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권도윤 기자]여행(旅行)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 여행이란 ‘언어’라는 수단으로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행동에 옮기기에 앞서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의 막연한 설레임, 그리고 매 순간마다 찾아오는 선택의 고통, 그럼에도 ‘항해’를 지속하게 하는 알 수 없는 힘.


그리고 모든 여정을 마친 후 원래 있던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만든다. 아련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해지는 기분. 이 모든 과정이 여행이고, 이를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또 다시 여행을 결심한다. <편집자주>


잠자리에 든지 두어시간 가량 지났을까? 몸이 으슬으슬 떨린다. 너무 추워서 모든 옷가지를 껴입어도 계속 춥고 식은땀이 흐르고 배까지 아파온다. 아무래도 몸살인가보다. 잠깐 자다가 깨기를 반복하니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떠 있다.


아무리 아파도 길 위에서 계속 버틸수는 없다. 빨리 도시로 가야한다는 생각에 힘겹게 짐을 꾸린다.


인도 입성 신고식, 세균성 장염


몸살기운은 많이 가라앉았으나 복통이 심해 가만히 있는것도 힘들다. 엎친데 덥친격으로 설사까지 이어진다. 아차 싶었다. 인도 여행자들의 90% 이상이 세균성장염을 경험한다던 말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줄곧 허름한 간이 휴게소에서 위생상태를 보장할 수 없는 물을 마셔왔다. 그나마 다행인건 이곳이 공터와 화장실의 구분이 없는 인도다. 수시로 밀려오는 배변감은 수풀 사이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간신히 아잔타 근처에 도착하니 녹초가 되었다. 어디든 들어가 쉬고 싶은데 호텔마다 방이 없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 지역은 식당에도 Hotel이라고 표기한다. Lodge 표시가 없는 허름한 호텔은 식당일 뿐이다.


배를 움켜쥐고 방 없는 호텔 앞에 널부러져 있는데 호텔주인이 ‘꼬레아?’ 하더니 갑자기 휴대전화를 들이민다. 엉겁결에 받아보니 우리말이 들리는게 아닌가? 얼마 후 우리말을 유창하게 말하는 인도인이 나타났다.


자신을 슈슈라고 소개한 그는 15km 떨어진 숙소를 알려줬다. 자전거에 실려가다시피 했으나 길이 내리막이라 수월했다. 숙소에 도착하자 바로 침대에 쓰러져버렸다. 숙소에서도 수난은 계속되었다. 잠들만 하면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악몽같은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슈슈가 마을 의사에게 데려갔다. 시장 한켠에 위치한 천막에 언제 빨았는지 모를 누런 가운을 걸친 의사가 있었다. 50루피(약 1,000원)에 처방전을 받고 120루피(약 2,400원)짜리 약을 샀다. 약을 먹고 반나절가량 쉬니 한결 낫다. 15루피(약 300원)짜리 생수값 아끼려다가 대체 이게 무슨꼴인가.


다행히 오후에는 몸이 더 좋아졌다. 슈슈는 차도 몇잔 사주더니 아잔타 석굴로 데려다줬다. 고생끝에 도착한 아잔타 석굴은 엘로라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프레스코화가 인상적인 아잔타 석굴


연대적으로는 아잔타가 더 앞선다. 엘로라는 산을 깎아 만들었다면, 아잔타는 U자 모양의 벼랑을 깎아서 만들었다. 엘로라에는 불교·힌두교·자이나교 석굴이 공존하지만 아잔타 석굴은 오직 불교석굴군이다. 조각뿐인 엘로라에 비해 아잔타에는 섬세한 조각도 많았으나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로 더 유명한 곳이다.


특히 보디삿뜨와 빠드마빠니(Bodhisattva Padmapani) 벽화는 익숙하다. 언젠가 교과서에서 본것같다.


마치 서까래같은 천장을 만들어놓은 굴도 있다. 물론 돌을 파들어 간 것이니 천장을 받치는 목적 대신 순전히 장식 용도일 것이다. 보트 뒤집어 놓은 것 같기도 하다. 여기도 부처님은 의자에 앉아있다.


바닥에 밭고랑같은 홈이 파져있던 미완성 석굴도 흥미로웠다. 홈을 넓히다 보면 감춰져 있던 석굴이 나오나보다. 미켈란젤로였나? 조각은 원래 돌 안에 숨어있던 형상을 드러내는 작업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러나 사실 아잔타의 감동은 엘로라에 미치지 못했다. 까일라사 사원을 먼저 보았기 때문일까? 석굴도 더 이상 큰 감흥으로 다가오지 않았고 많이 벗겨지고 변색된 프레스코화는 알아보기도 쉽지 않았다. 아마 지어진 순서대로 아잔타를 먼저 보고 엘로라를 봤다면 또 다른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슈슈의 정체는


석굴 구경을 마치고 다시 슈슈를 찾았다. 한국에 1개월 있었다는 슈슈는 글자를 읽지는 못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우리말을 잘한다. 아잔타 석굴 앞에서 작은 기념품점을 운영하는 슈슈는 차를 사주며 많은 기념품을 보여줬다.


아플때 베풀어준 친절을 생각하면 여러 개 사고 싶었지만 바퀴살이 부러진 자전거에 짐을 추가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식사를 대접하거나 아니면 돈을 직접 주겠다고 했는데 그는 한사코 거절한다. 그에 대한 고마움으로 각각 200루피에 작은 코끼리상과 향로를 샀다. 사실 쓸모없는 물건이다. 향로는 너무 작아서 모기향 받침으로 쓰기도 힘들다.


슈슈와 헤어지고 한 노점상에서 동일한 향로를 발견했다. 가격은 60루피. 인도 노점상 가격은 절반 이하로도 절충 가능한데 설마 슈슈는 사기를 친것가?


그래 봤자 차익은 채 7,000원이 안된다. 식사를 하거나 차라리 돈을 받는게 더 나았을텐데 불로소득은 싫었던 것일까?


아마 재질이 다르겠지? 사기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뭔지 모를 이 찝찝함은 뭘까? 병원까지 데려다 주고 갖은 친절을 베풀었던 그는 단지 장사꾼일 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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