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경제 3법’ 국무회의서 일사천리 통과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 독소 조항 그대로
외국 투기자본 등 경영권 흔들어도 ‘속수무책’
‘제2의 엘리엇-현대차’ 사례 속출할 수 있어
이달 중 국회로‥거대 여당 앞세워 입법 강행할 듯

 

▲ 공정경제 3법 내용 및 쟁점 (스페셜 경제)


[스페셜 경제=변윤재 기자] 정부가 다시 대기업을 겨냥한 칼 날을 빼들었다. 25일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를 담은 공정경제 3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며 공정 경제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들 법안은 공정한 시장 질서 확립을 표방하지만, 기업을 옥죄는 독소 조항이 포함됐다는 지적이다. 특히 무분별한 고소·고발과 투기자본에 의한 경영권 위협을 막기 위해 기업은 신규 투자나 미래 성장 동력 발굴보다 경영권 방어에 역량이 집중될 우려가 높아졌다.  

이에 경제계는 기업의 자율성을 저해하고 경영권이 침해될 수 있다며 해당 법안을 심사숙고 해달라는 입장을 거듭 천명해왔다. 더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기업 경영환경이 가파르게 악화된 만큼,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독소 조항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경제계의 우려를 뒤로 하고 3법 통과를 밀어붙였다. 정부가 이달 중으로 해당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176석의 거대 여당이 법안 처리까지 일사천리로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독소 조항에 대한 논의 과정이 축소되거나 생략될 가능성이 있다.

 

기업들, 경영권 흔들기 앞에 무방비

 

법무부와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는 상법 일부 개정안,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을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고 밝혔다.  

상법 개정안의 핵심이자 독소조항으로 손꼽히는 것은 다중대표소송 도입과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 감사 선임 시 주주총회 결의요건 완화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자회사의 이사가 임무를 소홀히 하거나 위법행위를 해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면 모회사 주주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다. 모회사 지분을 소량(비상장회사는 1%, 상장회사는 0.01%)이라도 갖고 있으면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는 이사들을 먼저 선임하고 그 가운데 감사위원을 뽑는 현행 방식 대신, 기업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선출할 때 일반 이사와 감사위원을 분리해 뽑도록 한다. 또 상장회사의 감사위원 선임·해임을 할 때 최대주주는 특수관계인을 합산해 3%, 일반주주는 3%를 초과하는 주식에 대해 의결권이 제한된다.  

정부는 자회사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 등 대주주의 사익추구 행위를 방지하고 대주주로부터 감사위원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계는 기업 경영권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경영에 참여할 여지가 생긴 것은 물론, 과거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자동차와 모비스에 해외 경쟁사 임원을 감사·이사로 앉히라고 요구했듯이 외국 투기자본들이 사사건건 경영에 간섭할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단기 이익이나 기업 경영권을 노린 외국 투기자본이 신규 투자에 따르는 위험 부담을 문제 삼을 수 있다. 나아가 적대세력이 감사위원 선임에 개입해 인수합병이나 신규 투자와 같은 의사 결정을 방해하고 회사 기밀까지도 빼갈 우려도 있다. 기업이 줄소송을 막고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투자를 비롯한 경영 활동을 보수적으로 할 수 밖에 없게 된다는 게 경제계의 지적이다.

 

감시·규제 강화로 기업 옥죄기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핵심은 전속고발제 폐지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강화다. 

현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 없이 검찰이 직접 기소할 수 없다. 그러나 가격 담합, 공급 제한, 입찰 담합 사건에 대해 검찰이 스스로 수사·기소할 수 있게 됐다. 일감 몰아주기로 일컬어지는 대기업집단 사익 편취 규제 대상도 늘어난다. 총수일가 지분 30% 이상 가진 상장회사, 20% 이상 보유한 비상장회사였던 기준을 상장·비상장 구분 없이 20%로 통일하고, 이들 기업이 50%를 초과해 보유한 자회사도 규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경제계는 삼성생명과 SK, 현대글로비스 등이 규제 대상에 새로 편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주회사로 전환하거나 기존 지주회사에 새롭게 자회사·손자회사를 편입할 경우 의무지분율도 높아졌다. 기존에는 상장사 20%, 비상장사는 40%만 확보하면 됐지만, 앞으로는 상장사와 비상장사는 각각 30%50%의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정부는 공정거래법 개정을 계기로 기업 지배구조가 개선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경제계는 기업 옥죄기가 강화됐다는 지적이다. 전속 고발권 폐지로 향후 중복 고발 및 조사의 우려가 커졌다. 더욱이 경쟁업체나 시민단체 등이 전문적 검토 없이 바로 검찰에 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법적 대응에 따른 부담이 가중된다. 여기에 개정안 적용 대상이 될 기업이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총수가 가진 주식을 처분하고 지주사가 이를 사둘여야 하는데, 이 또한 기업의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신설되는 금융그룹감독법은 금융 지주회사가 없는 금융그룹에 대한 정부의 감독 강화가 핵심이다. 자산총액이 5조원 이상인 교보·미래에셋·삼성·한화·현대자동차·DB 6개 금융그룹이 감독 대상이 된다. 이들 그룹은 대표회사 한 곳을 선정해 내부통제와 위험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또 금융그룹의 소유·지배구조, 재무현황, 위험 현황 등을 공시해야 한다. 이같은 공시는 당장 9월부터 이뤄질 예정이다.

 

경제계 기업 경영활동 위축 우려

 

경제계는 이날 일제히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경제주체가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지만, 외려 기업에 대한 역차별로 인해 우리 산업계 전반의 경쟁력을 하락시킬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우려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는 지난 달 이같은 우려를 담은 의견서를 전달했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이번 개정안은 상법의 감사위원 분리선임, 공정거래법의 사익편취 규제와 같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비해 과중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이는 이사 선임과 같은 지배구조에 대한 과도한 규제, 담합 관련 고발 남발, 기업 간 거래 위축 등 경영부담을 대폭 가중시켜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총은 유례를 찾기 힘든 감염병 사태로 인한 경제 위기가 언제까지 지속할지 모르는 어려운 상황에서 이러한 규제 강화는 기업의 투자 의욕을 더욱 위축시키고, 결국 경기 회복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며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기업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우리 기업에 대한 규제 수준이 외국보다 높아지지 않도록 규제 부담을 대폭 완화해달라고 호소했다.  

대한상의 이경상 경제조사본부장은 상법과 공정거래법은 시장의 기본 룰을 훼손하고 기업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등 부작용이 우려돼 경제계 우려를 전달했지만 원안 그대로 통과됐다는 점에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의 공정경제 질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며 재계도 무조건적인 반대보다는 합리적 대안을 함께 논의해 발전적인 방향으로 수정·보완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이달 말 공정경제 3법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들 법안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야당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 그러나 21대 국회에서 여당은 176석을 앞세워 해당 법안 처리를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6월 정책조정회의에서 세 가지 공정경제 법안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라며 “21대 국회에서 완성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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