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권도윤 기자]여행(旅行)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 여행이란 ‘언어’라는 수단으로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행동에 옮기기에 앞서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의 막연한 설레임, 그리고 매 순간마다 찾아오는 선택의 고통, 그럼에도 ‘항해’를 지속하게 하는 알 수 없는 힘.


그리고 모든 여정을 마친 후 원래 있던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만든다. 아련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해지는 기분. 이 모든 과정이 여행이고, 이를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또 다시 여행을 결심한다. <편집자주>


사흘을 달려 알라하바드(Allahabad)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피로도 풀고 자전거 정비도 할 겸 숙소에 머물기로 했다.


그런데 알라하바드 시내는 수많은 인파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우따르 프라데시 주에 들어오면서 사이클릭샤(인력거)가 많이 보인다. 이전에는 오토릭샤(오토바이식 인력거)밖에 보지 못했다. 느린 사이클릭샤도 교통체증의 한 원인이긴 하지만, 이건 체증이라고 말할 수준이 아니었다.


간신히 저렴한 숙소에는 자리가 없었으며 헛간에 침대를 두고 주위에 커텐만 둘러놓은 허름한 시설도 하룻밤에 700루피(약 14,000원)를 요구한다. 이 비용을 지불하고 이런 시설에서 자느니 야영이 낫겠다 싶어 알라하바드를 떠나기로 했다.


알라하바드를 벗어나고도 사람과 차량의 행렬은 끊이지 않는다. 어두워지고 있는데 도무지 잠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인적없는 공터가 나올 때 까지 계속 가보기로 했다. 이 와중에 바퀴살은 또 부러졌다. 시간도 공간도 없어 그저 천천히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너를 모르지만 눈빛을 믿을 수 있어”


이제 깜깜해졌는데도 도로는 가득 차 있었다. 그때 오토바이 2인조가 말을 걸어왔다. 귀찮아서 대충 대답했는데 자기 집에서 자고가라고 제안한다. 위험하지 않을까 잠시 망설였으나 어차피 가야 할 방향이고 마땅한 공간도 없었기에 일단 따라가 보기로 했다. 앞장선 오토바이는 나에게 맞추어 속도를 조절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가족들이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 짐을 풀 틈도 없이 짜이와 비스켓을 내 온다. 인도에서 수면제를 탄 음료 이야기가 떠돌고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일단 씻겠다고 했다. 그러자 물을 받아주고 새 비누도 꺼내줬다. 집에 수도꼭지는 없었다.


이름은 마양크(Mayank)라고 하며 직업은 변호사라고 하는데 집은 허름하기 짝이 없다. 아직 의심이 가시지 않아서 먼저 선수치기로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손님 대접은 나의 기쁨이며 오늘밤은 네가 기쁨을 선사해 주었어”라고 말한다.


다시 한 번 혹시 내가 나쁜 사람일수도 있지 않은가 물어보자 “너 테러리스트야? 폭탄 있어? 나 해칠거야?” 하고 반문한다. 그건 아니라고 했더니 “그럼 됐어. 너를 모르지만 눈빛을 믿을 수 있어”라고 말한다. 한 마디에 모든 경계가 풀려버렸다.


짜이를 마시자 바로 식사가 이어지고 야식에 마지막 우유까지 마시고서 대접이 끝났다.


마양크와의 대화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알라하바드가 붐비던 이유는 12년마다 열리는 꿈브 멜라(Kumbh Mela)라는 힌두교 행사로 인해 순례자가 몰린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을 들으니 알라하바드를 지나치길 잘했다 싶었다. 인도 아유타국 공주였던 가야 왕비 허황옥의 이야기는 공책에 필기까지 하면서 열심히 듣는다.


그는 침대까지 내어줬다. 가족들은 바닥에서 잔다고 한다. 매트리스와 침낭이 있고 아무데서나 자도 된다고 사양했지만 막무가내다. 어쩔 수 없이 킹 사이즈 침대에서 혼자 잘 수 밖에 없었다.


하룻밤 편히 자고 길을 나서려는데 마양크의 어머니는 쌀튀김과 꿀 덩어리까지 싸 주셨다. 하나 하나가 다 빚이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진 마음의 빚이다.


어떻게든 보답해야 할 텐데. 갑자기 아우랑가바드에서 구입한 작은 코끼리상이 생각나서 선물로 드렸다. 매우 기뻐하시며 코끼리상에 입을 맞추고 성호를 긋는 듯한 동작을 하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다. 슈슈에게 구입한 코끼리는 드디어 어울리는 주인을 만난 듯 하다.


인도의 결정판 바라나시


마양크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30분가량 달리는 편도 2차선의 잘 닦인 길이 나왔다. 도로 이름은 AH(Asian Highway)-1이다. 서울-부산 구간에 있던 ‘아시안 하이웨이’라는 표지판. 그게 인도를 거치는가보다.


약간의 경사가 있지만 길이 좋으니 힘이 솟구친다. 한참을 달려 마침내 갠지스 강이 흐르는 신성한 도시, 바라나시(Varanasi)에 도착했다.


바라나시 입구부터 길은 다시 엉망이다. 길 뿐만이 아니다. 혼을 쏙 빼놓는 듯한 바라나시의 첫인상은 그동안 겪어온 인도의 안 좋은 부분만 모아놓은 듯 했다. 사람많고 복잡하고 시끄럽고 질서없고 개·소가 길을 헤집고 다니며 길에는 소똥이 널려 있다.


바라나시를 보면 인도를 다 본 거라는 말을 들은적이 있는데 벌써부터 무슨 말인지 알 듯 했다. 우선 갠지스 강변의 뱅갈리톨라(Bangali Tola) 골목으로 향했다. 이곳에 저렴한 숙소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뱅갈리톨라는 좁고 낡은 골목이었으나 전 세계 여행자들이 모두 모여있는 듯 했다. 아무래도 갠지스 강 때문에 모인게 아닐까 싶었다. 인도의 결정판 같은 바라나시는 과연 어떤 곳일까? 기대를 안고 한 숙소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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