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권도윤 기자]여행(旅行)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 여행이란 ‘언어’라는 수단으로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행동에 옮기기에 앞서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의 막연한 설레임, 그리고 매 순간마다 찾아오는 선택의 고통, 그럼에도 ‘항해’를 지속하게 하는 알 수 없는 힘.


그리고 모든 여정을 마친 후 원래 있던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만든다. 아련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해지는 기분. 이 모든 과정이 여행이고, 이를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또 다시 여행을 결심한다. <편집자주>


카주라호(Khajuraho)에 머무는 동안 인도 중북부 전역에 비가 내렸다. 이틀간 이어진 비는 장맛비처럼 굵고 지루했다.


다시 햇살이 내리쬐자 길을 나섰다. 비로 늦어진 일정을 만회하고자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런데 또다시 도로가 엉망이다. SH(State Highway)-49 얕은 개울도 나오고 공사중인 구간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진흙 늪이 나왔다. 종아리까지 잠기는 진흙에 신발이 벗겨진게 한두번이 아니다. 심지어 오토바이도 건너가기를 포기하고 돌아간다. 이 늪을 뚫고 가는건 소달구지밖에 없었다. 진흙 속에서 간신히 자전거를 끌고 벗어나 보니 체인, 브레이크 암에 쌓인 진흙으로 인해 바퀴가 굴러가지도 않았다.


한숨만 나온다. 어쩔수 없이 비상용으로 챙겨둔 생수를 소모해 진흙을 닦아내야 했다. 장염까지 걸려가면서 아꼈던 생수를 청소하는데 써야하다니…….


늪, 그리고 켄 강


가까스로 진흙 제거를 마치고 나니 이번에는 켄(Ken) 강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지도와 달리 켄강에는 다리를 찾아볼 수 없었다. 뒤에는 진흙길 앞에는 강. 돌아갈 수도 없고 어떻게든 건너야만 한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수위를 확인해 보니 가장 깊은곳은 가슴까지 물이 찬다. 짐을 나눠 강을 건넜다. 그나마 다행인건 물살에 진흙이 씻겨 내려간 것. 이럴 줄 알았으며 생수와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텐데…….


그런데 이번에는 강변의 모래가 문제였다. 순식간에 체인 틈 사이로 모래가 파고들었다. 다시 강물에 씻어내고 충분히 물기를 말려야 했다.


‘아, 왜 이런 나라에 와서 사서 고생을 하는거지?’ 이전에는 여러 문제가 생겨도 끝까지 가 보자는 생각이었으나 처음으로 여행이고 뭐고 다 때려 치우고 싶었다. 진흙탕에 강에 다리하나 없는 인도의 현실도 싫고 이런 걸 길이라고 소개한 지도도 싫었다. 육체적 피로보다 막막함에 멍하니 주저앉아 저무는 해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출발하려는데 자전거 상태가 엉망이다. 바퀴살과 나사 사이에 녹이 슬기 시작하는지 뻑뻑하고 뒷바퀴도 잘 구르지 않는다. 아무래도 바퀴축까지 진흙이 들어간 듯 하다. 도시가 나올 때 까지는 어쩔 수 없다.


북천축(北天竺) 진입


이날 힘들었던 마댜프라데시(Madhya Pradesh) 주를 지나 우따르 프라데시(Uttar Pradesh) 주에 진입했다. 이제 북천축이다. 하지만 감격스러운 마음과 달리 주 경계에는 표지석 하나 없었다. 단지 상태가 더 안좋아진 도로가 도로관리책임이 바뀐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줄 뿐이었다.


한참을 달리니 길가에 짜이가게가 보인다. 5루피(약 100원)짜리 사모사(인도식 만두)와 짜이로 허기를 채웠다. 양해를 구하고 뜰 한켠에서 전날 이슬에 젖은 텐트와 침낭을 말렸다. 마침 주인이 영어를 잘 해서 몇마디 나눌 수 있었다.


놀라운건 이름모를 시골구석임에도 주인은 한국과 ‘강’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었다.


“River를 한국에서 강이라고 부르듯이 힌디어로도 강가라 한다. 특히 갠지스(Ganges)는 신성하므로 그 자체로 강가라고 부르며, 갠지스 여신의 이름도 강가다. 신성한 강가의 물을 떠왔더니 두 달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


고인 물이 두달동안 썩지 않는다고? 믿을 수 없지만 갠지스강에 대한 호기심은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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