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경영리더십 더 이상 안 돼”‥변화와 혁신 소통 절실

[스페셜경제=조경희 기자]대한항공이 ‘땅콩 회항’ 사건으로 인해 창립 45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땅콩 리턴’ 사건 이후 7일 만인 12일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이미 여론은 싸늘히 돌아섰다.

당시 비행기에서 내쫓긴 승무원 사무장의 폭로로 오너 일가에 대한 신뢰도 역시 추락했다. ‘외신’도 초유의 사태에 주목하고 있다. 사실상 조현아 부사장의 말 한마디에 국적기가 ‘회항’을 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한항공의 위기관리시스템은 소위 ‘끝장’이 났다.

사실상 ‘매뉴얼’ 자체가 발동을 하지 않은 것이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오너’ 일가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사태의 ‘수습’ 조차 쉽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오너’ 일가에게 ‘No’라고 할 수 있는 문화‥가능 한가
‘수평적’ 문화 확산 지적하지만 사실상 ‘불가능’ 평가


대한민국이 ‘대한항공’으로 인해 떠들썩하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논란으로 인해 전문경영인이 아닌 오너 일가의 경영 승계 자체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조현아 전 부사장을 비롯 조양호 회장의 자녀인 조원태 대한항공 그룹경영지원실 부사장, 조현민 대한항공 토합커뮤니케이션실 전무 등이 모두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무엇보다 재벌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모두 대한항공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항공 오너 체제에 대한 비판은 지난 1999년에도 발생한 바 있다. 1997년 225명이 사망한 괌 추락사고 2년 만에 다시 상하이공항 추락사고까지 터진 대한항공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오너경영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받았다.

이 때문에 이틀 만에 창업주 조중훈 회장이 퇴진하고 조양호 당시 사장은 사장직에서 물러나 대외업무만 하는 회장직을 맡았다.


초기 대응 왜 못했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 12일 장녀인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리턴’ 사건과 관련 대국민 사과를 했다. 조 회장은 이날 오후 1시30분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빌딩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제 여식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진심으로 사죄 드린다”고 공식 사과했다.

부모로써 ‘죄인’의 모습도 드러냈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 회장으로서 또 조현아의 애비로서 너그러운 용서를 다시 한 번 바란다”면서 “저를 나무라 주십시오. 저의 잘못이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조현아 전 부사장 대신 조양호 회장이 사과를 했다는 점에서 ‘논란’은 다시 불거졌다. 당사자의 잘못을 ‘아버지’가 나와서 대신 사과하는 모습에서 또 다른 ‘감싸기’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부랴부랴 조현아 전 부사장이 사과를 했지만 시선은 싸늘하다. 초기대응에 실패한 것이다.

대한항공은 지난 8일 사건 보도 이후 오후 9시 30분이 넘어서야 입장 자료를 내놓았다. 하지만 ‘사무장’의 잘못으로 돌리는 뉘앙스로 인해 비판이 거세졌다. 이후 조현아 전 부사장의 사표 제출과정, 진상 조사를 위한 출두시기도 논란을 피하는 데에만 급급해 사태는 ‘확산’ 일로를 걷게 됐다.

만약, 사태 보도 이후 진정성 있는 내용이 포함된 사과문이 공지가 됐다면 대항항공 사무장이 나와서 ‘폭로’ 하는 수준까지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노회찬 정의당 전 의원은 10일 YTN 라디오 방송 ‘신율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은 우발적으로 터진 것이 아니라 황제경영으로 곪은 문제가 결국 터진 것”이라며 “그동안 대한항공은 황제경영으로 유명했다. 대한항공 조종사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한 것도 경영진의 비인격적 대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역시 지난 10일 성명을 통해 “대한항공은 사주 집안 몇몇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회사가 아니지만, 현재 대한항공 경영진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이 드러났다”며 “경영진의 권위적 인식을 바꾸고 직원을 존중하는 기업문화로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관리’의 삼성‥역시 달랐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이후 일체의 ‘잡음’ 역시 나오지 않고 있다. 관리의 삼성 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이건희 회장이 병상에 있지만 최근 한화그룹 내 ‘빅딜’ 까지 성사시키는 등 이 회장의 부재 이후에도 삼성가의 시계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전 재산 피해 보상금 내놓은 ‘한화’


국내 대표적인 화학 기업인 한화그룹은 지난 1977년 이리역 폭발 사고가 발생하면서 최대 위기를 맞은 바 있다. 당시 분위기는 ‘한국화약그룹이 끝났다’는 평가였다. 보상액 규모도 어마어마했을 뿐만 아니라 사고 자체가 워낙 크다 보니 그간 공들여 쌓은 이미지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처지였기 때문이다.

