근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 직후부터 소방본부가 이수화학 정문에서 주기적으로 불산농도를 측정한 결과 오전 3시께 10ppm까지 치솟았으나 오전 6시33분을 기해서는 더 이상 검출되지 않았다. 이후 회사 측이 공장 부지경계선에 설치한 가스검출기 4곳에서도 불산은 검출되지 않았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은 사고 직후 이수화학 울산공장 전체에 대해 작업중지 및 긴급 안전진단 명령을 내리고 근로자들의 건강이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임시건강진단을 실시할 것을 지시했다.


울산고용노동지청장 관계자는 “신속한 사고 원인조사를 위해 전담팀을 구성했다”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실이 확인될 경우 사업주를 엄중히 처벌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또 경찰은 당시 작업 관리자를 불러 산안법 위반 여부를 집중 조사하는 한편 파손된 드레인 밸브를 수거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 감식을 의뢰했다.


이 같은 조치에도 최초 신고가 사측에서 이뤄지지 않은 점에 따라 사고 은폐 및 회사의 안전 불감증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외부적 요인 가능성 커


이 회사에서는 지난해 2월에도 작업 도중 순환펌프가 파손돼 불산 혼합물 100리터가 누출, 업체 법인과 공장장이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번 누출의 원인은 지름 1.9㎝짜리 드레인밸브의 파손이 원인으로 지목됐고 사측은 사고 전 이뤄졌던 밸브 점검 결과 큰 이상은 없었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수화학 관계자는 “손상된 드레인 밸브에 대해서도 그동안 비파괴검사 등을 실시했으나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필요한 조치가 전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혹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수화학은 사고 이전 정기보수를 실시하고 있는 중이었고 이에 불산을 옮겨 담고 밸브 설치를 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수가스업계 한 관계자는 “밸브 상태를 제대로 확인됐고 큰 이상이 없었다면 누출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다만 어떤 화학적 반응으로 탱크나 밸브가 손상되는 일이 거의 없는 만큼 외부적 영향에 의해 유출 원인이 있었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유독성 물질인 불산은 불화수소를 물에 녹인 휘발성 액체로 무색의 자극성 기체로 퍼져 인체의 피부나 점막에 강하게 침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기 중 수분과 결합하면 폭발 위험성이 있으며 피부와 눈에 치명적일 수 있고 특히 공기 중 불산이 농도 0.5ppm 이상인 상태에서 8시간 이상 머물게 되면 생명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다. 이 같은 산화 특성 때문에 반도체 웨이퍼 식각공정에 사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불산 유출로 인한 사망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어 불산에 대한 위험성이 잘 알려져 있는 상태다. 지난 2012년 구미 제4국가산업단지에서 발생한 불산 유출로 5명의 작업자가 사망했고 1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또한 가스 누출 이후 방제 조치가 이행되지 않아 인근 농작물이 죽고 가축이 이상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늑장 대응’에 은폐의혹


이수화학에서 지난해에 이어 2번째 유출사건이 벌어지면서 인근 주민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화학은 지난해 사고 이후 공장 자체 안전 강화와 소방훈련 등을 실시하고 100억원을 투입해 설비를 교체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입장이지만 결국 사고가 재발하면서 안전 조치가 미흡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최초 신고가 사측에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시민들에게 더욱 큰 불안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떤 요인에 의해 사고가 났다고 하더라도 이를 빠르게 인지해 조치하는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그나마 마음을 졸였을 테지만 은폐 의혹까지 나타나면서 안전 불감증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화학공장이 많이 모여 있는 울산의 경우 이 같은 사건 하나에 인근 시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환경부는 화학사고 즉시 신고 예규를 만들어 빠른 신고가 이뤄지도록 지침을 마련하고 있는 상태지만 신고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도 불안감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울산 석유화학공단 근로자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에서는 지난 1월 울산항 화학물 운반선 폭발사고, 7월 한화케미칼 울산공장 폭발사고 등 인명피해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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