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소액주주 편들지만…속내는 ‘머니 전쟁’

[스페셜경제=조경희 기자]세계 자본 시장에서 ‘두 얼굴’을 가진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어쏘시어츠 엘.피.(Elliott Associates, L.P. 이하 엘리엇)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엘리엇은 현재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 겉으로는 삼성물산에 대한 가치가 저평가됐다며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 있지만 사실은 시세차익을 노린 움직임이라는 평가가 더 큰 헤지펀드다.

기업은 물론 국가 경제까지도 뒤흔드는 두 얼굴의 자본이라는 것이다. 아르헨티나를 ‘모라토리엄’ 선언까지 이르게 한 장본인이 엘리엇이다. 최근에는 IT 소프트웨어 글로벌 기업인 시트릭스 마저 좌지우지 하는 등 ‘악명’이 높아지고 있는 것.

재계에서는 이러한 적극주의 행동 펀드에 대해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아울러 삼성그룹 내 합병에는 문제가 없지만 향후 ISD로 인한 국가 간 손해배상 등으로 이어질 경우 상당한 피해와 함께 지루한 싸움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KCC 백기사 지원으로 우호 지분 13.99%→19.75% 상승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격보다 높아 합병 좌초 ‘어려워’


삼성그룹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추진하면서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은 4일 ‘경영 참가 목적’으로 삼성물산 지분 7.12%(1112만5927주)를 주당 6만3500원에 장내 매수해 보유 중이라고 공시했다.

엘리엇은 이미 삼성물산 지분 4.95%를 보유하고 있었고 3일 2.17%를 추가 확보해 지분을 늘렸다. 매입금액으로 환산하면 총 7064억9636만4500원이다.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합병 계획안은 삼성물산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했을 뿐 아니라 합병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아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에 반한다고 믿는다”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반대했다.

삼성물산 주주가 공개적으로 두 회사의 합병 비율인 1(제일모직):0.35(삼성물산)가 불공정하다고 밝힌 것은 처음이다. 합병 회사가 신수종 사업을 하겠다는 것 이외에 주주 가치가 어떻게 올라가는지에 대해 설명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특히 엘리엇은 소액주주 연대 움직임도 벌이고 있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 반대해 개설된 네이버 카페 ‘삼성물산 소액주주 연대’ 회원수 또한 늘고 있으며 이들은 엘리엇에 주식을 위임하는 움직임까지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엘리엇이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이들은 주주권익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은 투기자본의 ‘발톱’은 감추고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 공격한’ 엘리엇의 두 얼굴


엘레엇은 지난 1977년 하버드 로스쿨 출신 폴싱어가 세운 미국계 헤지펀드다. 자본 규모는 30조원대로 아르헨티나 경제위기 때부터 유명세를 탔다. 당시 엘리엇은 가격이 폭락한 아르헨티나 국채를 4억 달러를 4800만 달러에 사들인 뒤 10년에 걸친 소송 끝에 이자를 포함 13억3000만 달러를 받아내 악명을 샀다.

이밖에도 엘리엇은 2003년 P&G와 웰라 인수합병, 2005년 미 유통업체 샵코 매각 개입, 2006년 아데코와 DIS 인수합병 개입, 2013년 美 에너지 기업 헤스 경영참여 선언, 2014년 홍콩재벌 데이비드 리 동아시아은행 지분 매각 관련 소송, 올해 초 일본 DMG모리세아키와 제휴사인 독일의 DMG모리세이키 AG와의 합병 개입 등 투기자본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낸 바 있다.


지분 알박기로 ‘약점’ 건드려


특히 엘리엇은 인수, 합병을 검토하는 기업의 약점만 노려 전략적 지분을 확보하는 등 ‘지분 알박기’ 수법을 써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삼성그룹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도 삼성가의 이재용 부회장 경영승계를 노리면서 겉으로는 삼성물산의 가치가 저평가됐다고 경영참여를 선언했지만 연이은 지분 매입 및 가처분 소송 등으로 전형적인 투기자본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다.

엘리엇은 지난 4일 삼성물산 지분 7.12%를 확보하면서 합병에 개입했다. 이후 삼성물산 3대 주주로 이름을 올린 직후 다른 기관 투자자들에게 합병 반대에 동참할 것을 제안하는 서신을 보냈다.

KCC가 삼성물산 지분을 전략적으로 매입하며 ‘백기사’를 자처하자, 삼성물산이 상법 상 의결권 없는 자사주를 매각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또 다시 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주총분석업체, 삼성물산 합병 ‘반대’ 권고


이 가운데, 주총안건분석업체인 서스틴베스트가 지난 9일 자산운용사와 투자자문사를 포함한 회원사 8곳에 ‘합병 반대’ 서한을 전송하면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서스틴베스트는 서한을 통해 제일모직 1대 삼성물산 0.35라는 합병 비율 산정 시점이 삼성물산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이 최저였을 때 이뤄져 일반 주주의 지분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설명했다.

