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권도윤 기자]여행(旅行)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 여행이란 ‘언어’라는 수단으로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행동에 옮기기에 앞서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의 막연한 설레임, 그리고 매 순간마다 찾아오는 선택의 고통, 그럼에도 ‘항해’를 지속하게 하는 알 수 없는 힘.


그리고 모든 여정을 마친 후 원래 있던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만든다. 아련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해지는 기분. 이 모든 과정이 여행이고, 이를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또 다시 여행을 결심한다. <편집자주>


네팔 비자 취득은 간단하다. 국경 우측에 치우친 입국심사장에 돈과 사진만 제출하면 바로 발급해준다. 미리 인쇄된 스티커를 붙이고 서명하는 수준이다. 사진은 대체 왜 요구하는지 모를일이다. 국경도 허술했지만 입국심사장도 마찬가지다. 마음만 먹으면 출·입국 심사 없이 국경을 넘나들 수 있다.


네팔에 들어서자 뭔가 더 조용하고 정돈된 느낌을 받았다. 단지 개인적인 느낌일까? 사실 인도와의 거리는 100m도 채 안된다.


넓찍한데다 갓길까지 갖춘 도로를 보자 인도와 다르다는게 느껴졌다. 공사중인 구간은 한 차선만 작업하여 통행에 지장을 최소화하였고 무려 ‘공사중’ 표지판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부처님 탄생지에 서서


네팔의 첫 행선지는 룸비니(Lumbini)로 정했다. 국경에서 불과 20km 떨어진 작은 마을이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지라 전 세계의 불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흔히 ‘룸비니 동산’으로 알려져 있지만 룸비니는 언덕을 찾아볼 수 없는 평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불교의 최고 성지답게 룸비니에는 각국의 사찰이 모여 있었다. 절간만 구경하고 다녀도 시간이 금방 간다. 물론 한국 절도 있다. 한국 절 ‘대성석가사’는 순례자와 여행자들에게 하루 300루피(약 3,900원)에 뷔페식 세끼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고 있어 외국인들 사이에도 인기가 많았다.


시끄럽고 복잡하고 정신없던 인도에 지쳤는지 고요하고 편안한 룸비니에 머무는 그 자체가 좋았다. 그러던 중 신자들의 기부금으로 짓고 있는 대성석가사는 무려 17년째 건축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대웅전 부근에 페인트 작업이 한창이었다. 작업하는 모습을 살펴보니 네팔인들보다는 훨씬 빨리, 잘 칠할 수 있겠다. 많은 기부금을 낼 입장은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돕고 싶어 총무스님께 말씀드렸는데 정중히 사양하셨다.


이유가 놀라웠다. 페인트칠이 나에게는 봉사활동이지만 네팔 근로자들은 생계 수단이라는 것이다. 스님의 마음 씀씀이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자금도 넉넉지 않겠지만 그리 크지 않은 절임에도 왜 17년이나 완공되지 않는지도 알 듯 했다. 그래도 너무 느린건 사실이다.


대성석가사에서 멀지 않은 부처님 탄생지에는 마야데비(Mayadevi) 사원이 세워져 있었다. 남아있는 유적은 폐허일 뿐이다. 출가 전 부처님이 왕자였으니 원래는 왕궁 터였을 것이다.


세월 속에 돌무더기만 남아 있지만 지극정성으로 예불하는 불자들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특히 단체로 성지순례하면서 국왕과 왕비의 사진을 액자에 담아 다니는 태국 스님들이 인상적이었다. 속세를 떠나신 분들이……. 한국 스님이 대통령님 사진을 들고다닌다? 전혀 머리에 그려지지 않는 광경이다.


국민성의 차이는 무엇에 기인하는가


인도·네팔의 큰 축제인 홀리(Holi)도 룸비니에서 맞이했다. 봄맞이 축제인 홀리는 오색 색소를 뿌리고 노는 날로 ‘색의 축제’로 불리기도 한다. 인도의 홀리는 광란의 장이라고 들었으나 네팔의 홀리는 매우 점잖았다. 특히 외국인들에게는 “던져도 될까요?”라고 양해를 구한다. 반면 이후에 만난, 인도에서 홀리를 보낸 사람들의 옷은 총 천연색 걸레가 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같은 힌두교를 믿고 힌디문자를 사용하지만 인도와 네팔은 차이가 많았다. 무엇보다 네팔은 조용하고 점잖다.


심지어 개조차도 성한곳 없는 인도의 떠돌이개에 비해 네팔 개는 평온해 보일 정도다.


인도에서는 사이드미러를 갖추지 않은 차가 대부분이었고 대신 쉴새없이 경적을 울려대며 자기 위치를 알린다. 조용히 달리는게 더 위험하다. 따라서 대형 차량은 후미에 ‘경적을 울려주세요(Push Horn Please)’라는 문구까지 새기고 다닌다.


또한 인도에서 만난 한국인 사업가에 의하면 운전하는 것 만으로도 고관대작이 행차하는 마냥 자신의 행선지를 알리면서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알아서 피하라는 심리도 있다고 들었다.


반면 네팔 운전자들은 경적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또한 길에서 잠시 쉴 때도 주위를 둘러싸며 관심을 넘어서 무례할 정도로 귀찮게 하는 일도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주행길이 훨씬 편안하다.


이런 네팔은 인도보다 더 가난하다고 들었다. 가난은 거리에서도 느껴질 정도이며 전기사정도 열악해 수시로 정전된다. 조금 여유있는 곳은 차량용 납축전지를 병렬 연결해 비상전원을 갖추고 있다. 또한 많은 네팔인들이 인도에서 일하고 있었고 일부 인도인은 네팔인을 대놓고 무시하는 경우를 종종 봤다. 그런데 짧지만 직접 경험해본 네팔은 인도보다 훨씬 정겹고 편안했다.


대체 무엇이 국민성의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인도는 인종도 언어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살지만 인도 특유의 느낌이 있었고, 인도의 한 개 주보다도 작은 네팔은 인도와 상당히 다르다. 단지 착각일 뿐인가? 아마 조금 더 경험해 보면 진면목을 알 수 있겠지?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