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출연 강조 뒤 숨겨진‥또 다른 노림수?

[스페셜경제=조경희 기자]동부그룹의 구조조정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마지막 날 국내 시공능력평가 25위의 동부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사실상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이 실패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동부그룹은 동부화재를 제외한 산업부문 계열사가 줄줄이 쓰러졌다. 동부제철을 비롯한 패키지딜 매각이 사실상 실패로 이어지면서 적정가격과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평가다.

산업은행에서는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이 경영권을 방어에만 치중해 결과적으로 동부건설을 비롯한 구조조정이 실패로 이어지게 됐다고 항변하고 있다. 반면 재계에서는 산업은행 때문에 동부그룹 구조조정이 실패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STX 등의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받은 손실을 동부그룹을 통해 손실보전하기 위해 무리한 매각을 진행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산은의 홍기택 회장의 책임론도 급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산은이 동부화재를 장악하려한다는 음모설까지 나오고 있다.


패키지딜 실패 이후 ‘속전속결’ 매각‥헐값 논란 제기
산은, ‘동양파워’ 인수가 보다 낮은 것이 적정가 주장


사실상 구조조정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동부그룹에 대한 산업은행의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그룹, 한진그룹과 다르게 동부그룹만 구조조정이 실패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는데 산업은행과 동부그룹 모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동부그룹의 진정성 있는 구조조정을, 동부그룹은 이미 매각시기를 놓쳐 헐값에 매각했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산업은행이 동부그룹에게만 너무 가혹한 자율협약 등의 잣대를 가졌다는 평가 또한 제기된다. 산업은행이 동부그룹 구조조정을 하면서 그간의 센텐스가 바뀌었다는 평가 또한 제기됐다.

기업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청산’ 보다는 ‘살리기’에 앞장서왔던 과거와는 달리 동부그룹에게만 유달리 엄격한 잣대를 보여왔다는 것.

산업은행이 ‘자금회수’에만 신경을 써왔다는 재계의 평가도 있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그간 산업은행이 구조조정을 하면서 일부 기업에게 서운한 모습도 보이기는 했지만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여력을 보여왔다”며 “하지만 동부그룹에게는 더 이상의 추가 지원은 없다거나, 우선매수청구권 등 대주주가 변화를 보일 수 있는 부분은 협상에서 제외하는 등 유달리 엄격했다”고 지적했다.

패키지딜 매각 실패 후 현재 동부그룹은 동부화재를 제외하고 남아있는 제조 계열사는 사실상 초토화가 된 상태다.

동부팜한농, 동부대우전자 등 단시간 내 성과를 내기 어려운 사업 부문만 남아있는 과정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동부그룹이 또다시 혹독한 1년을 보내야 한다는 점과 사실상 그룹 해체 수순까지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동부제철

구조조정 실패‥패키지딜 지연?


동부그룹 구조조정의 실패 중 가장 큰 이유로 동부제철 및 동부발전당진의 패키지딜 실패가 꼽힌다.

지난해 12월31일 동부건설이 전격적인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결과적으로 동부발전당진 등 패키지딜 매각 실패가 동부건설 법정관리까지 이르게 했다는 것.

이 과정에서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은 2일 시무식 신년사를 통해 산업은행에 대해 서운한 마음을 토로했다. 김 회장은 “산업은행에 적극 협조했으며 구조조정의 성공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지만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 우리 앞에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온갖 불리한 상황에 동부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땀 흘려 일한 성과들이 쓰나미에 휩쓸려 초토화 되고 있다”는 소회를 밝혔다. 김 회장은 구조조정 실패에 대해 ▲패키지딜 실패 ▲동부발전당진 헐값매각 ▲가혹한 조건의 자율협약 ▲무차별적인 채권회수 등을 꼽았다.


동부제철

패키지딜 실패의 後果(후과)


산업은행과 동부그룹은 ‘패키지딜’ 방식을 놓고도 의견차이가 컸다. 패키지딜은 산업은행 주도로 동부건설의 발전당진과 동부제철의 인천공장을 묶어 매각을 추진했다.

당시 산업은행이 포스코에 제안한 내용은 포스코가 동부제철 인천공장의 지분 20~30%를 사고, 나머지 70~80%는 산은이 투자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또 동부발전당진의 경우 포스코가 우선매수협상권을 갖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포스코가 지난 6월 이를 ‘거부’하면서 시간이 소요됐다. 포스코가 고민하던 당시 동부 패키지의 가격은 7000억원에서 1조원으로 추산됐다. 반면 동부그룹은 동부인천스틸만 놓고 봐도 장부가액 6700억원에 연간 매출액 1조원, 영업이익 700억 원의 실적을 올리고 있다는 점을 동부 패키지에 프리미엄을 얹어 1조5000억원은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패키지딜은 실패했다. 사실상 포스코가 유력한 인수후보였는데, 포스코가 ‘가격’도 제시하지 않고 인수를 포기하면서 포스코도 포기한 매물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당시 재계관계자들은 “포스코 입자에서는 ‘실리’를 따졌던 것인데 반해 동부그룹은 포스코가 인수를 포기하면서 매각가치가 땅에 떨어졌다. 산업은행이 포스코가 인수하기 유리하게끔 재무적 투자자 역할까지 자임했지만 포스코가 가격도 부르지 않고 포기하면서 사실상 인수가 어려워졌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포스코가 인수를 포기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이후 동부제철 주가가 급락한 바 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처음부터 포스코만 염두에 두고 있어 결과적으로 골든타임을 놓치게 됐다”며 “포스코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글로벌 철강 경기가 어려운 상황이었고 그룹내에서도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는 가운데 패키지딜을 선택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고 꼬집었다.

