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권도윤 기자]여행(旅行)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 여행이란 ‘언어’라는 수단으로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행동에 옮기기에 앞서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의 막연한 설레임, 그리고 매 순간마다 찾아오는 선택의 고통, 그럼에도 ‘항해’를 지속하게 하는 알 수 없는 힘.


그리고 모든 여정을 마친 후 원래 있던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만든다. 아련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해지는 기분. 이 모든 과정이 여행이고, 이를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또 다시 여행을 결심한다. <편집자주>


기나긴 NH86과의 사투 끝에 목적지 카주라호(Khajuraho)에 들어섰다. 카주라호는 작은 마을이었으나 우리말을 할 수 있는 모든 인도인들이 모여있는 듯 했다.


식당에는 한국어 간판이 걸려 있었고 호객꾼들은 ‘꼬레아? 안뇽핫씨요?’ 하면서 붙잡는다.


카마수트라의 도시 카주라호


카주라호의 가장 큰 볼거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부사원군이다.


전설에 의하면 달의 신 찬드라(Chandra)의 아들 차드라바만(Chardravarma)이 카주라호를 만들었고 이후 그의 후손인 찬델라(Chandela) 왕조가 수많은 사원을 세웠다.


멀리서 본 서부사원군은 마치 여러개의 탑이 세워진 큰 공원처럼 보였다. 각 사원들은 여느 힌두교 사원처럼 ㄴ자 형태로 건물 끝에는 탑이 하나씩 서 있다. 이러한 탑은 시바(Shiva)신의 남근을 형상화 한 것으로 시카라(Shikhara)라고 부른다.


가까이 가 보니 사원 벽면은 수많은 조각의 집합체였다. 이제는 친숙해진 코끼리 신 가네샤(Ganesha)도 당연히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인도 신화에 따르면 시바신은 자신의 아들인줄 모르고 가네샤의 목을 베었다고 한다. 가네샤의 정체를 알게 된 시바는 지나가던 코끼리의 목을 떼어서 가네샤에게 붙여줬다고 한다. 죽었다가 살아난 가네샤는 행운을 상징하며 매우 인기있는 신이 됐다. 하지만 역학적 구조 탓인지 가네샤 조각은 코가 성한게 드물다.


무엇보다 서부사원군을 유명하게 만든건 바로 카마수트라(Kamasutra) 조각이다. 미투나(Mithuna)라고 부르는 이 조각은 성행위를 묘사한 것으로 칸다리야 마하데브(Kandariya Mahadev) 사원의 경우 무려 872개의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다.


신전에 이런 조각을 남긴 이유는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해 지기 위해 남녀간의 합일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런 시선에서 보면 카마수트라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일종의 수행이 되어버린다. 다만 마하트마 간디는 이 사원을 모두 때려부수려 했다고 한다.


저 많은 상을 조각한 사람들도, 또 수많은 종교와 수많은 지도자들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조각들이 대단하다는 등 여러 생각에 빠지는 찰나 어떤 인도여인이 말을 걸어온다.


‘무슨 일이지? 설마 같이 해탈하자는 건 아니겠지?’ 잠시 엉뚱한 생각을 했으나, 단지 삭발한 머리모양이 독특하다면서 종교를 물어 본 것 뿐이다.


카주라호에서 유일하게 태양신 수르야(Surya)를 모시고 있는 치트라굽타(Chitragupta) 사원도 눈길을 끌었다. 사원 주변에는 비계를 설치하고 암모니아 향이 강하게 나는 용액으로 조각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닦고 있었다.


용액은 상당히 독한 것 같은데 조각이 많이 손상될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선조들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인상적이었고 저 노력 덕분에 깨끗한 황토색 사원을 볼 수 있기에 감사할 따름이다. 물론 이 중에도 비계 뒤에 걸터앉아 입으로만 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직도 ‘살아있는’ 사원


각 사원 내부는 출입이 금지된 곳도 있었지만 일부는 내부까지 공개되어 있었다. 공개된 사원 내부는 수많은 손길로 인해 석상이 마치 청동상처럼 변해 있었다.


사원 내부는 상당히 습하다. 특히 서쪽 벽면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는데 아마 내·외부 온도차에 의한 결로현상으로 보인다. 결로현상은 서북쪽 끝단의 치트라굽타 사원이 가장 심해 카마수트라 조각이 땀을 흘리고 있다고 느낄 정도였다. 일부 사원에는 간단한 배수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더욱 신기했다. 혹시 설계 과정부터 결로현상을 예측한 것일까? 그렇다면 차라리 통풍을 위해 창을 내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더욱 놀라운 것은 이곳이 ‘살아있는’ 사원이라는 것이다. 사원 내부에서 예를 표하고 일종의 종교의식인 뿌자(Puja)를 수행하는 모습도 흔히 보였다. 설마 이 사람들, 21세기에 카마수트라를 수행의 방법으로 실시하는건 아니겠지?


더 넓은 동부 사원군은 자전거를 통해 돌아보았다. 마침 므니시라는 친구를 통해 힌두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 중 가장 인상깊은건 영어 단어 ‘GOD’이 힌두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창조의 신(Generator) 브라흐마 ▲유지의 신(Operator) 비슈누 ▲파괴의 신(Destroyer) 시바를 합쳐 GOD가 신을 뜻하게 되었고 기독교의 삼위일체 개념 역시 힌두교적 색채라는 것이다.


힌두교는 석가모니도 비슈누의 화신이라는 등 모든 종교에 다 관여하고 있으므로 그저 웃어 넘겼지만 그럴듯하다.


카마수트라가 원인?


반면 색다른 이야기도 있었다. 카주라호 사원의 카마수트라 조각이 거대한 음기를 내뿜고 있어 사고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토바이를 타고 쫒아와 시비걸던 무리, 음란 동영상을 틀어주면서 도발하던 녀석 등 유독 카주라호 근처에서 불량한 녀석들을 많이 만났다. 당시 인도는 연속적으로 일어다던 성폭행으로 떠들썩했으며 길에는 ‘No, Rape’라고 씌인 현수막도 종종 보였다.


어떻게 보면 웃어 넘길 이야기는 아니다. 교육·여성의 지위와 인식·성비 불균형 등 사회 체계문제를 조각탓으로 돌리려 하다니. 분명한건 현대인의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카마수트라를 접하며 어떤 느낌을 받고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는가는 온전히 개인의 몫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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