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권도윤 기자]여행(旅行)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 여행이란 ‘언어’라는 수단으로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행동에 옮기기에 앞서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의 막연한 설레임, 그리고 매 순간마다 찾아오는 선택의 고통, 그럼에도 ‘항해’를 지속하게 하는 알 수 없는 힘.


그리고 모든 여정을 마친 후 원래 있던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만든다. 아련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해지는 기분. 이 모든 과정이 여행이고, 이를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또 다시 여행을 결심한다. <편집자주>


들판에서 보는 동트는 모습은 장관이다. 좋은 기분으로 막 출발하려는 찰나 바퀴살 하나가 또 부러졌다. 나름대로 요령이 생겼는지 정비 시간이 짧아졌다.


도로 상태는 여전히 엉망이고 극성스레 경적을 울리는 차는 항상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이제 역주행은 놀랍지도 않다.


중천축의 관문, 마댜 프라데시 진입


한참 지나자 ‘Inter State Integration Check Post’라고 씌인 큰 표지판이 서 있었다. 도시에 진입할때도 이런건 없었는데?


지도를 확인해 보니 여기가 마하라슈트라(Maharashtra) 주를 벗어나 마댜 프라데시(Madhya Pradesh)주에 진입하는 길목이었다. 서천축(西天竺)을 지나 중천축(中天竺) 들어서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주행거리도 벌써 1,000km가 넘었다. 서울-부산 두배 거리를 달렸는데도 주 하나를 넘었을 뿐이라니 이 나라의 장대함이 새삼 느껴졌다.


국경, 아니 주경은 별게 없었지만 괜히 ‘주’라는 이름으로 나눈 것은 아닌가보다. 마댜 프라데시의 풍경은 많이 달라져 있어다. ‘누런’ 황무지밖에 없었던 마하라슈트라에 비해 ‘초록’ 들판도 보이고 건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수량이 풍부한 강도 있다. 무엇보다 덜 더운 것이 가장 좋다.


반면, 푸른 들판을 보는건 좋지만 그동안 줄곧 빈 밭에서 잤는데 텐트칠 곳이 줄어든다는 생각에 약간의 우려도 생긴다.


마침 한 자전거 가게를 발견했다. 이미 수없이 지나왔기에 큰 기대는 없다. 그런데 대충 크기가 맞아보이는 바퀴살이 있었다. 하나에 1루피(약 20원). 넉넉하게 20개를 챙겼다.


바퀴살을 구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바퀴살이 부러졌다. 살펴보니 아침에 부러졌던 두번째 녀석이다. 더 이상 정비도 불가능하다. 바퀴살은 마치 ‘이제 내 소임은 끝났소’라고 말하는 듯 하다.


적시에 예비 부품을 구입해서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새 바퀴살은 순정품에 비하면 엿가락처럼 휘어진다. 부러지지 않더라도 도저히 힘을 못버틸 것 같다. 바퀴살을 바꾸는것도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전용 공구가 없어 정상적으로 끼워넣을 수가 없다.


고민 끝에 새 바퀴살을 모기향처럼 돌돌 말아넣기로 했다. 없는 것 보다는 낫겠지? 그러자 새 바퀴살이 잘 휜다는게 장점이 되어버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내 옆에 몰려들어 또 뭐라뭐라 중얼거리고 있다. 가뜩이나 작업도 어려운데 정말 신경쓰인다. “제발, 도와줄 거 아니면, 가시던 길 가세요.”


마침내 설치에 성공했다. 길이가 맞는 줄 알았는데 조금 길다. 끝까지 밀어넣었더니 ‘피식’ 소리가 난다. ‘조금’ 길었던 끝부분이 튜브를 찢은 것이다. ‘아, 산 넘어 산이구나.’


튜브 펑크는 때웠는데 ‘조금’ 긴 바퀴살을 어쩐다? 막막한 마음에 멍하니 주저앉아 있었다. 그때 한 친구가 다가왔다.


아재같은 아제와의 만남


자신을 ‘아제’라고 소개하며 지나가다가 나를 보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는 기계공학을 전공했다면서 자기가 고쳐보겠다고 한다. ‘기계공학이고 뭐고 맨주먹으로 어쩔테냐?’


그런데 그의 손에는 펜치가 들려있었다. 아니 이걸 갖고 다니지는 않을텐데? 설마 나 때문에 집에서 가져온건가?


아제의 도움으로 어느정도 수리가 끝났다. 길을 떠나려는데 아제가 집에 들렀다 가라고 잡는다. 바쁘다고 거절해도 이미 부모님께 말씀드렸다는 것이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어 마음이 급했지만 잠시 들러가기로 했다.


오토바이로 앞장선 아제를 따라 가 보니 동네 주민들이 다 구경나와 있었다. 언제 소문이 퍼진걸까? 마을 주민들이 마치 도열하듯 길가에 쫙 서있으니 괜히 기분이 좋다.


아제의 집에는 조부모님, 부모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짜이(인도식 차)와 비스킷을 대접받았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길을 떠나겠다고 했다. 아제는 어두워지고 있으니 하룻밤 자고 가라고 했으나 좁은 집에 많은 가족들을 볼 때 더 이상 폐를 끼칠 수 없었다.


아제는 저렴한 숙소가 있다면서 15km가량 떨어진 부르한푸르(Burhanpur)라는 곳을 추천했다. 더 멀리 가기에는 위험하다면서 꼭 거기 머물라고 당부한다. 아니 그래도 불안했는지 배웅에 나섰다. 2km이상 따라온 아제는 수차례 고맙고 괜찮다고 말하고서야 돌아섰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부르한푸르에 도착했다. 아제가 추천한 숙소는 1박에 300루피(약 6,000원)으로 마하라슈트라 주의 반값이었다.


동네 사투리로 아저씨(삼촌)를 ‘아재’라고 한다. 나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아제는 진짜 아재처럼 친근하게 대해줬다. 참 고마운 친구 아제. 그가 아니면 아마 바퀴를 굴리지도 못했겠지? 힘들 때도 있지만 이런 고마운 친구들로 인해 다시 달릴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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