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권도윤 기자]여행(旅行)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 여행이란 ‘언어’라는 수단으로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행동에 옮기기에 앞서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의 막연한 설레임, 그리고 매 순간마다 찾아오는 선택의 고통, 그럼에도 ‘항해’를 지속하게 하는 알 수 없는 힘.


그리고 모든 여정을 마친 후 원래 있던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만든다. 아련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해지는 기분. 이 모든 과정이 여행이고, 이를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또 다시 여행을 결심한다. <편집자주>

케빈과 작별하고 아우랑가바드(Aurangabad)를 향해 출발했다. 잠깐의 휴식 때문인지 한번 해봤다는 자신감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발걸음이 한결 수월하다.


뿌네 외곽에는 마치 거대한 풍선처럼 보이는 굴뚝이 서 있었다. LG 인도 공장이다. 반가운 마음에 공장으로 가서 견학을 신청했으나 수위가 막아섰다.


공장을 나서는데 뒷바퀴 느낌이 이상하다. 가만히 살펴보니 뒷바퀴가 휘어 브레이크와 닿고있었다. 아무래도 짐의 무게를 못이기는가 보다. 그늘을 찾아 근처 간이휴게소에 들어갔다. 5루피(약 100원)짜리 빵 몇조각 시켜놓고 자전거 정비를 시작했다. 주인은 친구들이 LG에 다닌다면서 정비하는 내내 자랑을 늘어놓았다.


길위에서 보이는 인도의 풍경은 낯설기만 하다. 목화를 거래하거나 소가 사탕수수즙을 추출하는 광경도 보인다. 아니, 신성한 소에게 중노동을 시키다니? 그러고 보니 우마차도 있고 인도 소 팔자도 별거 없다.


작은 과일가게에서 바나나 한송이를 구입하니 거지소년이 나타나 돈을 요구한다. 바나나를 몇개 쥐어주니 녀석은 고맙다는 말도 없이 받아들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긴장 속에서 야영 시작


한참 달리니 어느덧 날이 저물어간다. 쉴 곳을 찾는데 마침 수확이 끝난 옥수수밭이 보인다. 나름대로 괜찮아 보였다.


인도에서의 첫 야영. 자전거를 텐트에 쑤셔넣고 갈대를 주워 위장을 시도했다. 위장까지 한 이유는 현지인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그날 잠은 다 잤다 싶어서였다.


인도인들은 대체로 호기심이 많은 것 같다. 기분 나쁠 정도로 빤히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치면 끝없는 질문을 쏟아낸다. 힌디어를 못알아 듣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말을 이어간다. 주위 사람이 몇 명 모이면 그 중 한명은 영어 통역에 나선다.


질문의 내용은 늘 동일하다 “어디서 왔냐” “어디 가냐” “왜 왔냐” “직업은 뭐냐” “자전거는 얼마냐” “결혼했냐” 등. 매번 똑같은 대답을 반복하는 것은 생각보다 피곤하다.


그래도 말만 걸면 그나마 다행이다. 잠시 쉬고 있자면 자전거를 여기저기 만져보고 기어를 바꿔놓는다. 페달을 돌려보고 바퀴와 체인도 유심히 조사한다. 손에 기름이 묻는 것쯤은 괘의치 않는다. 누군가는 머리와 팔다리를 만져보고 다른쪽에서는 휴대전화를 들이밀고 사진을 찍는다. 그동안 다른 사람은 헬멧을 제것인 양 착용하는 등 정신을 쏙 빼놓는다.


다행히 긴장 속에 시도한 첫 야영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무사히 끝났다.


다음 날 도로에 나가자마자 사고현장을 목격했다. 무작정 좌회전을 시도한 트럭이 오토바이를 친 것이다. 다행히 오토바이를 탄 청년은 크게 다치지 않은 듯 했고 금세 상황은 정리되었다. 앰뷸런스나 경찰차 따위는 오지 않았다.


고약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교통문화. 늘 도로위에 있어야 하기에 남의 일 같이 않다. 더욱 조심하며 달리기로 했다.


이날도 으슥한 밭으로 들어서 텐트를 치는데 오토바이 한 대가 다가와서 말없이 지켜본다. 텐트 설치를 마치기가 무섭게 이곳은 나쁜 사람이 많아 위험하니 다른데로 가라고 한다.


진작에 말해줄 일이지. 한참 구경하다가 텐트를 다 치고나니 옮기라는건 무슨 속셈일까. 해지기 전에 다른곳을 찾기 어려울 듯 해서 내키지 않는다.


그러자 그는 더 좋은곳을 알려주겠다면서 따라오라고 한다. 잠시 망설였지만 만일 그가 나쁜사람이라면 외딴 밭에서 자는게 더 위험할 듯 하여 일단 가보기로 했다.


그가 안내해 준 곳은 뜻밖에도 주유소였다. 그는 주유소 주인에게 몇마디 하더니 인사도 없이 사라졌고 주유소의 산토시(Santosi)는 한켠에 캠핑을 허락했다. 고마운 친구였구나. 이럴줄 알았으면 이름이라도 알아놓는건데…….


편하게 씻고 평평한 바닥에서 푹 잤다. 하지만 역시 무언가를 할때 인도인들 눈에 띄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 수많은 사람들의 훈수속에 텐트를 철수하려니 꼭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이다.


MP3 플레이어 강탈 사건


길 위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역시 인도인들의 호기심은 대단하다. 오토바이를 타고 따라오는 무리는 꼭 있다. 아우랑가바드에 거의 다 와서는 주황색 티셔츠를 맞춰입은 두 녀석이 오토바이 한 대를 타고 쫒아왔다. 이참에 쉬고 가야겠다 싶어 자전거를 멈췄다.


녀석들은 뭐라뭐라 중얼거리며 자전거 이곳저곳을 살펴본다. 힌디어 사이에 100루피라는 말이 계속 들린다. 어쩐지 눈빛이 호의적이지 않다 싶어 경계할때쯤 한 녀석이 MP3 플레이어를 스윽 꺼내갔다. 다른 녀석은 옆에서 계속 100루피를 반복하고 있다.


떡 하나주면 안잡아 먹겠다는 호랑이가 어떻게 했더라? 100루피를 줘도 MP3플레이어를 돌려받을 것 같지 않았다. 옆에 있는 녀석의 팔을 비틀고 팔꿈치를 눌렀다. 그녀석이 소리를 지르더니 저마치 떨어져 있던 녀석이 돌아와 MP3 플레이어를 반납했다. 자기들끼리 또 중얼거리는데 어감이 좋지 않다. 둘의 대화 사이에 얼핏 ‘가라데’라는 단어가 들린다.


어쨌든 강도라고 하기에는 어설픈 ‘동네 양아치’정도였고 일이 확대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윽고 아우랑가바드 시내에 도착했다. 관광안내소에 들렀더니 그 앞은 말 그대로 쓰레기통이었다. 여기서 나올 정보는 없겠다 싶어 돌아섰다. 시내 곳곳을 헤메다 값싼 숙소 하나를 구해 여장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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