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소 누출’ 사고…‘안전도 사라졌다?’

▲파주 LG디스플레이. <사진안쪽: 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
[스페셜경제=황병준 기자]지난 12일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에서 질소가 누출돼 직원 2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밀폐된 공간에 질소가 남아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을 하다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작업장 안 챔버는 시스템 상 질소가 남아있으면 문이 열리지 않도록 설계돼 있어 이들이 어떤 경로로 챔버 안에 들어갔는지 의문이다. 경찰은 작업자들이 안전규정 미준수에 무게를 두고 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시스템 오류 가능성도 존재한다.


LG디스플레이를 이끌고 있는 한상범 사장은 지난해 9월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며 “안전한 근무 환경 구축은 최고의 투자”라고 밝혔지만 이번 사고로 안전관리에 심각한 오점을 남기게 됐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LG디스플레이의 안전관리 현주소를 살펴봤다.

새해 벽두부터 잇따른 안전사고로 국민들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최고의 안전을 자랑하는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에서 질소 가스 누출 사고가 일어나 2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해 12월 울산 울주군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3호기 공사 현장에서 질소가스가 누출해 사망사고가 발생한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또 다시 질소누출사고가 발생해 ‘안전불감증’에 대한 논란도 재현되고 있다.


사고 ‘왜’ 발생했나(?)


경찰에 따르면 지난 12일 오후 12시 43분 경기 파주시 월롱면 LG디스플레이 8세대 공장 9층 작업장에서 질소 가스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문 모씨와 이 모씨가 숨졌고 오 모씨가 의식을 잃고 중태에 빠졌다.


이날 오전 10시경 문 씨 등 직원들은 로봇팔 등 납품 장비를 검사하러 작업장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 2시간 정도 작업 한 뒤 휴식을 가졌지만 이들은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자 LG디스플레이 직원들이 뒤늦게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문 씨 등을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구조를 도운 직원들도 질소가스를 마셔 치료를 받았다.


사고가 발생한 작업장은 대형TV용 액정표시장치(LCD) 패널을 만드는 곳으로 평소에는 유리판에 이물질이 묻지 않도록 질소로 채워져 있어 사람이 출입할 수 없다. 또한 질소가스가 모두 빠져나간 뒤에야 유지 보수 작업을 하도록 규정돼 있다.


경찰 관계자는 “질소 가스는 공기 중에 퍼져나가 오픈된 공간에서는 피해가 없다”며 “밀폐된 공간에서 무색무취의 질소가스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작업을 하다가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작업자들의 안전규정 미준수에 무게를 두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사고가 발생하자 LG디스플레이측은 “이번 사고에 진심어린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부상당한 임직원들의 빠른 회복에도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며 “추후 사고 원인 파악에 대해서도 유관기관에 적극 협조해 원인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시스템 오류 논란


하지만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시스템 오류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이들이 질소가스에 노출된 곳은 자동화 시스템이 구축돼 직원들조차 출입이 제한된 출입이 제한된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스템 상 질소가 남아 있으면 챔버의 문이 열리지 않도록 설계 돼 있어 의혹은 증폭되고 있다. 따라서 사고를 당한 근로자들이 어떻게 챔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따르고 있다.


고양고용노동지청은 지난 14일 LG디스플레이 경기도 파주공장의 질소가스 누출사고와 관련해 E3 공장내 모든 작업을 중지하도록 명령했다. 또한 사고가 발생한 E3 공장이 속한 P8라인 전체에 대해 종합 진단을 받도록 명령했다.


경찰 “작업자 안전규정 미준수 무게”…시스템 오류 지적도
LG E3 공장 전면 작업중지 명령…OLED사업 차질 불가피



김진태 지청장은 “사고현장을 두 차례 직접 둘러보고 사고의 중대성을 살펴 E3 공장 전체에 대해 작업중지를 명령했다”면서 “정확한 사고원인을 밝히고 안전성이 확보되기 전까지는 작업중지 명령을 해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 측은 “추후 사고 원인 파악에 대해서도 유관기관에 적극 협조해 원인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잇단 사고에 신음

또한 이번 사고가 안전사고비상훈련을 실시한지 13일 만에 발생해 과연 훈련의 실효성이 있었느냐는 데도 논란이 따른다.



훈련은 지난해 말 패널공장에서 가스가 누출돼 인명 피해가 발생한 상황을 가정해 비상연락과 사고 전파, 보호구 착용 등 초기 대응, 현장 지휘와 방재활동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사전 예고 없이 진행됐다.


당시 사고 발생 3분 만에 최고경영지까지 사고 전파가 이뤄지고 15분 만에 인명구조와 누출 사고 수습이 완료됐다며 안전에 이상이 없다고 자평했다.


또한 지난해 11월 협력사 안전관리 경진대회, 10월 서울·인천·경기·경기북부 등 4개 소방재난본부와 관계기관 등 50개 기관·단체에서 1200명과 장비 110대를 동원, 긴급구조훈련을 실시했다. 지난해 LG디스플레이 파주, 구미공장은 100회 넘게 비상훈련을 실시하는 등 안전관리에 힘썼지만 사고를 막지는 못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LG디스플레이가 ‘보여주기식’ 홍보성 훈련에만 치우치다가 정작 사고를 막지 못하고 대처도 미흡한 것 아니냐는 비난을 쏟고 있다. 이에 안전관리 시스템이 실제 작업 과정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 아니냐는 논란도 더해지고 있다.


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은 ‘안전이 최우선’임을 강조하고 협력업체도 안전에 예외 일 수 없다며 ‘안전경영’을 홍보했지만 이번 사고로 그의 주장이 공염불에 그치고 말았다.


LG디스플레이 고위 관계자는 “매년 700∼1000억원을 들여 각종 안전 훈련과, 낡은 시설 교체 등을 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700억원과 바꾼 안전훈련이 정작 필요한 곳에서는 재 때 쓰이지 못한 것이다.


LG디스플레이 공장은 지난해 12월 12일 국민안전처와 한국안전인증원으로부터 ‘공간안전인증’을 받기도 했다. 또한 2013년 LG그룹 전체 계열사 국내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안전진단에서 모범사업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무색한 ‘안전경영’


LG디스플레이의 안전사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0년 3월 P8라인 공장에서 엘리베이터 점검을 하던 시설방비점검반 소속 직원이 지하 3층으로 추락해 숨졌으며, 9월 공장 내 사다리차가 넘어져 그 위에서 공장 옥상 외벽 패널 부착 작업을 하던 작업자가 35m아래로 추락해 중상을 입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P3라인 신축공사장에서 3층 높이의 설치하던 철골 구조물이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해 작업자 5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로 작업 중지 명령을 받은 파주 P8공장 내 E3라인과 종합 진단 명령을 받은 P8공장 전체로 인해 LG디스플레이는 막대한 손실이 예상된다.


고양고용노동지청 관계자는 “E3 생산라인이 속한 P8 공장 전체에 대한 종합진단을 실시 중이며 결과가 나올 때까지 E3 가동이 중단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LG디스플레이와 같은 대형 사업장은 진단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며 “적어도 2개월 이상은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E3 생산라인의 생산량은 원판 기준 월 8000장 수준. 원판 한 장으로 55인치 OLED TV 패널 6장을 생산할 수 있다. 공장 가동이 2개월 이상 중단되면 최대 9만6000장의 패널을 공급하지 못하게 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체패널 생산량 중 OLED TV패널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아 LG디스플레이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며 “하지만 OLED는 대부분 수출 되기 때문에 생산 중단으로 인한 수출 실적에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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