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압박’으로 벌어진 참사(?)‥‘왜 쉬쉬 하나’

▲ 지난 2013년 11월 발생한 LG그룹 헬기 사고 당시 모습(사진제공 뉴시스)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지난 2013년 11월 16일 LG그룹 소속 민간 헬리콥터가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 아파트와 충돌하면서 헬리콥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당시 이 사고로 기장과 부기장 모두 현장에서 사망했고 아파트 일부가 파손되어 주민들이 대피하는 등의 소동이 벌어졌다.


이와 관련해 사고 당시 기상악화에도 불구하고 기장이 LG전자로부터 ‘심리적 압박’이 가해지자 비행을 강행했다는 국토교통부의 조사보고서 초안이 보도되면서 파문이 예상되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또다시 논란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LG전자 헬기 사고에 대해 되짚어봤다.


기상악화에도 비서실 압박으로 운항강행‥‘국토부 초안’
지난 5월 블랙박스 분석 완료‥‘봐주기식’ 조사의혹 제기


지난 2013년 11월 16일 LG전자 소속 민간 헬리콥터가 서울 삼성동 아이파트 30층짜리 아파트와 충돌하면서 추락했다. 이날 오전 8시 54분 아이파크 102동 23~24층에 LG전자 헬기가 충돌해 추락하면서 헬기를 조종하던 기장 박 모씨와 부기장 고 모씨가 사망했다. 박 기장은 비행시간이 약 7000시간에 달하는 베테랑으로 지난 1999년 LG전자에 입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헬기 추락사고 <왜>


당시 사고 헬기는 미국 시콜스키사가 제작한 8인승 S-76 C++(HL9294)기종이었다. 헬기 조종사 박 기장과 고 부기장은 이날 오전 8시 46분 김포공항을 이륙했고 한강을 따라 잠실 선착장으로 향하던 헬기는 잠실 선착장을 1.2km 앞둔 영동대교 부근에서 기수를 오른쪽으로 틀어 삼성동 방향으로 진입했다.


이후 헬기는 김포공항에서 이륙한지 8분만인 8시 54분쯤 짙은 안개 속에서 삼성동 아이파크 아파트에 부딪치면서 추락했다. 이 사고로 아파트 일부가 파손됐으며 파손된 아파트 주민 일부는 인근 호텔로 숙소를 옮겼다.


▲ LG헬기와 충돌해 파손된 아파트(사진제공 뉴시스)
당시 박 기장과 고 부기장은 잠실 선착장에서 칠러(Chiller) 담당 임직원 4명을 태우고 전주 공장으로 이동하려는 길에 사고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칠러는 냉수를 이용해 공항이나 쇼핑몰 등 대형시설의 냉방 및 난방을 담당하는 공조시설로 전주에 LG전자 칠러 생산 공장이 위치해 있다.


이 사고와 관련해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지난해 말 내지는 올해 초 사고조사 보고서 초안을 심의에 올려 의견 수렴을 거친 뒤 보고서를 공개할 예정이었다.


국토부 조사위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보고서 초안 작성 후 최장 60일 이내의 심의를 거치게 돼 있다”면서 “심의가 끝나는 대로 이르면 올해 말이 늦어도 내년 초 최종 보고서가 나올 예정”이라고 밝힌바 있다. 앞서 국토부 사고조사위는 지난해 5월 사고원인을 밝혀줄 헬기 블랙박스 분석을 완료했다.


보고서 초안, 어떤 내용이?


이러한 가운데 지난 8일 LG전자 헬기의 아이파크 아파트 충돌사고가 기상 악화에도 LG전자의 압박 때문에 운행을 강행했다는 국토부 조사 보고서 초안이 KBS를 통해 보도됐다. 보도된 국토부 사고조사 보고서 초안에 따르면 당시 기상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LG전자 측의 전화에 기장이 압박을 느껴 헬기 운항을 강행했다는 것이다.


사고 당일 최고 경영진을 태우고 지방으로 가는 임무가 부여되자 박 기장은 오전 6시 27분에 기상을 확인한 뒤 “안개로 비행이 불가능 하다”고 LG전자 측에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한 시간 가량 뒤인 7시 20분, LG전자 비서실에서 헬기팀에 전화를 걸어 “기상 상황을 처음부터 재검토 하라”고 요구했다.


▲ KBS 보도화면 캡쳐
이러한 요구에 기장은 20여분 뒤인 7시 40분, 운항을 결정했다. 회사의 연락을 받고 운항 결정을 번복한 셈이다. 이어 출발 직전 기장은 중간 기착지인 잠실 선착장으로부터 ‘800m 떨어진 한강물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정보를 받았지만 운항 결정을 바꾸지 않았다.


