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권도윤 기자]여행(旅行)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 여행이란 ‘언어’라는 수단으로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행동에 옮기기에 앞서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의 막연한 설레임, 그리고 매 순간마다 찾아오는 선택의 고통, 그럼에도 ‘항해’를 지속하게 하는 알 수 없는 힘.


그리고 모든 여정을 마친 후 원래 있던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만든다. 아련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해지는 기분. 이 모든 과정이 여행이고, 이를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또 다시 여행을 결심한다. <편집자주>


산치(Sanchi)를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인도르-보빨 구간 이후 편도 2차선으로 잘 닦인 도로를 찾아볼 수 없었다. 산치를 벗어나자 비포장도로가 나타났다. 간헐적이던 비포장도로는 언제부턴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바로 NH86. 혹시 길을 잘못든게 아닐까 싶어 수차례 확인해보았으나 위치는 맞다. 아무리 봐도 이건 National Highway가 아니라 Never Highway다.


그저 비포장도로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대체 도로에서 무슨 짓을 했나 싶을 정도로 끊임없이 등장하는 구덩이와 자갈길. 뒷바퀴 상태가 불안해 도로 파손이 심한 구간은 짐을 둘러메고 자전거를 끌고 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하루 종일 도로위에 있었으나 불과 54km밖에 움직이지 못했다. 갸라스뿌르(Gyaraspur)라는 마을 근처에서 하루를 정리했다.


이날은 별이 유독 많이 보였고 인도에서 처음으로 북극성을 발견했다. 위도 때문인지 계절 탓인지 모르겠으나 그동안 북쪽 별을 보지 못했다. 이날도 작은곰자리 일부만 보였다.


비포장도로위의 사투


별 헤는 밤을 보낸 후 다시 비포장도로를 달린다. 앞으로 북동쪽 인도 종심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데 대체 이런 길이 얼마나 이어지려나?


가장 골치아픈건 흙먼지다. 차가 지날때마다 숨쉬기도 힘든 먼지폭풍이 일어난다. 신속하게 이탈하고 싶지만 10km/h 내기도 힘들었다. 수건으로 코와 입을 동여맬 수 밖에 없었다. 자전거의 체인과 구동계는 이미 흙으로 가득차 뻑뻑하다. 나중에는 멀리서 보이는 먼지규모만 봐도 도로상태와 차종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사가르(Sagar)라는 도시가 나타나면서 길이 조금은 나아졌다. 이곳은 아름다운 호수를 낀 도시였다. 멀리서 볼 때는 한폭의 그림 같았으나 가까이서 보면 역시 쓰레기장이다.


유독 군인들이 많이 보였고 군사학교(Public Army School)도 있던 사가르를 벗어나기 무섭게 다시 도로상태는 엉망이 되었다. 사가르에 정예 병력이 있어도 병력수송과 병참이 제한된다면 적절한 대응이 힘들 것이다. 핵개발까지 하는 나라에서 도대체 왜 도로정비를 안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덧 날이 저문다. 평소 같으면 잠자리를 준비할 시간이지만 조금이라도 더 이동해야겠다는 생각에 야간 주행을 감행했다. 그러나 가로등도 없는 도로 곳곳에 웅덩이가 파여 있고 차가 쌩쌩 달려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길 건너편 공사장이 보였고 거기서 쉬어가기로 했다.


이윽고 끝이 보이는 NH86


마침 설날이다. 미리 구입해 둔 성냥을 이용해 조촐한 캠프파이어를 가졌다. 역시 인도에서 혼자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은 밤 뿐이다. 1루피(약 20원)짜리 성냥 두 갑을 투자했으나 매우 만족스러웠다.


다음날에도 도로상태는 변함이 없다. 비포장도로와 외로운 투쟁 끝에 산 하나를 막 벗어나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잠시 후 관광버스 한 대가 섰다. 물론 휴게소는 아니다. 미국, 유럽, 호주 관광객들이 이것저것 물어보며 격려를 해 줬다. 어떤 말보다 더 힘이 되는건 조금만 더 가면 힘든길이 끝난다는 것이다.


얼마 지나자 정말로 번듯하게 포장된 도로가 나타났다. 좋은 도로는 아니지만 그동안 지나온 길에 비하면 낙원이 따로 없었다. 사흘간 최악의 도로에서 해메다 보니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포장도로가 참 고맙다. 인도는 별거 아닌일에도 감사하는 법을 깨우치게 만드는 나라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NH86을 찾아봤다. 도로상에 고원과 작은 산, 웅덩이가 무수한 이 길은 ‘디스커버리 채널’의 ‘세계에서 가장 험한 차로(World's Toughest Trucker)’에 첫 번째로 소개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인들은 이 길을 회피하기 위해 헬리콥터 이용을 선호한다는 설명에서 높은 분들이 도로를 정비하지 않은 까닭이 느껴져 쓴웃음이 나왔다.


자칭 ‘깡패’와 대치


그래도 포장 도로를 만나니 적토마를 탄 관운장 마냥 거칠게 없다. 마지막 한 시간을 전력질주했다. 텐트를 치고 막 잠들려는 찰나 누군가 찾아왔다. 막대기를 든, 자칭 ‘깡패’라는 녀석이 다짜고짜 5루피(약 100원)를 요구한다.


거절하자 막대기로 후려치려 한다. 막대기를 빼앗아 부러뜨렸다. 돌려차기를 보여주면서 위협하자 동료를 부르겠다며 휘파람을 분다.


골치아프게 되었다. 5루피 줄 걸 그랬나? 100원을 삥뜯기는것도 창피하지만 잔돈도 없다. 95루피를 거슬러 줄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버틸 수 밖에 없다.


녀석을 무시하고 텐트로 들어왔다. ‘과연 몇명이 올까? 인도인 평균 체격이라면 두명까지는 어떻게 해 볼만 한데…….’ 태연한 척 텐트에 누워 있었지만 손은 스패너와 각목에 가 있다. 만약을 대비해 주머니에 칼도 챙겨놓았다. 밖에서는 녀석이 계속 소리지르고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굉음에 놀라 밖을 살펴보니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리고 있었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시계를 보니 4시간이 지나 있었다. 단순한 협박이었는지 비 때문에 안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아무일도 없었다.


‘대체 이 상황에서 잠들어 버린 나는 뭐하는 녀석일까?’ 어이없는 웃음만 나올 뿐이다. 그래도 비가 내리니 먼지는 덜 나겠지? 일단 다시 잠을 청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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