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권도윤 기자]여행(旅行)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 여행이란 ‘언어’라는 수단으로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행동에 옮기기에 앞서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의 막연한 설레임, 그리고 매 순간마다 찾아오는 선택의 고통, 그럼에도 ‘항해’를 지속하게 하는 알 수 없는 힘.


그리고 모든 여정을 마친 후 원래 있던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만든다. 아련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해지는 기분. 이 모든 과정이 여행이고, 이를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또 다시 여행을 결심한다. <편집자주>


아우랑가바드(Aurangabad)에 짐을 풀어놓고 약 30km 떨어진 엘로라(Ellora)로 향했다. 사실 이곳에 온 이유는 엘로라와 아잔타 석굴을 보기 위해서였다.


엘로라 석굴군(Ellora Caves)은 7세기부터 500년간 만들어졌다고 한다. 입구 앞은 각종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로 가득했다. 입장료는 외국인 250루피(약 5,000원)인데 인도인에게는 10루피만 받는다.


멀리서 본 엘로라는 마치 큰 언덕처럼 보였다. 사실 조그만 터널을 생각했는데 직접 본 엘로라 석굴은 바위덩어리를 파내어 만든 인조 석굴이었다. 그것도 거대한 석굴 30여개가 자리잡고 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이 석굴은 하나하나가 사원으로 시대순으로 불교→힌두교→자이나교 순으로 이어졌다.


힌두교 석굴은 대체로 ㅂ자 구조로 석굴 앞에 조그만 뜰이 있고 안에 방이 있는다. 힌두교 석굴에는 초현실적이고 역동적인 조각들이 가득했다. 놀랍게 창과 창살마저 바위 한덩어리였다.


반면 불교 사원은 힌두교에 비해 대체로 더 웅장하고 잘 정돈된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말도 안되는 건물들이다. 다이너마이트도 없던 시절 석수의 망치와 정만으로 저 넓은 굴을 파내었다니.


평지에 건물을 세우기도 쉽지 않은데 바위를 파내서 건물을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단지 종교적 열정에서 기인한 것일까? 군사요새로나 쓰일만한 위치에 대체 왜 석굴을 만들어야 했을까? 대체 종교는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생각하며 관람을 이어갔다.


문명교류의 현장에서


석굴암과 흡사한 굴도 보인다. 아니 석굴암이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시기적으로도 엘로라 불교석굴이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넘어왔다면 통일신라 후반쯤 될 것이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헬레니즘 문명이 인도에서 간다라 미술로 발전했다던데 문명교류의 현장에 서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다.


석굴암과 차이를 찾자면 엘로라의 불상은 대체로 가부좌를 틀기보다는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 더 많다. 아마 이것도 입식에서 좌식으로 넘어가는 단계가 반영된 것이리라.


불교 석굴 끝으로 가면 미완성 석굴이 보인다. 이 굴 공사중에 불교가 쇠퇴하면서 힌두교 사원 건축이 시작되었다.


다음은 자이나교 석굴이다. 불교석굴의 엄숙함과 정돈됨·힌두석굴의 자유로움은 자이나교 석굴에서는 매우 축소된 규모와 더욱 세심해진 묘사로 나타난다. 규모가 작아진건 어쩌면 이제 더 이상 큰 굴을 만들 여력이 없었는지도 모를일이다.


마지막으로 엘로라 석굴군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까일라사 사원(Kailasa Temple)이다.


이곳은 8세기에 라슈트라쿠타(Rashtrakuta) 왕국의 크리슈나 1세가 작업원 7,000명의 작업원을 동원하여 150년동안 만든 사원으로 바위 한 덩어리로 만든 건축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파 들어가기만 한 다른 굴과는 달리 거대한 바위를 깎아 사원 형태를 만들고 다시 속을 파내어 격실을 만들었다. 내부에는 하나하나 세밀한 조각을 새겨놓았다.


이건 사람이 감히 만들 수 있는 건물이 아니었다. 크리슈나 1세는 대체 뭐하던 인간인가? 작업에 대한 경외심보다 반감이 생길 정도였다.


게다가 이 사원이 완공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왕국이 멸망했다. 대체 무엇을 위해 이런 건물을 지은것일까? 까일라사 사원 뒤 언덕에서 석양과 함께 사원을 내려다보며 인간의 노력에 대한 위대함과 함께 인간에게 종교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다. 거창한 생각을 하며 내려오는 길에 개똥을 밟았다. 그래, 안어울리는 개똥철학은 집어치우자.


바퀴살이 부러지고


다음 목적지는 120km 가량 떨어진 아잔타(Ajanta)다. 엘로라와 마찬가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석굴군이 있는 곳이다.


매연과 소음, 무질서로 인해 정신없는 아우랑가바드 시내를 간신히 벗어났다. 작은 언덕을 오르는데 갑자기 뒷바퀴에서 ‘뚝’ 소리가 들린다. 근처 공터로 이동해서 자전거를 살펴보니 바퀴살 하나가 부러져 있었다. 바퀴살을 잡아주는 끝부분이 잘린 듯 떨어져 나간 것이다.


이런 문제가 생길줄은 상상도 못했기에 예비 바퀴살도 준비하지 않았다. 고심 끝에 남은 바퀴살 끝을 갈고리처럼 구부려서 임시 조치를 시도했다. 연장도 없이 철사 끝부분을 원하는 만큼 구부리는 일은 무척 어려웠다. 돌덩이 몇 개를 주워 망치와 모루 대용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작업은 쉽지 않았지만 덕분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받침돌이 모루역할을 못하고 몇 번 내리치니 철사 모양으로 파이다가 깨져버리는 것이다. 이 동네 석질이 상당히 무른가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석굴을 만드는건 엄청난 역사(役事)임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뒷바퀴가 불안하니 도무지 속도를 낼 수가 없다. 중간 중간 마을을 지날때마다 자전거가게에 들러봤지만 길이가 맞는 바퀴살을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부러진 바퀴살은 아직 잘 버텨주고 있지만 다른 바퀴살마저 부러지면 이동 자체가 불투명해진다.


하루면 아잔타에 도달할 줄 알았으나 바퀴살 때문에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아잔타를 1/3가량 남겨놓고 한 공터에서 야영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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