결국 이륙한지 8분 만에 안개로 인한 시야확보를 하지 못해 고층 아파트와 충돌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국토부 조사위는 조종사들이 시계가 나빠 GPS 화면을 보며 비행하다가 위치를 착각해 사고 헬기가 잘못된 경로로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아울러 조사위는 기상상황 재검토 지시에 기장이 ‘심리적인 압박감’을 느꼈을 것이라면서 안전과 직결된 기장의 결정을 경시하는 조직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권고문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 KBS 보도화면 캡쳐
국토부 관계자는 지난 9일 “앞으로 항공사고 국제규정에 따라 미국과 생산업체 등의 의견을 수렴한 후 위원회가 심의결정을 할 예정”이라면서 “또 정확한 사고원인을 담은 최종 조사결과는 3~4월 쯤 발표한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안전 저해 요소


이와 관련해 일선 헬기 조종사들은 경영진의 비행 압박이 여전히 안전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털어났다. 한 민간 기업 소속 헬기 조종사는 “어떻게 보면 개인 비서”라면서 “‘웬만하면 가봐’라고 오너가 그러면 자가용 조종사들이 심적인 부담을 느낄 것”이라는 심경을 밝혔다.


더불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김경협 의원은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에서 보여 지듯이 최고경영진의 의전이나 편리성에 의해서 이런 안전관리자의 권한들이 무시될 때 사고는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항공운항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대기업 오너나 임직원들이 출발을 강요하면 조종사들은 이들의 요구를 거스르기 힘든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꼬집어 말했다.


이처럼 LG전자의 기상상황 재검토 지시로 박 기장이 심리적 압박을 느껴 기상악화에도 운항을 강행한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본지>는 LG전자의 입장을 듣고자 연락을 취했지만 LG전자는 ‘확인해보고 연락 준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 끝내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논란의 핵심‥탑승대기자


한편, 사고 당시 일각에서는 안개가 껴 기상이 좋지 않은 상황에 굳이 헬기를 띄운 이유가 LG전자 구본준 부회장 등 LG전자 고위 임원이 전북 익산에서 열리는 LG배 여자 야구대회에 참석하기 위함이 아니었느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LG전자는 LG전자 안승권 최고기술책임자(CTO) 사장을 포함한 임직원 4명이 전주에 있는 칠러 공장을 둘러보기 위해 탑승할 예정이었다고 밝히며 이러한 의혹을 일축했다.


또한 당시 사고가 난 헬기에 이어 1시간 30분후쯤 두 번째 운항이 계획됐던 LG전자 2호 헬기에 새누리당 김을동 의원이 탑승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김 의원 역시 LG배 여자 야구대회 결승전 참관을 위해 LG전자 측에서 제공하는 2호 헬기를 탑승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김 의원 측은 당시 언론에 헬기에 탑승할 예정이 아니었다고 부인했다. 의원실 관계자는 “행사가 오후여서 차량으로 이동할 계획이었으며 LG전차 측이 의원님을 그렇게 (헬기로) 모시겠다고 했던 것이지 의원실에서 (헬기를) 타겠다고 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는 헬기 탑승 대기자를 조사했는지 여부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면서 일각에서는 국토부가 또다시 ‘봐주기식’ 조사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난 9일 국토부 기자실에서 헬기 탑승대기자 조사 여부에 대해 처음엔 “조사 대상에 없는 듯하다”고 말했다가 거듭된 기자들의 질문에 “관련자들을 전부 면담 조사하라고 지시했다”고 말을 바꿨다.


이어 “보고서 초안에 대한 의견수렴을 거쳐 3~4월 정도에 사고원인 등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국토부는 지난달 ‘땅콩회항’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대한항공 봐주기 의혹이 일었고 실제로 검찰은 지난달 26일 대한항공 측에 조사 내용을 수시로 알려준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로 국토부 조사관 김 모씨를 구속했다”고 지적하면서 “이어 국토부는 LG전자 헬기 사고 당시 논란의 핵심이었던 탑승대기자 조사 여부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어 또다시 봐주기식 조사가 재연되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의구심을 내비쳤다.


▲ 국토교통부 항공,철도 사고조사위원회(사진제공 뉴시스)
이러한 의구심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어떠한 사항이든지 간에 법에서 주어진 권한과 의무에 따라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일각에서 제기되는 ‘봐주기식’ 조사를 할 이유가 없다”며 제기되는 의구심에 대해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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