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권도윤 기자]여행(旅行)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 여행이란 ‘언어’라는 수단으로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행동에 옮기기에 앞서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의 막연한 설레임, 그리고 매 순간마다 찾아오는 선택의 고통, 그럼에도 ‘항해’를 지속하게 하는 알 수 없는 힘.


그리고 모든 여정을 마친 후 원래 있던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만든다. 아련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해지는 기분. 이 모든 과정이 여행이고, 이를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또 다시 여행을 결심한다. <편집자주>

뿌네에는 국립간디기념관으로 사용되는 아가 칸 궁전이나 옛 성터인 샤니와르 와다(Shaniwar Wada) 등 볼거리가 있었으며 좁고 복잡한 구 시가지를 누비는 것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뿌네에서 가장 유명한건 오쇼 아쉬람(Osho Asharm)이다. 이곳은 오쇼 라즈니쉬(Osho Rajneeshee)라는 사람이 세운 명상센터다.


호기심이 생겨 더 알아보니 오쇼라는 사람은 동서양 종교와 철학에 통달했으며 명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인도 명상 붐을 일으킨 그의 책은 한국에도 상당수 번역되었으며 특히 물질문명에 지친 서양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끌었다.


오쇼는 100여대의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수집했고 여자가 끊이지 않는 등 일반적인 현자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위험인물로 분류되며 수십개국에서 입국 거부와 체포, 추방이 반복되었으며 심지어 CIA에 암살당했다는 말도 있다.


단편적인 말만 듣고 그의 사상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기존 질서에 얽매지 않고 권위에 저항하며 자유를 설파한 듯 하다. 이곳의 명상은 기존 이미지와는 다른 일명 ‘다이나믹 메디테이션’이라고 하여 춤추거나 울고 소리지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고 들었다.


뿌네에 적갈색 가운을 입은 서양인들이 많이 돌아다녀 의아했는데 이들이 바로 아쉬람에서 명상하는 사람들이었다. 명상에 대해 물어보니 하나같이 만족한다면서 수강을 권했다.


아쉬람 외곽은 거대한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었다. 내부를 둘러보고 싶었으나 정문 경비원이 출입 통제한다. 입장을 문의해 보니 처음 등록할 때 에이즈 검사가 필수이며 등록비로 1,500루피(약 30,000원)를 요구한다. 등록 후에도 매일 입장료를 받는다.


잘 가꾸어놓은 아쉬람 밖에는 헐벗은 거지들이 동냥하고 있다. 작은 식당에서 카레의 일종인 ‘달 라이스(Dhal rice)’를 시키면 한끼에 25루피(약 500원)정도다. 지역 경제규모에 비해 턱없이 비싼 요금과 ‘돈을 내지 않으면 깨달음도 없다’는 태도가 그다지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아쉬람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며칠정도 명상한다고 특별한 깨달음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외부에 배타적인 아쉬람의 태도에 그다지 내키지 않아 발걸음을 돌렸다.


오히려 뿌네에서의 배움과 감동은 비싼 명상센터가 아닌 가까운 곳에 있었다.


멋진 친구 케빈


케빈은 흔한 인도인과는 조금 달랐다. 미국식 이름을 사용하며 기독교인이었다. 인도에서 기독교라니 상당히 낯설었지만 인도인의 3~5% 가량이 기독교라고 한다. 적어보이는 이 수치는 사실 남한인구보다 많다.


3D 영화제작사를 운영하는 그는 일명 ‘발리우드(Bollywood)’로 알려진 인도시장 대신 미국 회사와 거래한다. 모친이 영어 교사인 그의 사업 확장에는 유창한 영어실력이 한몫했다.


그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인도에도 ‘소고기’가 있다는 것이다. 의아해 하자 케빈은 바로 나가서 불고기처럼 조리된 소고기를 구해왔다. 인도에는 힌두교가 대부분이므로 소고기가 금기시되는건 맞지만 일부 다른 종교인이나 아주 비천한 사람들이 먹는다고 한다.


케빈과의 시간도 즐거웠지만 무엇보다 감사한건 그의 태도였다. 친구 만프리에게 전화 한통 받았을 뿐인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사무실 한켠을 흔쾌히 내주었다.


뿐만 아니라 더 편한 시설을 제공하지 못해 미안해했다. 직원들도 하나같이 친절했고 심지어 내가 불편해할까봐 눈치를 살핀다.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마지막날 저녁이라도 사려고 했으나 사양했고 오히려 소고기 도시락까지 건네주었다.


그가 나에게 베풀어준 호의도 고마운 일이지만 아는 외국인을 재워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그들의 우정과 신의가 더 놀라웠다. 과연 나는 같은 상황에서 쉽게 승낙할 수 있을까? 케빈과의 마지막 날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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