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권도윤 기자]여행(旅行)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 여행이란 ‘언어’라는 수단으로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행동에 옮기기에 앞서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의 막연한 설레임, 그리고 매 순간마다 찾아오는 선택의 고통, 그럼에도 ‘항해’를 지속하게 하는 알 수 없는 힘.


그리고 모든 여정을 마친 후 원래 있던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만든다. 아련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해지는 기분. 이 모든 과정이 여행이고, 이를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또 다시 여행을 결심한다. <편집자주>


장염 덕분에 계획보다 일정이 늦어졌다. 서둘러 보지만 생각보다 발걸음이 느리다. 아잔타(Ajanta)를 벗어나기가 무섭게 열악해진 도로 상태 때문이었다. 어떤 구간은 마치 도로에 아스팔트를 살포만 하고 롤러로 다지지 않은 듯하다.


울퉁불퉁한 도로, 시끄러운 경적소리와 정반대로 주위 풍경은 평온하다. 도로 주위로 나무가 즐비한 풍경은 더 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경치에 반해 잠시 쉬어가려는데 조금 떨어진 한 농장에서 사람들이 손을 흔든다.


나도 손을 흔들며 인사했으나 마치 이리 오라는 듯 손짓한다. 인도인들의 지나친 호기심에 피곤한 적이 많았기에 애써 외면해 보지만 소용없었다. 농장에 들어가니 바로 물과 음식을 대접한다. 어릴 때 많이 먹었던 쌀 튀김과 토마토, 이름모를 채소다. 장염으로 고생한 생각에 물은 마시지 않았다.


자우더리 씨의 물 한컵


나를 부른 사람은 자우더리(Jaudary) 씨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대화는 가능했다. 자우더리 씨는 귀찮을 정도로 시덥잖은 질문을 쏟아내고 자전거 기어를 건드리던 다른 인도인들과는 달리 편안하게 대해주었다. 아이들도 내 자전거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다시 길을 나서려는데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잡는다. 염치불구하고 못이기는 척 조금 더 머무르기로 했다.


자우더리 씨 가족을 찬찬히 살펴보니 손자는 할아버지 앞에 재롱을 부리고 아들은 아버지를 도와 장작이나 나뭇가지 등을 모아온다. 누나는 어린 동생을 돌보고 있으며 할머니와 며느리는 짜빠티(밀가루를 얇게 편서 구워낸 인도식 빵)를 만들고 있다.


가스렌지 하나 없이 벽돌로 화덕을 쌓고 마른 나무를 때면서도 즐거운 가족. 이들에게 ‘고부갈등’은 먼 나라 한국의 드라마에서만 존재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요리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슬슬 지루해지려는 것을 눈치챘는지 집 뒤쪽으로 데리고 간다. 산더미처럼 쌓인 돌무더기 사이로 들어가니 20m는 될 듯한 굉장히 깊은 우물이 있었다.


이제야 작은 의문 하나가 풀렸다. 그동안 달리면서 만난 강은 모조리 말라있었다. 이런 건기에 수도가 들어오지 않는 집은 물을 어디서 구하는지 궁금했었다. 물을 찾기 위해 파고 또 파 들어간게 이렇게 깊어졌구나.


그동안 길거리 간이 음식점에서는 그다지 깨끗해 보이지 않는 큰 플라스틱 물통에서 언제 떠놓았는지 모를 물을 제공했다. 한번 고생한 이후 물을 믿을 수 없어 생수를 사먹기로 했었다.
자우더리 씨가 준 물 한컵. 혹시 또 아플까봐 입만 갖다대고 내려놨었는데 이건 15루피(약 300원)짜리 생수보다 훨씬 귀한 물이었구나.


갑자기 내 자신이 부끄럽다. ‘난 생수 아니면 못마실 만큼 청결하고 잘난 놈인가?’ 권하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약도 남아 있다. 다 사람 먹는 물인데, 마시고 마시다 보면 면역력이 생기겠지…….’


갑자기 물을 마구 들이키니 놀란 표정이다. 많이 목마른줄 알고 물을 더준다. 한컵 더 마셨다. 미지근했지만 물맛은 참 좋았다. 배도 아프지 않았다.


농장에서 염소도 보고 밭도 둘러보니 마침내 식사가 완성되었다. 손님 왔다고 특식을 준비했는지 진수성찬이 마련되어있었다. 접시가 빌 틈이 없이 음식을 계속 채워준다. 더 이상 배불러서 못 먹을 정도가 되니 벌써 15시가 넘어 있었다. 떠나기가 아쉽지만 이제 가야한다.


이들은 그냥 멀리서 본 나에게 아무 조건없이 베풀어주었다. 나도 뭔가를 주고 싶었지만 마땅한게 없다. 종이 한 장에 고맙다는 인사와 연락처를 적어 주고 돌아섰다. 혹시 연락이 이어질까? 이 고마운 만남이 나에게 잊지못할 기억이듯 이들도 말도 잘 안통하던 외국인과의 만남이 좋은 추억이 될까? 언젠가 이 아이들은 한국을 찾을 수도 있겠지?


자우더리 가족을 되뇌며


자우더리 씨의 집을 나서니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다. 약 3시간 전에도 나는 이 길에 서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목마르지 않고 배고프지 않은 것으로 보아 꿈은 아니다.


달리는 도중 계속 자우더리 씨의 친근한 미소와 화목한 가족의 모습이 떠올랐다. 문득 부모님이 떠올라 국제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가 받으셨다. 대화는 길지 않다. 건강히 잘 지낸다는 안부만 전하고 끊었다.


조금 더 달려 보드왓(Bodwad)이라는 곳 근처에 괜찮은 공간을 발견했다. 아직 해가지지 않았지만 조금 일찍 숙영을 준비했다. 더 움직이기보다 오늘 일을 되새겨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주위에 터진 수도관이 있었서 샤워까지 해결하며 가장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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