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권도윤 기자]여행(旅行)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 여행이란 ‘언어’라는 수단으로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행동에 옮기기에 앞서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의 막연한 설레임, 그리고 매 순간마다 찾아오는 선택의 고통, 그럼에도 ‘항해’를 지속하게 하는 알 수 없는 힘.


그리고 모든 여정을 마친 후 원래 있던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만든다. 아련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해지는 기분. 이 모든 과정이 여행이고, 이를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또 다시 여행을 결심한다. <편집자주>


인도로 향하는 항공기에서부터 심히 언짢아졌다. 승무원이 채식 도시락을 제공한게 발단이었다.


채식 메뉴는 별도로 주문할때만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다 기내식으로 한동안 접하지 못할 소고기 반찬을 즐기려 했기에 뭔가 착오가 있었던게 아닌지 물었다.


그러자 귀찮다는듯한 말투로 내 것이 맞다면서 쏘아붙인다. 옆자리 승객은 일반식을 제공받았기에 다시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그게 마지막이며 싫으면 먹지 말라는 것이다.


기분이 상해서 식사를 포함한 모든 비용을 지불했기에 선택권이 있으며 당신의 임무는 서비스라고 말했더니 승무원은 ‘내 책임 아니다’며 가버렸다. 어이가 없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데 ‘죄송하지만 저희가 준비한 일반식이 소진되었는데 이거라도 괜찮겠습니까?’라며 정중하게 물었다면 흔쾌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냥 가버리니 괘씸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시 부르려는데 불현듯 이상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승무원은 전혀 미안해하지 않았다. 인도에서는 이런게 당연한건가? 마음 단단히 먹어야겠군’


식사가 끝나고 한가해보이는 시간에 음료수라도 마시려고 말했으나 무시할 뿐이다. 다른 남 승무원은 그나마 나았지만 음료 한잔에 30분 이상 소모되었다. 결국 항공기의 서비스는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잠이나 자야겠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인도 뭄바이 차트라파티 시바지 국제공항에 도착해 수하물 창구로 향했더니 자전거는 마치 버려둔 것처럼 한 구석에 방치되어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핸들과 차대를 연결하는 부분(스템)을 덮었던 매트리스와 가방은 찢어져 있었고 알루미늄 스템은 갈려나갔다.


‘공항에 널린게 트롤리인데 혹시 질질 끌고다녔나? 현장에서 바로 확인하고 배상을 청구했어야 하는건데’


짐을 찾았고 신고할 정도의 현금과 고가품은 없었는데 갑자기 흰 제복을 입은 사람이 부르더니 관세 200달러를 요구한다.


이유는 단지 짐이 크다는것 뿐이다. 한국에서 사용했고 고가도 아니라고 했지만 막무가내다. 그러더니 갑자기 작은 방으로 잡아끌고서 위협적인 목소리로 재차 200달러를 요구했다.


규정이 다르구나 돈을 내야겠다 생각했는데 방으로 부르자 뭔가 떳떳하지 않구나 싶었다. 바로 목소리를 높였다. 200달러에 대한 영수증을 요구하며 사진 한 장 찍어가겠다고 말했다. 만약 여기에 대한 세금이 부당하다면 한국대사관을 통해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앞으로 인도에서 수없이 많이 듣게 될 말이 돌아왔다.


“그냥 가. 노쁘라브럼(No problem)”


그래 세금은 거짓말이었구나. 속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한 나라의 첫 인상을 좌우할 공항에서 그것도 제복을 착용한 공무원이 사기를 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복도를 지나치는데 이번에는 황토색 제복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서 300달러를 요구한다. 이제 수법이 보인다. 앞에 하얀옷 입은 사람은 200달러 불렀다고 말하자 먼저 냈으면 괜찮다면서 또다시 외친다.


“노쁘라브럼”


어쩌면 두 명이나 저렇게 당당하게 뒷돈을 요구할 수 있을까? 문득 불친절할 뿐 거짓말은 하지 않았던 승무원이 훌륭하게 느껴진다. 아니지, 어쩌면 일반식을 숨겨놓았는지도 모를일이다.


가벼운 실랑이를 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은 자정이 넘었다. 공항을 나서니 이건 말 그대로 도떼기시장이다.


삑삑 울려대는 호각소리, 신경질적으로 눌러대는 경적소리, 호객행위에 나선 택시기사들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버스터미널, 아니 동네 시장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이렇게 시끄럽지는 않았다. 아마 여기가 세계에서 가장 시끄러운 공항일것이다. 이 밤중에 이정도면 낮에는 대체 어떨까?


정말 다행인건 미리 숙소에 픽업을 요청해 둔것이었다. 그러나 입국절차에 시간이 많이 걸렸음에도 기사는 더 늦게 나타났고 사과는커녕 미안한 기색도 없었다. 그가 말한 늦은 이유는 노쁘라브럼이다.


사이드미러도 없는 작은 차는 가로등조차 없는 도로를 질주한다. 요란한 엔진소리에 계기판을 확인하니 실제 속도는 50km/h도 안된다.


더 당혹스러운건 마주오는 차가 보일때마다 경적을 눌러대며 상향등을 켜고 깜빡깜빡거린다. 반면 다른 차를 추월할 때는 방향지시등을 전혀 깜빡이지 않는다. 위험하다고 말하니 대답은 역시 노쁘라브럼. 대체 어디서 배운 운전매너일까?


‘아, 앞으로 이런 동네에서 지내야 하나?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면 살아남을수나 있을까’


불친절·사기·소란함 따위로 새로운 나라에 대한 흥분과 기대는 온데간데 없고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