이후 개별 매각으로 바뀐 동부발전당진 인수전에 LG상사, SK가스, GS EPS, 대림산업, 대우건설, 삼탄 등 6곳이 동부발전당진의 매각주관사인 산업은행에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다.

이후 삼탄이 동부발전 당진을 27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하고 계약을 추진했지만 한국전력과 송전선 문제가 불거지자 포기했다. 결국 SK가스가 2010억원에 인수했다. ‘헐값 매각’ 논란이 나오는 이유다.


시간지연 때문에, 상당한 손해


반면 산은 등 채권단은 동부그룹의 구조조정에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특히 삼일회계법인의 실사결과 매각가가 2000억원으로 나왔기 때문에 헐값 매각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동양파워가 4000억원에 매각됐다”며 “생산량이 절반에 불과한 발전당진은 2000억원 이상에 매각했으면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동부제철 당진은 산업은행과 2015년 6월까지 회사채를 상환해야 하기 때문에 일정 정도 시간이 있었던 셈. 하지만 삼탄 인수 실패 후 SK가스에 이르기까지 속전속결로 매각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패키지딜로 6개월 이상 시간을 끌어온 산업은행의 이 같은 속전속결 매각에 대해 “동부건설이 차입금을 갚지 못할 경우 법정관리나 워크아웃 가능성이 컸고, 이럴 경우 동서발전이 동부건설의 동부발전당진 지분 60%를 600억원에 매수할 수 있는 콜옵션이 생겨 손실처리가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즉 동부건설이 동서발전지분을 600억원에 매각할 경우, 사실상 1400억원 가까이 손실처리가 생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산업은행은 <스페셜경제>와의 통화에서 “일각에서의 주장과 다르게 올해를 넘길 경우 또 다시 RFP를 발송하는 등 올해와 같은 과정을 또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인수기업이 나타났을 때 매각한 것”이라고 밝혔다.


끝내 동부제철 경영권 잃어


동부건설의 법정관리에 이어 동부제철 또한 채권단 손에 떨어졌다. 지난 1984년 김 회장이 동진제강을 인수한 이후 31년 만에 결국 ‘철강왕’을 향한 도전이 끝나게 됐다.

동부제철은 7일 오전 9시 30분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김준기 회장 등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주식에 대한 100대 1 무상감자안과 제3자에 대한 신주발행 한도를 삭제하는 내용의 정관을 통과시켰다.

이 같은 무상감자안이 의결됨에 따라 약 한 달의 의견수렴을 거쳐 감자가 최종 확정되면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 동부제철의 새로운 주인이 된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동부제철 최대주주는 동부CNI(11.23%)를 비롯해 김준기 회장(4.04%), 김 회장의 장남인 남호씨(7.39%) 등 특수관계인까지 합친 지분율은 36.88%다.

하지만 내달 9일 특수관계인 지분에 대해 100대 1의 무상감자가 완료되면 김 회장 등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1% 미만으로 떨어진다. 기타 주주 보유지분에는 4대 1의 무상감자 비율이 적용된다.

전체 주식에 대한 감자비율은 보통주 84.5%, 우선주 75.0%이며, 자본금은 감자 전 3710억7357만원(6321만4714주)에서 1052억890만원(1004만1780주)으로 줄게 된다.

채권단은 530억원 규모의 출자전환을 통해 50%가 넘는 지분을 보유, 동부제철의 최대주주가 될 예정이다.

이에 앞서 동부그룹은 김준기 회장이 경영권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우선매수청구권 부여를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채권단은 이에 대해 사재출연, 계열사 지원을 비롯한 자구노력을 우선매수청구권을 받을 수 있는 전제로 제시했다.

재계 관계자들은 김 회장이 동부제철의 경영권을 다시 확보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평가다. 동부그룹과 채권단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한치 앞을 내다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사재 출연 논란 지속


산업은행에서 줄곧 주장 해온 것이 김준기 회자의 사재출연 부분이다. 산은 관계자는 현대그룹과 금호그룹 등의 오너 일가가 사재출연을 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김 회장의 사재출연 문제로 계속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동부그룹 입장에서는 상당히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김 회장은 지난 2009년 동부하이텍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3000억원의 사재출연을 했다. 당시 2조3000억원의 차입금이 사재출연을 계기로 6000억원대로 줄었다. 동부그룹은 반도체 사업에 착수한지 12년 만에 처음으로 영업이익이 흑자를 내는 ‘성과’를 냈기도 했다.

