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권도윤 기자]여행(旅行)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 여행이란 ‘언어’라는 수단으로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행동에 옮기기에 앞서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의 막연한 설레임, 그리고 매 순간마다 찾아오는 선택의 고통, 그럼에도 ‘항해’를 지속하게 하는 알 수 없는 힘.


그리고 모든 여정을 마친 후 원래 있던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만든다. 아련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해지는 기분. 이 모든 과정이 여행이고, 이를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또 다시 여행을 결심한다. <편집자주>


2013년 1월 4일.


약 두달간 머무르며 나름대로 익숙해진 뭄바이 카르가르(Kharghar)를 떠난다. 이제 본격적인 자전거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첫 목적지는 인도에서 8번째로 크다는 뿌네(Pune)로 남동쪽으로 120km가량 떨어져있다. 앞으로 북상할 계획이지만 카르가르에서 만난 친구 만프리(Manpreet)의 추천으로 뿌네를 거치기로 했다.


많은 짐을 갖고 이동하는것이 만만하지는 않았지만 처음 30Km 정도는 다닐 만 했다. 날씨는 조금 더웠으나 주변 광경도 재미있고 길 상태도 괜찮았다. 뭄바이에 머무르며 좌측 통행에도 어느정도 적응되었으며 신경써야 할 것은 난폭한 차량 뿐이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멀리 산 꼭대기 능선 위에 희미하게 차량이 보인다. 무슨일로 산꼭대기까지 올라갔을까?


얼마 후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굴곡이 전혀 없고 가도 가도 끝이없는 오르막이었다.


체력은 금세 소진되었고 이윽고 1단 기어로도 전진하기 힘든 상대에 처했다. 자전거를 끌고 가는 것은 직접 타는 것 만큼이나 어려웠다.


경사가 심해 짐 끄는 것 자체도 힘들었지만 좌우로 조금만 기울어져도 짐 무게 때문에 쓰러진다. 게다가 속도가 안나서 답답하다. 대체 인도인들은 왜 산에 터널하나 뚫지 않았을까?


더 이상 못가겠다 싶어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식사도 안했구나. 미리 준비한 라면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이제는 가뜩이나 힘든 판국에 들개까지 컹컹거리면서 쫓아온다. 인도에 광견병이 창궐하고 있다고 들었다. 비상용으로 준비한 각목을 휘둘러 개를 쫒아내고 다시 산길을 오른다. 어느새 해가 슬슬 저물어가는데 오르막은 도무지 끝날줄 모른다.


문득 주위를 살펴보니 능선 위에 차량이 다니던 산이 바로 이곳이었다.


‘아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인도에 자전거를 끌고 나왔을까? 이건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잖아’ 출발 하루만에 벌써 후회가 밀려왔다. 어떻게든 해지기 전에 산을 넘어야 한다는 생각과 초행길에 모든 것을 혼자 결심해야 하는 조건은 몸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지치게 했다.


끝없는 오르막. 데칸(Deccan) 고원


3시간 이상 오르막과 사투를 벌인 끝에 기어이 정상에 올랐다.


터널이 없던 이유는 간단하다. 산 중턱과 꼭대기에도 작은 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예전에는 외적의 침임을 막고자 이곳에서 살았으리라. 물론 불청객인 나의 침입을 막기에도 이만큼 용이한 곳이 없다는 생각에 쓴웃음이 나온다.


한참 올라온 만큼 신나는 내리막을 기대했는데 내리막은 금세 끝나고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려는 조짐이 보인다. 날도 저물었다. 인도인의 운전습관을 보면 야간주행은 자살행위이며 체력적으로도 무리다 싶어 근처 마을에 묵어가기로 했다.


수소문 끝에 찾아간 가장 싸다는 호텔도 700루피(약 12,000)원를 부른다. 생각보다 숙박비가 비싸지만 워낙 작은 마을이라 다른 숙소나 대안도 없다.


꼼짝도 하기 싫었으나 다음날을 위해 염전이 되어버린 옷을 빨아야 한다. 정리를 마치고 위치를 확인해 보니 칸달라(Khandala)라는 작은 마을이다. 지나온 산길은 데칸 고원 중턱으로 해발 700m정도다.


인도 자전거 여행 첫날. 신고식은 꽤나 혹독했다. ‘포기하고 기차타고 갈까?’ 앞으로의 계획을 심각하게 고민해 본다.


피로가 가시지 않았지만 언제까지나 호텔에 죽치고 앉아 있을수도 없는 일이다. 길은 다시 오르막으로 시작했으나 다행히 전날만큼 가파르지도 않고 이따금 내리막도 있어 한결 수월했다.


날씨가 매우 덥다. 다리를 지날 때 내려보이는 강은 바짝 말라있거나 실개천 수준으로 변해있었다.


더운 날씨나 오르막도 힘들지만 인도에서 길 찾기가 생각만큼 만만하지 않다. 도로 표지판도 부실한데다 지도에 안나오는 길이 제법 있다. 게다가 작은 갈림길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면 종종 엉뚱한 길을 알려준다. 재차 길을 물으니 예의 그 대답이 돌아왔다.


“노쁘라브럼” 처음에는 장난치거나 놀리는 것인줄 알았는데 가만보니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아무튼 알 수 없는 문화다.


얼마 후 갑자기 톨게이트가 있는 하이웨이가 나타났다. 고속도로? 길을 잘못 든 줄 알았으나 이륜차 통행이 허용되고 있었다. 들어가 보니 고속도로는 커녕 조금 넓은 도로 수준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고속도로는 익스프레스웨이로 표시한다. 그래도 종종 표지판도 보이고 길도 괜찮은 편이라 조금 더 수월히 달릴 수 있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어느새 도로에 차량이 많아졌고 그만큼 시끄러워졌다. 제법 큰 도시인가보다. 지도를 살펴보니 벌써 뿌네였다. 도시가 바뀌는데도 작은 표지판하나 없어 도착한줄도 몰랐다.


목적지는 만프리에게 소개받은 케빈(Kevin)의 사무실이다. 3D영화 제작사를 운영하는 케빈은 미리 사무실 한켠을 비워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덕분에 뿌네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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