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임’ 한가득 배낭에 넣고 시작이란 두 글자를 밟는다


[스페셜경제=박수진 기자]추운 겨울날, 배낭에 한 가득 짐을 쌌다. 배낭의 무게는 내 설레는 마음의 무게쯤 될까. 양 손에 두꺼운 장갑을 끼고 “조심히 다녀올게요”라는 말과 함께 페달을 힘차게 밟기 시작했다.


자전거 여행이라는 막연한 꿈을 갖고 시작했던 나의 도전은 ‘자전거 국토종주 여행기’로 꽃 피울 수 있는 순간이 오게 된 것이다.


여기에 자전거 국토종주는 내 여행의 발자취를 기록할 수 있는 종주수첩에 도장까지 찍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탁월한 선택인가.


갑자기 마음이 두근두근하기 시작했다.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내 머리 속을 꽉 채웠다. <스페셜경제> 박수진 기자가 직접 두 바퀴로 국토 종주한 자전거 여행의 생생한 순간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633km. 내가 견뎌내야 할 아픔의 거리는 아니다. 앞으로 펼쳐질 흥미진진한 너무나 기대되는 설레임의 거리다.


“그래 자전거로 국토를 종주하는 거야” 갈등은 이내 선택으로 바뀌고 선택은 이미 실행으로 옮기고 있었다.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들’이라는 네이버 카페에서 정보를 얻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로 해외여행도 하고 전국 방방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자전거여행이라곤 제주도여행이 전부인 내게 그 곳은 신선한 충격이였다.


젊음의 또 다른 이름, 도전



게시판을 통해 여행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과 연락을 하게 됐고, 나 포함 세 명이 2월 국토종주 자전거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계획한 4박 5일동안 가야할 길은 총 길이 633km로 인천 아라뱃길부터 부산 낙동강 하굿둑까지. 자전거로 동네 마실이나 다니던 내가 하루에 100km이상씩 탈 수 있을까 걱정이 됐지만 그냥 한번 해보는 거다. 우리의 또 다른 이름은 젊음이다.


출발은 인천 아라뱃길에서부터 시작됐다. 영하 10도를 넘는 매서운 날씨는 수면양말을 세 켤레나 끼어 신었는데도 뼛속까지 추위가 아려온다. ‘아 지금이라도 돌아갈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칼바람을 맞으며 도착한 서해 아라뱃길. 그 곳엔 강추위에 얼어붙은 내 모험심을 녹이는 문구가 있었다.


‘가자, 가자, 가자! 바퀴는 굴러가고 강산은 다가온다’ 얼마나 멋있는 문구인가. 어느덧 추위는 자전거 페달보다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자전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이 여행을 괜히 쓸데없이 사서 고생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 힘으로 앞을 갈 수 있고 밟는 만큼 세상을 볼 수 있는 이 자전거의 매력은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달콤한 초콜릿의 유혹처럼 날 사로잡았다.


우리는 빨간 인증부스를 만날 때마다 “인증센터다!! 화이팅!”이라는 격려의 말과 함께 페달을 열심히 밟았다. 길고 긴 한강자전거길을 지나 다음 목적지인 팔당대교로 가기 위해선 넘어야 될 산이 있다. 올림픽대로 옆에 있는 자전거 길인데 라이더들 사이에서는 ‘아이유 3단 고개’라고 불린다. 급한 경사로에 나는 숨을 헐떡거렸다. 그래도 나의 자존심에 절대 끌고 갈수는 없다.


그렇게 3단 고개를 넘고 팔당으로 가는 길에 팀원 자전거 바퀴튜브가 펑크났다. 변수 하나가 추가됐다. 바퀴 튜브를 떼우는동안 ‘에너지바’로 당 충전을 했더니 기분이 좋아졌다. 자전거 탈 땐 이런 달달한 초코바가 정말 필수품이다.


아직 달려갈 길이 많이 남아 있는데 팔당대교 넘어가고 있을 때 쯤, 벌써부터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린 점심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팔당에선 꼭 초계국수를 먹어야 된다는 라이더의 수칙을 우리는 처음으로 어기고 말았다.


배고픈 배를 움켜지고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는데 옆에 지나가는 다른 라이더분이 말을 걸었다. “어. 혹시 카페에 글 올리신 분 아니에요?”



길(道)에서 만난 사람들


내가 네이버 카페에 글 올렸을 때 연락 온 사람이 두 명 있었는데, 한 명은 지금 나랑 같이 가고 있는 사람이고, 또 한명은 부산에 사는 사람이었다. 난 출발을 인천에서 하고 그 분은 부산 사람이라 같이 못 가게 됐는데, 우연히 그 분도 같은 날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아니,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나.


만났을 때 같이 가고 싶었지만, 우리 팀원 중 한 명이 갑자기 체력이 쳐지는 바람에 좀 천천히 가야해 그 분들이랑 같이 가지 못했다. 내일 가는 길이 맞으면 부산까지 함께 가자고 얘기를 하고 아쉽게 떠나보냈다.


팔당을 지나 운길산역, 양수역을 지날 때 쯤 우리처럼 국토종주를 하는지 배낭을 매고 가는 두 명의 라이더를 봤다. 친구끼리 온 것 같아 참 보기 좋았단 생각을 했다. 인사하려고 했는데 왠지 모를 쑥스러움과 추위가 내 입을 막았다.


저녁 8시가 돼서야 우리는 국수역에 도착해 드디어 첫 끼를 먹을 수 있었다. 정말 고달팠던 첫 날. 양평 해장국은 그렇게 얼어붙은 몸을 든든하게 채워줬다. 반찬을 몇 번 리필해 먹었는지, 부산까지 자전거타고 간다는 말에 주인아주머니는 우리를 더욱 친절하게 맞이해 주셨다.


이런 것들이 여행의 묘미 아닐까? 여행자에게 베풀어주는 작은 인정들.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소중한 인연들.


내일은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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