지난해 4월 동부제철은 산업은행에 1260억원의 브릿지론을 대출받는 과정에서 김 회장의 한남동 자택을 포함한 전 재산 1200억원을 담보로 제공했다.

산은에서 오너 일가의 사재출연 없이 지원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더 이상 김 회장이 제공할 담보가 없다는 얘기다.

동부건설 법정관리도 비슷하다. 동부건설이 법정관리를 선택하기 전에 산은에 제시한 것은 동부익스프레스의 콜옵션(우선매수청구권) 양도다.

동부익스프레스는 이미 매각된 상태인데, 추후 가장 먼저 되사올 수 있는 권리를 산은에 넘기겠다고 한 것이다. 동부건설은 동부익스프레스 콜옵션 가치가 최소 1500억원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동부건설을 살리기 위해 3년간 8200억원을 지원했다”며 “추가지원 요청에도 ‘요청액 절반을 준비하면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뜻도 전달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산업은행은 동부건설에 2012년부터 8200억원을 지원했지만 이미 대부분 자금을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산업은행이 동부건설에 빌려준 금액을 대부분 갚았고 1270억원이 남은 상태다.

아울러 회계업계 한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산은은 당시 10%이상대의 금리와 함께 충분한 담보에 대해 대출했으며, 이 금액 마저 동부건설이 갚고 남은 금액이 1270억원인 상태다.

이 마저도 매출채권유동화자산이 700억원, 담보대출이 170억원으로 이중 매출이 발생할 경우 400억원 정도의 채무만 남아있어 무리한 채권회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가혹한 조건의 자율협약‥오너 일가 근본적 참여 없어
무차별적 채권 회수 vs 경영권 방어만 강조 ‘평행선’


산은 심기 건드렸나


이에 일각에서는 산업은행이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을 포함한 오너 일가가 지난해말 동부인베스트먼트(DBI) 유상증자에 참여하고 동부팜한농에도 사재를 출연한 것을 두고 산업은행의 심기가 불편해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오너 일가가 동부건설에 대한 사재출연 대신 지배구조에 연관된 기업에만 사재를 출연했다는 것이다.

이에 동부그룹 사재출연 논란을 두고 산업은행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사실상 동부인베스트먼트가 금융계열사와 비금융계열사 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마저 사재출연으로 요구할 경우 사실상 동부그룹의 동부화재를 비롯한 금융계열사까지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 손으로 넘어가게 될 것을 우려해 경어권 방어 차원이었다는 해석이다.

이미 동부그룹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동부건설의 법정관리에 이어 동부제철 마저 경영권을 잃는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김준기 회장의 장남인 김남호씨에 대한 지분을 재차 요구하는 것과 관련 재계에서는 “산은이 동부화재를 장악해 STX그룹 등 통해 생겨난 손실을 메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한다.

특히 동부화제의 올해 실적을 잠정 공시를 살펴보면 매출 9조7213억, 영업이익 5472억원이고 당기순익은 4070억으로 2014년말 기준으로 볼 때 5000억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산은이 ‘동부화재’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평가다. 동부화재라는 알짜 기업을 산은에서 인수한다면 그간의 손실을 다 털어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미 증권업계과 투자업계에서는 파다하게 소문이 나 있다는 것.

산은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며 “동부그룹이 동부익스프레스를 KTB PE 컨소시엄에 매각하면서 향후 지분을 되살릴 수 있는 ‘콜옵션’을 요구하는 등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혔다. 보다 진정성 있게 설사 향후 경영권을 되찾아오지 못해도 당장 회사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다면 이런 논란 조차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손충당금 부담?


업계에서는 초기 패키지딜 매각에 실패한 산업은행이 동부발전당진 등을 SK가스에 매각하는 데 속전속결할 수 있었던 것은 산업은행의 매출과도 연관이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산업은행은 지난해 1조원이 넘는 순손실을 기록했지만 올해에는 적자를 면할 것으로 평가받는다. 동부발전당진 매각 효과와 KDB산은캐피탈이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추산된다.

SK가스는 지난 12일 동부건설에 동부발전당진 지분 60%에 대한 인수대금 2010억원을 납입 완료했다. 동부건설은 이 자금으로 동부발전당진 지분을 담보로 산업은행에서 빌린 차입금 1989억원을 갚았다.

산업은행은 동부건설의 대출 상환으로 부실여신비율이 크게 떨어졌고, 대손비용감소로 영업이익이 발생했다.

만약 SK가스가 동부발전당진 지분을 조속히 인수하지 못했을 경우 산은이 올해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산업은행은 지난 2013년 STX구조조정으로 1조3000억원대의 대손충당금을 쌓아와 부담이 큰 상태였다.

이와 관련 재계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STX 구조조정을 통해 대손충당금을 쌓은 부담감을 가지고 있어 정책금융공사와의 통합으로 적자가 불가피한 가운데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할 경우 인력 구조조정에 대한 압박이 생길 수 있어 적정가에 대한 고민 보다는 매각에 방점을 찍은 경향이 있다”고 평했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가운데 동부그룹이 김 회장의 주장처럼 자력으로 회생이 가능할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