PBR은 시가총액을 자본총계로 나눈 것으로 주가와 순자산 가치를 비교하는 척도다. PBR이 1보다 크면 시가총액이 자본총계보다 크다는 의미이므로 고평가 됐다고 볼 수 있고, 1보다 적으면 저평가 됐다고 말할 수 있다.

서스틴베스트는 “보통 건설사 PBR이 1.0 전후라는 것을 볼 때 합병 비율이 결정될 시점의 삼성물산 PBR은 0.68로 낮은 수준”이라며 “삼성물산 PBR이 최저일 때 합병 비율을 산정하게 되면 제일모직 주주입장에선 최적, 삼성물산 주주입장에선 가치는 가장 크게 훼손된다”고 명시했다.

이에 따라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이 합병 무산을 위해 주식매수 가액을 높여 부를 수 있는 우호 지분 확보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커지고 있다.

엘리엇 ‘주특기’ 소송 전 ‘본격화’‥추가 소송 진행 ‘예고’
겉으로는 주주권리 침해 사실상 시세차익 노리는 먹튀?


삼성물산, 자사주 매각 ‘정당’


삼성측도 ‘반기’를 꺼내들었다. 먼저 KCC에 대한 지분매각이 불법이 아니라는 점과 우호지분 확대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삼성물산은 11일 “KCC에 자사주를 매각하기로 한 것은 적법하고 정당한 결정”이라며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불법 시도’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삼성물산은 “6월 10일 이사회의 자사주 매각 결의는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적법하고 정당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삼성물산은 “이사회 결정은 사업 다각화 및 시너지 제고 등 당초 합병 목적을 원활하게 달성하고 단기차익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해외 헤지펀드의 공격으로부터 회사 및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자사주 매각은 대규모 유동성을 확보해 재무구조 등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며 "회사의 이익과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한 적법하고 정당한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우호지분 늘리는 삼성물산


이어 삼성물산은 11일 기준 19.78%의 우호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에 따르면 오후 3시 현재 특수관계인 삼성SDI 등 특수관계인 지분 13.82%와 자사주를 매각한 KCC 지분 5.96%를 합해 총 19.78%의 우호지분을 확보했다.

특수관계인 지분은 삼성SDI 7.39%, 삼성화재 4.79%, 이건희 회장 1.41%, 삼성복지재단 0.15%, 삼성문화재단 0.08% 등이다.

반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안에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은 7.12%를 갖고 있다. 여기에 0.3% 수준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네덜란드 연기금(APG)과 엘리엇에 의결권을 위임키로 한 소액주주 0.4% 정도가 반대표를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1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최종 10.15%의 지분을 확보했다. 하지만 합병안에 대한 공식 입장은 내놓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삼성물산이 30%를 웃도는 잠재적 우호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국민연금과 신영자산운용(0.1% 수준) 등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합병안에 찬성표를 던질 것을 가정해서다.

하지만 내달 17일로 예정돼 있는 임시주주총회에서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금융권의 대체적 시각이다. 합병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항으로 합병안이 통과되려면 출석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신흥자산운영 등이 합병에 찬성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엘리엇, 결국 ‘약점’ 노렸다


엘리엇은 지분 추가 매입이 가능한 12일을 기점으로 어떤 카드를 내들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엘리엇이 지속적으로 삼성물산 및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를 나서고 있는 것도 사실은 지배구조 개편을 서둘러야 하는 삼성그룹의 ‘약점’을 노린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 소버린 사태 당시 소버린의 행적이나 엘리엇의 그간 M&A 행보에서와 같은 수순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당장 삼성그룹은 내년 초 까지 지배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삼성은 다음 달 열리는 임시주총에서 합병 결의안을 이끌어내야 한다. 만약 합병이 무산되면 제일모직, 삼성SDS 상장 등 그동안 추진해온 지배구조 개편안이 사실상 어렵게 된다.

삼성그룹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지배구조를 단순화해 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우호세력 부족으로 합병이 무산되면, 주주 이익 보다는 오너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이었다는 뉘앙스를 풍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엘리엇이 노리는 것도 사실상 이 부분이다. 겉으로는 소액주주의 편을 들면서 사실은 발톱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엘리엇이 12일 이후 다시 삼성물산 지분을 대량으로 사들인다면 이는 삼성그룹과의 장기전에 돌입한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

엘리엇이 합병반대로 그치는 게 아니라 합병 이후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노린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엘리엇이 삼성에 버금가는 지분을 취득한 이후 새로 임시주총에서 이사 해임안→중간 배당→순환출자 즉각 해소→자산 양수도(삼성전자, 삼성SDS 지분 매각) 등을 제시하거나 17일 합병주총 이후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엘리엇이 합병비율을 수정하기 위해 ISD 독소조항을 활용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투자자가 특정 국가의 법력이나 정부 정책 때문에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면서 세계은행 산하 국제 분쟁 해결센터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

전형적인 투기 자본이자 행동자본으로 불리는 엘리엇의 행보에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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