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권도윤 기자]여행(旅行)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이 함축적인 단어는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 대한 서사로는 부족하다.


실제 행동에 옮기기에 앞서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의 설렘과 막연함, 새로운 환경과 문화의 접촉, 낯선 이들과의 만남, 그리고 매번 찾아오는 선택의 순간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여정을 마친 후 원래 있던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에 남는 아련함까지……. 이 모든 과정이 여행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 권도윤 기자가 경험한 여행의 순간을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편집자주>



주말이 지나자마자 이란 영사관을 찾았다. 그러나 영사관에서는 서울에서 받으라면서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훗날 알고보니 당시 이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제3국에서 외국인의 비자 발급을 제한한 것이다.


토후국? 아랍 에미레이트


북쪽 사우디아라비아는 관광목적 입국을 허용하지 않으며 남쪽의 예멘 역시 여권사용제한국이다. 결국 아라비아 반도를 빠져나가려면 항공기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항공 일정을 기다리는 동안 아랍 에미레이트(United Arab Emirates; UAE)의 다른 구성국을 둘러보기로 했다. 국가라고 표현하기는 조금 애매하지만 사실 이 나라는 ▲아부다비(Abu Dhabi) ▲두바이(Dubai) ▲샤르자(Sharjah) ▲푸자이라(Fujairah) ▲라스 알 카이마(Ras al-Khaimah) ▲움 알콰인(Umm al-Quwain) ▲아즈만(Ajman) 7개 에미레이트의 연합체다.


예전에는 아랍 토후국으로 번역하기도 했지만 직접 본 두바이는 토후국이라는 명칭이 어울리지 않는다. 토후라는 단어는 어딘가 지방호족이나 부족장, 추장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 거쳐온 샤르자와 현재 머물로 있는 두바이는 각각 하나의 에미레이트이면서 도시다. 그리스 폴리스와 같은 도시국가의 느낌도 난다. 이러한 에미레이트들은 에미르(Emir)라고 불리는 세습군주가 통치한다.


UAE의 대통령 셰이크 칼리파(Sheikh Khalifa)는 수도인 아부다비 에미레이트의 에미르를 겸하고 있으며 부통령인 셰이크 모하메드(Sheikh Mohammed)는 두바이의 에미르다.


이 나라의 옛 모습은 두바이 크릭 근처 전통마을에 잘 보존되어 있었다. 모스크와 조그만 박물관들로 구성되어 있는 전통마을은 강 건너편에 즐비한 화려한 빌딩과 대조를 이루어 더욱 흥미로웠다.


두바이를 조금 더 알아보기 위해 두바이 박물관을 찾았다. 이곳은 196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두바이의 발전상을 잘 정리해놓은 곳이다. 사진과 디오라마로 구성된 전시물에 따르면 과거 두바이는 진주 채취로 생계를 이어가던 작고 가난한 어촌마을일 뿐이었다. 그러나 석유가 이 나라를 바꿔놓았다.


석유가 바꿔놓은 현실


물론 지도자의 비전과 리더십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지하자원이 있지만 지배층의 주머니만 불리고 국민은 돌아보지 않는 나라가 한둘인가.


일단 두바이의 에미르인 셰이크 모하메드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듯 하다. 그의 사진은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한때 한국에서도 그의 리더십에 대한 책이 많이 출간된 걸로 기억한다.


물론 이곳은 전제군주가 다스리는 왕국이다. 게다가 그 왕은 경제적으로도 넉넉하다. 그러니 바다를 메꾸고 엄청난 건물을 지어 올려도 누구하나 반대하지 않는다. 임기 내에 어떤 업적을 이루겠다는 강박관념도 없다. 계획한 청사진대로 하나하나 실행해 나갈 뿐이다.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한 전제군주정은 내 정서에 맞지 않지만 최소한 과도기에 무언가를 추진 해 나가기에는 공화정보다 더 유리한 듯 하다.


다만, 두바이의 모습은 우와 하고 입은 벌어지지만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았다. 이 박물관, 대체 왜 만든거지? 석유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줬다고 자랑하려고?


이 엄청난 역사에 두바이인의 땀과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복권 당첨되어 벼락부자가 된 후 쓴 회고록 같은건 나만의 생각일까?


장기적인 안목에 따라 큰 그림을 그리고 실행해 나가는 추진력과,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창의적인 사고로 자연 환경에 도전해 온 셰이크 모하마드의 리더십은 인정하지만 사막을 개척하고 바다를 메꾼 것은 현지인들이 아니었다.


감동 없는 감탄


이 열사의 땅을 개척한 거대 역사의 현장에는 한국인들도 있었다. 어릴 때 본 교과서에는 중동에서 일하는 삼촌에게서 온 편지가 실려있었으며 세계 최고층 빌딩인 버즈 칼리파는 한국 기업이 지었다고 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의 노력으로 발전한 이 나라는 지금도 험한 일은 외국인들이 도맡아서 하고 있다. 아마 이 사람들은 석유가 고갈되든, 대체 에너지가 개발되든, 더 매력적인 관광지가 부상하든 두바이에 돈줄이 마르는 순간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물론 그것을 더 잘 아는 셰이크 모하메드는 인프라 구축, 교육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그 결과 한국이 원자력 발전소를 짓고 있으며 아크부대의 특전사와 해군 특수전전단 요원들은 UAE군을 훈련시키고 있다.


사막 위 신기루같은 UAE와 비교하면 자원도 부족하며 일제의 수탈을 겪었고 한국전쟁 이후 잿더미가 되었던 대한민국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새벽별을 보며, 정글에서 피를 흘리고 중동에서 땀을 흘린 끝에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냈으며 마침내 주요 20개국(G20)으로 부상했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기대하는게 빠르다던 국민의식 또한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로 재탄생했다. 감동이라는 글자는 두바이가 아니라 바로 이럴 때 쓰는거다. 문득 한강의 기적을 소개하는 박물관을 만들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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