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 흘러갔지만 ‘재벌’ 경제력집중 ‘막아’

[스페셜경제=조경희 기자]<스페셜경제> 연간기획으로 기획한 ‘그때 그 시절 경제사’는 국내 기업들의 성장史(사)를 살펴보면서 어떠한 정권에서 어떠한 산업이 전략적으로 육성됐는지, 또 어떠한 정부 정책으로 인해 기업이 후퇴 일로를 겪었는지 살펴보는 코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공중분해 된 기업부터 얼떨결에 원하지 않는 사업을 떠안은 기업까지. 또 오일쇼크, IMF,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어떠한 기업이 살아남고 스러졌는지 등.


특히 우리나라는 6.25 전쟁 후 대부분의 산업이 전쟁의 폐허에서 다시 시작됐고, 1980년대 이후에는 재계 30위권 순위에서 거의 대부분 변동이 없는 굳건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최근 기업 구조조정이 지속되면서 재계 순위가 바뀌고 있지만 최근의 업황 불황으로 인한 것 일뿐 기업 지배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페셜경제>에서는 각 정권 시절 있었던 ‘비사’들을 통해 국내 기업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뒷이야기를 살펴봤다. <편집자주>


최근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이 항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그간 재계에서 횡령, 배임 등으로 구속되는 사례는 많았지만 조현아 전 부사장의 경우 재벌가의 ‘민낯’을 드러낸 사건으로 주목받고 있다.

과거나 현재나 대기업의 ‘갑질’ 논란이 문제가 된 가운데 이번 사건은 국내 경제가 대기업 중심으로 발전해오면서 오너를 비롯한 기업인에게 너무 ‘관대’해왔다는 평가를 내리게 된 사건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 경제는 집권세력과 재벌들 사이에 수많은 정치적 ‘자금’이 흐르면서 성장해 왔다. 특히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난 이후 겪은 사법적 판단 과정에서 완전히 덮여있던 비밀스러운 부분까지 드러났다.


집권세력-재벌간 정치자금 흘러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에는 기업인들이 사업하기 편했다는 평가를 내렸다고 전해진다. 전두환 시대 경제비사를 저술한 이장규 전 기자의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에서 이 전 기자는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이던 6공 보다는 5공 시절이 더 우호적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전 기자는 “뭉칫돈을 들고 들어가 부탁을 하면 그 돈에 해당하는 만큼 해당기업의 애로사항을 분명하게 봐주었다”고 평가했다. 직접 정치자금을 전달했던 기업인들의 공통된 평가라는 것.

전두환 전 대통령 스스로도 직접 정치자금을 챙기기도 했고, 빚이 많은 기업에게는 공사를 주지 않기도 했다고. 또 특정 재벌을 좋지 않게 본 나머지 이 회사가 합법적으로 따낸 공사를 강제로 빼앗아 마음에 드는 기업에게 강제로 넘겨준 일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용어조차 생소한 ‘상호출자규제’


최근 정부는 순환출자 금지규정 위반 시 최대 10% 까지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순환출자 금지규정 위반 행위의 과징금 비율을 ‘매우 중대한 위반행위’는 위반액의 10%, ‘중대한 위반행위’와 ‘중대성이 약한 위반행위’는 각각 8%, 5%로 규정했다.

순환출자는 대기업들이 계열사들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동원하는 출자방식으로, 3개 이상의 계열사가 서로 출자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 같은 대기업의 순환출자에 대해 금지하는 법안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재벌은 정치권과의 유착이나 특혜를 통해 이뤄져 왔다.

특히 정치자금 문제 등을 논의로 하더라도 과거에는 경제가 ‘걸음마’를 띄는 상황에서 재벌의 비대화에 ‘칼’을 겨냥할 수 없었다는 것.


경제민주화의 ‘서막’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기업의 실제 돈벌이와 증권시장의 주가가 왜 따로 움직이느냐”에서 시작된 이 고민은 문어발식 확장을 막기 위해 상호출자규제 조항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당시 박봉환 증권감독원장이 상법에 상호출자규제 조항을 신설하도록 한 것.

박봉환 전 증권감독원장은 최근 성희록 및 폭언 논란으로 서울시향 대표에서 사임한 박현정 전 대표의 부친이다. 지난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를 강조했던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고 박봉환 전 원장의 처남이다.

우리나라 헌법 119조 1항은 ‘대한민국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중 2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한 부(富)의 편중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국가가 개입할 여지를 둔 조항이다. 지금이야 당연한 조항이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일이었다는 평가다.


공정거래실의 탄생


하지만 이 문제가 대기업들의 이해관계가 걸려있었던 만큼 수월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대기업들의 로비도 만만치 않았다고. 하지만 박봉환 전 증권감독원장이 ‘민정당’을 찾아가 개정 상법에 상호출자규제 조항을 신설토록 했고 민정당의 막판 주도에 따라 이뤄지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1984년 3월 경제민주화 관련 조항이 처음으로 신설된 것이다. 이장규 전 기자의 저서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의 평가에 따르면 당시에 뭔지도 모를 상호출자규제가 조항으로 신설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지금이야 경제민주화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고 상호출자규제 용어 자체가 생소했지만 여러 이해득실을 거쳐 결국 경제민주화의 단초가 될 조항이 신설된 것이다.

물론 이 조항 자체가 신설된 것이 5공이라는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평가도 있다. 특히 군사독재에 대한 정당성을 얻기 위해 공정거래실(현 공정거래위원회)이 설립됐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 경제민주화의 단초가 5공에서 시작됐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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