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권도윤 기자]여행(旅行)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 여행이란 ‘언어’라는 수단으로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행동에 옮기기에 앞서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의 막연한 설레임, 그리고 매 순간마다 찾아오는 선택의 고통, 그럼에도 ‘항해’를 지속하게 하는 알 수 없는 힘.


그리고 모든 여정을 마친 후 원래 있던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만든다. 아련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해지는 기분. 이 모든 과정이 여행이고, 이를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또 다시 여행을 결심한다. <편집자주>


뭄바이(Mumbai)에 머무는 하루하루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특히 도로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차선 구분도 없이 마구 얽힌 차량과 오토바이는 마치 엑셀레이터에 경적을 연결한 마냥 쉴새없이 굉음을 울려댄다. 심지어 역주행도 다반사인데 역주행하는 차량도 당당히 경적을 울려댄다. 그 사이로 손수레와 우마차가 파고드는 등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혼란스럽기는 대중교통도 마찬가지다. 뭄바이 시내 전철에 비하면 출퇴근시간대 서울 지하철은 쾌적한 드라이브 수준이다.


좁은 객차에 사람들이 꽉 차 있고 손잡이가 닿지 않으면 거림낌없이 옆사람 허리나 팔을 잡는다. 사실 안잡아도 넘어질 일은 없다. 밀착한 사람들의 땀냄새가 코를 찌른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열차문에 매달려 다닐까. 그 와중에 여성전용칸이 따로 배정되어 있다. 아마 그마저 없었다면 여성들은 아무도 안탔을 것이다.


시장에서는 타이피스트들이 종종 보인다. 오래된 기계식 타자기를 이용하여 원하는 문서를 만들어주는데 옆에서는 구형 휴대전화 부품을 조합해 새 전화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인도가 IT 강국이 맞나 심히 혼란스럽다.


항공 수하물 요금을 아끼기 위해 말레이시아에서 보냈던 소포는 무려 45일만에 도착했다. 집배원은 직접 찾아와서 소포를 찾으러 우체국에 방문하라는 쪽지를 전해주고 갔다. 찾아간 우체국 역시 낙후되어 소포가 도착한것도 다행이다 싶을 정도다.


그러던 중 11월 17일에는 시내 모든 관공서와 상점이 문을 닫았다. TV가 보여주는 시내 중심부는 마치 거대한 뭄바이 전철처럼 느껴질만큼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통계마다 다르지만 최소 백만에서 최대 2백만명의 인파가 몰린 것으로 추산되었다. 방송에서 외국인은 위험하니 시내에 나오지 말라고 했지만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나갈 수도 없었다.


알고보니 발 따꺼레이(Bal Thackeray)라는 사람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었다. 그는 뭄바이가 속한 마하라슈트라 주에서 시브 세나(Shiv Sena)라는 정당을 창당한 극우파 정치인이다. 히틀러를 존경한다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으며 인종차별·반 이슬람 정책 등을 주장했고 심지어 자살폭탄테러에도 연류되었다고 한다.


인도 대통령이나 총리도 아닌 일개 지역정당인의 사망에 모든 가게가 문 닫은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현지인들은 무언가 두려워하는 눈치이며 자세한 언급을 꺼린다. 그럼에도 외곽에서는 셔터를 반만 내린 채 음성적으로 영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의 추석 정도에 해당하는 디왈리(Diwali) 축제도 신기했다. 일주일에 걸쳐 곳곳에서 폭죽을 터뜨리며 축제를 기린다. 오색 가루로 바닥을 장식하며 심지어 대변에 꽃을 꽂아 집앞을 꾸미는 모습도 흔히 보인다.


소가 많다고 알려진 인도에서 더 많이 보이는건 떠돌이개였다. 밤마다 시끄럽게 짖으며 싸움판을 벌여 성한 곳이 없는 개들이 낮에는 거리 곳곳에 축 늘어져있다.


이러한 거리는 매우 지저분했다. 정확히 말하면 거리와 쓰레기통, 화장실의 구분이 없다. 골목길을 화장실로 사용하는건 소나 개 뿐만이 아니다. 쓰레기장 사이에는 새하얗게 세탁한 옷감이 바람에 흩날리며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길을 걸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구걸해오며 고층 아파트 단지 사이에는 참혹해 보일 정도의 판자촌이 들어서있다. 전기는 고사하고 물조차 공급되지 않아 아낙들이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물 길러다니는 모습을 보면 과연 지금이 21세기가 맞는지 또 여기가 브릭스(BIRCs)라는 신흥 강대국이 맞는지 의아스럽다.


반면 쇼핑몰이나 아파트 등은 제법 잘 갖추어져 있으며 이런곳에 들어갈때면 으레 총을 소지한 경비원이 금속탐지기로 몸을 수색한다. 하지만 현대식 빌딩보다 더욱 화려한건 영국 식민지시대의 건물이다.


뭄바이 중심부에는 식민시대의 건물이 즐비하여 색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특히 기차 종착역인 CST역(Chhatrapati Shivaji Terminus)은 매우 웅장해 감탄이 절로 나왔다. 영국 웨일즈 왕자의 방문을 기념하여 지었다는 차트라바티 시바지 마하라즈 박물관은 건물 자체로도 아름다웠고 내부에는 종교와 역사를 망라하는 인도의 각종 유물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거리와 박물관을 돌아보면서 과거 인도의 영화 및 식민지시대가 현재와 대비되어 과연 역사가 발전하는건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정신없는 곳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뭄바이는 뭔가 묘한 매력이 있고 매우 재미있는 곳이라 막상 떠나려니 무척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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