김승연 회장의 아버지이자 한화 김종희 명예회장은 사고 원인이 밝혀지기도 전에 사고 다음날 각 중앙지 석간신문에 무조건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정부가 책정한 재해복구비 50억원의 배가량인 자신의 전 재산에 해당하는 90억원을 피해보상금으로 내놓은 것이다.


수평적 분위기 확산 ‘어렵나’


지난 15일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은 내부 회의를 갖고 “경영진은 물론 오너에게까지도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위기가 닥쳤을 때 뒤따라가기만 할 것이 아니라 선제적으로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기회에 오너 일가의 눈치를 보느라 선제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변명에 급급한 데 따른 ‘자기반성’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다.

그간 <스페셜경제>가 오너 일가와 관련된 기사 확인을 위해 홍보실과 통화를 할 경우, 대게 홍보팀은 “오너 일가에 대한 사정은 모른다. 그분들이 하시는 일”, “오너 일가의 개인적인 주식 매매 등에 대해서는 오너 개인의 판단 일뿐 기업에서 일일이 알지 못한다” 등의 대답을 해왔다. 또 표현 자체가 ‘오너 일가’, ‘그분들’로 지칭된다. 그룹 공식적인 입장 대신 홍보팀의 ‘노련미’에 따라 판가름이 난다는 것.

최근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재벌은 왕조처럼 운영된다”고 지적했다. 왕실에서 왕세자를 책봉하고 왕위 이양 작업을 하듯이 ‘세습’ 이외에 다른 변수는 작용하지 않는다는 ‘조롱’이 담긴 뜻이다.

그간 국적 항공사 운영을 해왔던 대한항공이 이를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초기 대응이 늦어진 것도, 공식 입장이 최초 보도 후 밤 9시 30분경 나왔다는 점 모두 사실상 위기대응시스템 자체는 존재하지만 ‘오너 일가’에 대한 위기관리시스템은 ‘부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오너 리스크 ‘피죤’


피죤은 섬유유연제 업계 1위였으나 지금은 이윤재 피죤 회장의 오너 리스크로 더욱 부각된 기업이다. ‘청부 폭행’ 사건으로 오너 일가인 이윤재 회장이 퇴진했지만 올해 초 경영복귀 논란이 일었다.

이에 앞서 피죤은 지난 2011년 2월 피죤 사장에 취임한 이은욱 전 사장을 해고하고 이 전 사장이 해고무효 소송을 내자 ‘청부 폭행’을 했다.

이윤재 회장은 “이은욱 전 사장과 김용호 전 상무에게 겁을 주든지 괴롭히든지 해서 (해고 관련)기사가 나오지 않도록 준비해서 해결하라”며 청부폭력을 지시했다. 이후 이들에게 도피자금 명목으로 현금까지 전달했지만 결국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가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피죤은 각 중앙지에 사과 광고를 실었지만 이미 피죤 ‘불매운동’에 이어 악질기업으로 손꼽히게 됐다.


홍보 ‘불능’‥커뮤니케이션 ‘실패’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한항공 사태를 통해 재계 전체의 ‘오너 리스크’가 화두가 되고 있는 것. 특히 최근에는 BGF리테일 홍석조 회장의 장남 홍정국씨가 32살에 ‘상무’로 초고속 승진하면서 너무 빠른 승진이 아니냐는 의문도 나오고 있다.

조기에 해외 유학을 다녀와서 20대 중반에 입사하면 3∼4년 만에 초고속으로 승진해 임원이 된다. 거기서 또 3∼4년 안에 부사장·사장 타이틀을 달고 경영자의 지위에 오르는 것과 비교했을 때 빨라도 너무 빠르다는 것.

사태가 이렇게 되다 보니 재계도 ‘단속’에 나서는 분위기다. 변화 보다는 ‘단속’ 차원이라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대한항공 사태를 보면서 또 어떤 기업이 대상이 될지 모른다. 오너 리스크는 단속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룹 내에서 ‘입장정리’가 필요하다는 논의는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위기대응시스템이 ‘멈춰버린’ 대한항공 사태. 그 이면에는 오너 리스크에 대한 대응 또한 오너 스스로가 할 수 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대한항공이 사상 초유의 사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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