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사고 원청 책임 없어”‥前例(전례) 미칠까

[스페셜경제=조경희 기자]지난 1월 7일 법원이 롯데케미칼 하청업체 직원의 산재에 대해 ‘원청’인 롯데케미칼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렸다. 하청업체 직원이 업무 중 안전관리 소홀로 중상을 입었어도 평소 안전관리를 해온 원청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법원이 원청인 롯데케미칼의 ‘손’을 들어주면서 롯데케미칼은 지난 2014년 여수공장 내에서 폴피프로필렌 인양 작업 중 아래에서 포대 해체작업을 하다 500kg이 넘는 포대에 깔려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은 사건에 대해서 책임을 면하게 됐다.

하지만 최근 위험한 업무를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사례가 증가하는 가운데 벌어진 판결이어서 업계에서는 이를 불편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안전관리만 해오면 어떠한 사고가 벌어져도 롯데케미칼 같은 판례가 원청업체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관리 입증 有‥원청업체 책임 물기 어려워지나
도의적 책임 통감 필요성 제기‥원청‧하청 협력해야



최근 부산 영도조선소 내에서 크레인 구조물이 추락하면서 근로자 4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부산 영도경찰서는 철거업체 대표와 현장책임자를 조사해 크레인 해체 작업 당시 안전장치를 위한 조치사항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관련자들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형사입건할 계획을 밝혔다.

이어 경찰은 원청업체와 하청업체를 상대로 크레인 매매와 철거 도급 계약 시 위법성은 없는 지 계속 수사할 방침이다.

사실 조선, 건설, 산단을 아울러 하청업체 직원의 사고, 사망 소식은 더 이상 흔한 일이 아니다.

겨울방학을 맞아 조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이 쇳물이 빠져 죽거나, 공정거래법상 금지임에도 하청에 재하청 계약을 셀 수 없이 맺기도 한다. 건설현장으로 출근하던 봉고차가 전복돼도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런 사고가 발생하는 이유는 한가지다. 위험한 업무를 원청 대신 하기 때문이다. 원청에서 위험한 업무를 떠안고 사고가 발생할 경우 정부 발주 공사를 하지 못하는 등의 패널티가 존재하기 때문에 ‘위험의 외주화’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부산 영도조선소 사고가 발생한 이후 정부는 이례적으로 고위험 업종 하청업체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에 대해 원청업체의 산재 발생 통계에 통합하기로 했다. 원·하청 산재 건수가 합쳐지면 하청노동자 안전에 대한 원청의 관심이 커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사고 나도 무죄 받았다?

하지만 최근 하청업체 사고로 인해 재판을 받은 롯데케미칼은 최근 기류와는 정반대의 판결을 받았다. 롯데케미칼이 승소했지만 씁쓸하다는 평가까지 나오는 것은 원청업체가 사고의 ‘고의성’이 없기 때문에 롯데케미칼이 무죄라는 재판 판결문 때문이다.

롯데케미칼 하청업체인 호남진흥 직원 양모씨는 지난 2013년 11월 20일 롯데케미칼 여수공장에서 사고를 당했다. 여수공장 내에서 폴피프로필렌 인양 작업 중 바로 아래에서 포대 해체작업을 하다 500㎏이 넘는 포대에 깔려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은 것.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 4단독(이대로 판사)은 7일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제품 출하 관련 하청업체인 주식회사 호남진흥과 호남진흥의 안전보건관리 책임자 김모 씨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각각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원청인 롯데케미칼 주식회사와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공장장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롯데케미칼 하청업체가 맡은 공정이 연속적이고 필수적인 점이 인정돼 원청에도 안전관리에 관한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롯데케미칼이 정기적으로 안전협의회를 개최하고 안전관리 인력을 현장에 파견했으며, 폴피프로필렌 인양 중 포대 밑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안전선을 그었다”면서 “원청의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아 범죄 증명이 부족하다”고 롯데케미칼에 대한 무죄 판결 배경을 설명했다.


검찰, 산업안전보건법 위판 판단


당시 검찰은 롯데케미칼에 대해 “원청과 하청업체 직원이 ‘같은 장소’에서 작업할 때 생기는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산업안전보건법 29조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롯데케미칼은 한 공장 안이지만 공정은 분리돼 산업안전보건법에 명시된 ‘같은 장소’가 아니라고 혐의를 부인했으며 재판부에서 이 같은 주장을 펼친 롯데케미칼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와 관련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스페셜경제>와의 통화에서 “각 산단에 있는 석유화학사들이 모두 안전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법원 판결이 롯데케미칼에 대해 ‘무죄’라고 한 것에 대해 송구하기는 하지만 무죄판결을 받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악영향 미칠까 ‘우려’


업계에서는 롯데케미칼이 받은 이번 판결로 인해 안전관리에서 한시름 놓게 됐지만 하청업체에서는 우려가 더 커지게 됐다는 평가다. 원청과 하청이 함께 산재를 집계할 경우 자칫 산재 ‘은폐’ 의혹이 생길 수 있다는 것.

특히 원청이 롯데케미칼 사고 판결처럼 안전관리를 철저히 해왔다는 것을 입증하기만 하면 피할 수 있는 보완책이 생겼기 때문에 하청업체의 고심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회 환노위 새정치연합 이인영 의원은 크레인 사고 등 최근 산재 사고와 관련 “위험의 외주화가 불러온 재앙”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이 의원은 “산재사고의 대부분이 하청업체의 노동자”라며 “무분별한 규제완화, 비정규직 양산과 위험업무의 외주용역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