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가면’ 쓴 공격‥경영권 방어 ‘속수무책’

[스페셜경제=조경희 기자]오는 17일로 예정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나라 기업 또한 외국 기업처럼 ‘헤지펀드’를 막을 방패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미 론스타를 통해 엄청난 국부유출을 경험한 바 있는 우리나라 기업으로서 벌처펀드 엘리엇의 재계 1위 삼성그룹에 대한 공격은 더 이상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특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을 한다고 하더라도 추가로 ISD 등을 이유로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등 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어 우리나라 기업 또한 외국 기업처럼 기존 주주에게 싼 가격에 신주매입권한을 주는 포이즌필, 기업 주요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할 수 있는 황금주, 차등의결권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주주 지분 낮고 경영권 보호장치 부족해 ‘먹잇감’
주주가치 내세우지만 ‘포퓰리즘’ 악용 ‘이익’ 극대화


행동주의 헤지펀드 (Activism hedge fund)의 공격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경악할만한 사건이었던 투기 자본은 ‘론스타’로 기억되고 있다. 론스타는 국내에서 가장 큰 국부유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론스타는 지난 2003년 1700억원에 인수한 극동건설을 2008년 웅진홀딩스에 6600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유상감조와 배당금으로 챙긴 금액만 222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서는 아직도 론스타와 우리 정부 사이에서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당시 예상했던 대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2차 심리가 끝난 상태며 내년 1월 최종 변론이 진행된다.

론스타는 2조1716억원을 투자해 외환은행을 인수한 이후 2006년부터 2010년까지 평균 45%의 배당성향을 유지하면서 1조2000억원의 배당금을 손에 넣었다. 이후 하나금융지주에 외환은행을 총 3조9157억원에 매각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추가로 론스타는 외환은행 인수 4년만에 HSBC(홍콩상하이은행뱅크)와 5조9376억원대의 매각계약을 체결했지만 한국정부가 승인결정을 내주지 않아 HSBC가 인수를 포기해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송 금액 또한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다. 론스타는 지난 2012년 11월 ICSID에 약 4조8000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가 최근 소송액을 약 5조1000억원으로 올리는 등 사모펀드의 전형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다.


‘먹튀’ 막을 장치 全無


문제는 론스타의 악몽이 다시 한 번 재연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나 엘리엇이 속한 벌처펀드는 사모펀드 보다 더욱 악명이 높다. 엘리엇이 재계 1위 삼성그룹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 또 다른 공격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나라 기업의 경우 삼성을 포함한 대부분의 기업이 외국인 지분이 많고 또 경영권 보호장치가 사실상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저금리·저성장 국면에서 수익률을 높이는 데 한계를 느낀 행동주의들이 주가가 저평가돼 있는 한국 시장으로 최근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규모 또한 더 커지고 있다.

헤지펀드리서치 등에 따르면 주식을 대거 매수한 뒤 경영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헤지펀드의 운용자산 규모는 2009년 362억 달러에서 지난해(3분기 기준) 1121억 달러로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되팔고→시세차익 노려


벌처펀드의 대표 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엘리엇은 벌처펀드 중에서도 악명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벌처펀드는 죽은 동물의 고기를 깨끗이 먹어치우는 대머리독수리(Vulture)에서 그 이름이 비롯됐다.

지난 1980년 미국의 금융위기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출연했으며, 현재 미국 및 영국 등에서는 민간 주도로 기업 구조조정을 할 만큼 보편화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뮤추얼 펀드가 한 회사의 유가증권만을 일정 한도 내에서 살 수 있는 것과 달리, 벌처펀드는 유가증권, 자산 등 매입 대상이나 수량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또 일반적인 주식 채권뿐만이 아닌 파생상품 등 고위험 고수익 상품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투자자 모집 방식도 다르다. 뮤추얼펀드가 다수의 소액투자자를 대상으로 공개모집 한다면, 헤지펀드는 소수의 고액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모펀드다. 이러한 헤지펀드 중에서도 벌처펀드는 가격이 떨어진 상품이나 종목을 집중적으로 사들여 나중에 되팔아 이득을 올리는 펀드를 일컫는다.

이들은 겉으로는 주주가치나 합병의 정당성 등 ‘포퓰리즘’ 이슈를 이용하지만 실제로는 먹튀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미 몇 차례 공격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론스타 ‘논란’이 큰 이후로 SK그룹이 소버린을 만나 엄청난 피해를 입은 사례를 이미 가지고 있다.

지난 2003년 4월 영국계 소버린자산운용이 (주)SK 지분 14.99%를 확보한 뒤 경영권 분쟁을 시작한 것. 소버린은 2004년 다음해 주주총회에서 SK그룹과의 표 대결에서 패배했지만 2005년 7월 지분 매각에 따른 차익 등으로 1조원 이상을 챙긴 뒤 였다.

칼 아이칸도 대표적인 공격 사례다. 칼 아이칸은 미국 월가의 ‘기업 사냥꾼’으로 불리며, 지난 2006년 2월 스틸파트너스와 연합해 KT&G 지분 6.6%를 3351억 원에 매입했다. 이후 자산 매각, 신임 이사 선임 등 끈질긴 경영간섭을 이어나갔으며 12월 1482억 원의 수익을 거둔 채 그해 12월 손을 털고 나간 사례가 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오너들의 경영권 방어의 목적 보다 국부유출 차원에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KT&G가 칼 아이칸의 공격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쏟아부은 돈은 무려 2조8000억원이라는 점에서 최근 삼성그룹에 대한 엘리엇의 ‘공격’이 또 다른 국부유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삼성뿐만 아니라 현대차, 롯데그룹 등 타 기업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이미 아르헨티나를 디폴트 선언에 이르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소니, 애플 등 이미 전 세계적인 기업들이 엘리엇에게 항복한 역사가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반드시 경영권 방어를 위한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령, 구글이 2004년 상장하면서 1주당 1개 의결권이 있는 ‘Class A’ 주식과 1주당 10개의 의결권을 인정하는 ‘Class B’ 주식을 발행한 사례를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구글 경영진은 Class B 주식의 92.5%를 보유하면서 구글 의결권의 60.1%를 행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적대적인 사모펀드의 공격에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기존 주주에게 싼 가격에 신주매입권한을 주는 ‘포이즌필’, 기업 주요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특별주식 ‘황금주’, 경영권을 가진 주주에게 보통주 보다 많은 의결권을 부여할 수 있는 ‘차등의결권’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이 가늠되는 오는 17일, 재계 1위 삼성그룹을 겨낭한 엘리엇이 어떠한 발톱을 드러낼지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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