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권도윤 기자]여행(旅行)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 여행이란 ‘언어’라는 수단으로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행동에 옮기기에 앞서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의 막연한 설레임, 그리고 매 순간마다 찾아오는 선택의 고통, 그럼에도 ‘항해’를 지속하게 하는 알 수 없는 힘.


그리고 모든 여정을 마친 후 원래 있던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만든다. 아련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해지는 기분. 이 모든 과정이 여행이고, 이를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또 다시 여행을 결심한다. <편집자주>


안나푸르나 등산을 마친 후 체력 회복을 핑계로 한동안 포카라에 머물렀다. 호수를 낀 아름다운 도시. 해뜰 때 마다 하얀 설산을 붉게 물드는 모습도 좋고 기온도 적당한데다 물가도 적당하니 최고의 휴식처였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Kathmandu)로 향한다. 거리는 약 200km. 중간 목적지인 둠레(Dumre)까지는 전반적으로 고도가 300m가량 낮아지는 내리막이라 수월하게 이동했다. 생각보다 일찍 둠레에 도착했다.


아직 해가 지기에는 이른 시간. 여기서 5km정도 산길로 들어서면 수차례 추천받았던 반디푸르(Bandipur)라는 마을이 있다. 가이드북도 관광개발의 마수에서 벗어난 편안한 휴식처라며 방문을 권하고 있었다. 이정도 거리면 걸어가더라도 한시간 반이라는 생각에 반디푸르로 발걸음을 옮겼다.


반디푸르로 가는 험로


그런데 이 코스가 최악이었다. 오르막을 예상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난이도가 그 이상이었다.


자전거 타는것은 고사하고 끌고 가려해도 뒤로 밀려나갈 정도라 한걸음 한걸음이 힘에 부친다. 룸비니에서 포카라 코스는 오르막 내리막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진을 빼놓았지만 이 경로는 짧은 구간에 급격히 높아진다.


아마 기울기 자체는 지금까지 달린 코스 중 최고일 듯 하다. 약 5km에서 고도 700m 상승하니까 평균 기울기 θ=tan^-1(700/5000)≒tan^-1(1/7)≒8˚다.


어라? 평균은 그리 높지 않은데 왜이렇게 힘들지? 왕복하면 이동거리는 10km이지만 변위값은 0km. 헛고생 하는건가? 이상한 생각과 함께 자전거를 타다가 끌다 쉬다 반복하며 짧은 거리를 2시간 반에 걸쳐 힘겹게 올라갔다.


이윽고 도착한 반디푸르는 조용한 곳이라는 소개와는 달리 관광객이 넘쳐나고 있었으며 방 값도 두 배가 되어 있었다. 마을 축제 때문에 사람이 많은 반면 볼거리는 거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둠레에 머물 걸……. 후회가 밀려오지만 어쩔 수 없다. 지친 몸을 이끌고 가장 저렴한 500루피(약 6,000원)짜리 숙소에 몸을 맡겼다.


피로감에 한참을 침대에서 뒹굴다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아침의 반디푸르는 전날과 또다른 느낌이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은 맞지만 이렇게 붐비는 시기에 머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에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내리막길은 브레이크에서 손을 떼지 않는데도 시속 40km를 넘나들게 한다. 게다가 꼬불꼬불한 길때문에 방심하면 낭떠러지에 쳐박힐 것 같다. 마음껏 달릴 수 없으니 내리막길도 힘들다.


주민들의 보호 속 야영


이날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다. 한참을 달렸지만 여전히 고도는 400m 정도다. 카트만두는 해발 1,200m가 넘는데 언제 올라가나? 반디푸르처럼 한번 힘들고 끝나는건가?


바레니(Bareni)마을 부근에 짓다 만 건물이 보인다. 직감적으로 여기가 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마을 사람들.


일단 분위기도 살필 겸 구멍가게에서 국 끓일 감자와 양파를 구입했다. 일단 식사부터. 공터에서 밥을 짓는데 사람들이 몰려온다. 가게 주인의 딸 수지따가 통역에 나서 나에 대해 설명한다. 밥짓는 과정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신기하게도 식사 시작하니 싹 사라졌다. 여기도 한국처럼 밥먹는 것을 쳐다보는게 실례인가 보다.


식사가 끝나자 한 친구가 다가와 건물 2층에 자리를 잡아준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아서 편히 쉬기는 무리이겠다 싶어서 망설였다.


그러자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자. 여기는 네팔이야”라고 안심시킨다.


말만으로도 참 고마운데 주민 한 명이 내 텐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깔았다. 집도 있는데 무슨 일일까? 말을 걸어봤지만 알아들을 수 없다. 수지따에게 물어보니 빙그레 미소만 지을 뿐이다. 밤은 유독 더웠고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텐트 옆 친구도 자지 않고 핸드폰만 만지작 거린다. 열대야 때문에 나와있는건가?


알고보니 마을 손님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봐 주민들이 교대로 불침번을 선 것이다. 어떻게 이런 마을이 있을까? 수지따에게 작별인사를 건네고 고마운 바레니를 뒤로한다.


카트만두에서 느낀 인도


이날도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다가 급경사가 나타났다. 수 km 사이에 1,520고지를 넘어가야 한다. 그저 힘들 뿐 다른 생각은 없다. 비오듯 내리는 땀이 입으로 흘러들어 입안이 짭짤하다.


전날 반디푸르만큼 급경사는 아니었지만 오르막이 길어 매우 힘들었다. 마침내 올라선 정상에는 어이없게도 작은 경찰초소가 하나 있을 뿐이다. 아래로는 카트만두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이제 고생 끝이구나.


자전거로 오른 최고 고도. 토룽 라(Thorong La)에 올랐을때보다 더 기분 좋다. 땀에 흥건히 젖었고 쉴 때 마다 마르기를 반복하여 굵은 소금얼룩이 남은 티셔츠. 이 땀은 인내의 상징일 것이다 싶어 흐뭇하다.


힘들게 올라왔으나 내려가는 길은 순식간이다. 그런데 대체 이게 뭔가? 룸비니와 포카라에서 느꼈던 깨끗하고, 평화롭던 네팔은 온데간데 없고 파손된 도로와 복잡한 거리, 시끄럽게 울려대는 경적소리. 길거리의 쓰레기와 날리는 흙먼지. 낯설면서도 뭔가 익숙한 이 느낌.


그래, 인도다. 이건 딱 인도의 느낌이다. 괜히 카트만두에 왔다 싶었다. 약간의 후회를 하며 타멜 거리에서 저렴한 숙소를 구했다. 우연히 이곳 숙소에서 포카라에서 만났던 형님과 재회했다. 더 신기한건 형님은 버스에서 내가 마지막 고지를 넘는 모습을 봤다고 한다. 상당히 안쓰러웠다는데, 이왕이면 정상이나 좀 멋지게 있을때 보시지.


형님과 저녁 식사를 함께한 후 방에 들어가 쓰러지듯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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